[광복 80주년-다시 평화] 할머니들 고통과 상처 외면하지 않았다

안지산 기자 2025. 7. 13. 1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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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경남 '위안부' 피해자 운동과 연대
1997년 훈 할머니 사연 계기로 연대체 발족
2000년대 피해 할머니 지원, 교육자료 제작
피해자 유지 계승 위한 연구·추모 활동 절실

1991년 8월 14일은 김학순 할머니가 일제강점기 일본군 '위안부' 피해 사실을 처음으로 공개 증언한 날입니다. 김 할머니의 용기에 힘입어 전국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은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습니다. 경남에서도 피해 증언은 이어졌습니다. 1992년 양산 출생 김복동 할머니에 이어 피해 할머니들은 일본군의 잔인했던 행태를 고발했습니다. 시민사회계는 일제히 할머니들의 아픔에 분노하고, 그들의 상처를 보듬고자 뭉치면서 일본군 '위안부' 운동을 펼치기 시작했습니다. 그로부터 28년이 흐른 오늘, 경남 일본군 '위안부' 운동이 우리 지역에 미친 영향을 살펴보고 앞으로 나아갈 방향성을 짚었습니다.

올 7월 기준 정부에 등록된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는 경남 36명을 비롯해 전국에 240명이다. 경남은 '위안부' 피해자가 가장 많았던 지역이다. 전국 피해 할머니 중 생존자는 6명뿐이다. 이중 경남에 거주하는 할머니는 1명으로, 이 할머니는 신원을 공개하지 않은 채 살아가고 있다.

◇할머니 문제 해결 앞장선 경남도민 = 일본군 '위안부' 피해 사실이 전국적으로 공론화된 것은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 활동에서 비롯됐다. 1990년대 중반, 정부가 피해 할머니를 만나 구술채록을 진행했고 각 지역의 피해 할머니들이 드러났다. 지역마다 할머니를 지원하는 시민단체가 만들어지기 시작했고, 경남에서는 1997년 10월 1일 '경남 정신대문제 대책을 위한 시민연대모임(경남 정대연)'이 활동을 시작했다.

한 피해 할머니의 사연은 시민이 일본군 '위안부' 피해 사실에 더욱더 관심을 갖게 했다. 캄보디아에서 지내던 피해자 훈 할머니(한국이름 이남이)가 귀국해 고향과 혈육을 찾아 나섰다.

1997년 8월 26일 경남도민일보 전신인 〈경남매일〉 김주완 기자가 수십일 취재 끝에 이남이 할머니의 고향이 '경남 마산시 진동면'이라는 것과 장조카, 올케, 여동생 등 혈육을 찾았다고 보도했다. 이 보도가 전국적으로 알려지면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관심을 불러일으켰고, 경남에서도 경남 정대연이라는 이름으로 피해 할머니를 돕는 연대체가 활성화 했다.
1997년 8월 26일 경남매일이 보도한 '훈 할머니 혈육 찾았다' 기사. /김주완 김훤주 지역에서 본 세상

김명희 경상국립대학교 사회학과 교수가 2022년 저술한 연구논문 <경남지역 일본군 '위안부' 운동과 기억의 연대>를 보면, 경남 정대연 발족 이후 2000년 초반 지역 기반 피해 할머니 지원 연대체와 기림상 건립단체가 활발히 조직되기 시작했다.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와 함께하는 통영거제 시민모임(2002년), 일본군위안부할머니와함께하는마창진시민모임(2007년), 남해여성회(2013년), 거제 평화의 소녀상 건립기념사업회(2015년), 일본군 강제성노예피해자 진주평화기림사업회(2017년), 일본군 '위안부' 정의실현 경남연대(2018년), 경남지역 일본군'위안부' 역사관 건립추진위원회(2019년), 김복동평화공원양산시민추진위원회(2023년) 등이다.

◇지역·국제사회에 퍼진 평화 메시지 = 피해 할머니 지원 연대체는 △피해자 지원 △증언·구술 채록 △생존피해자 일대기와 교육 자료 제작 △조형물 설치 등 활동을 진행했다. 연대체들의 활동과 더불어 피해 할머니들도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고, 민관이 합세해 역사 교육자료를 만들거나 지역에 추모 공간과 조형물을 건립했다.

"위안소에서의 생활은 그야말로 지옥과 같았습니다. 눈 감기 전에 일본의 진심 어린 사과를 받는다면 여한이 없을 겁니다."

2019년 작고한 고 김복동 할머니는 국제사회 등에 일본군 '위안부' 피해 사실을 증언했고, 그의 증언은 '나를 잊지 마세요!'라는 증언록으로 경남도교육청 노력에 힘입어 2013년 출판됐다.
2016년 5월 20일 남해 숙이공원 평화의 소녀상을 방문한 박숙이 할머니. /경남도민일보DB
2014년 1월 17일 거제시 '평화의 소녀상' 제막식에서 김복득 할머니가 소녀상을 바라보고 있다. /경남도민일보DB

양산 출생 고 김복동 할머니는 1993년 유엔인권위원회에 일본의 전쟁 범죄와 피해 사실을 증언하고 이후에도 세계 각국을 돌며 평화의 소중함을 강조했다. 양산 시민사회계는 2019년 고 김복동 할머니가 숨진 후 5년 뒤 양산도서관 앞에 평화의 소녀상을 제막하며 할머니들 추모를 이어갔다.

남해에 살던 고 박숙이 할머니는 2012년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로 등록해 2016년 숨지기 전까지 지역 학교를 찾아 학생들에게 역사 교육을 하며, 피해 사실을 증언하는 데 여생을 바쳤다. 남해 지역사회는 할머니를 기억하고자 남해읍에 '숙이공원'을 조성해 인권교육의 장으로 활용하고 있다.

경남도는 2015년 전국 광역시도 최초로 8월 14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기림일을 지정하고, 공식행사를 매해 개최하고 있다. 다만 지역사회에서 줄기차게 요구하던 일본군 '위안부' 역사관 건립은 무산됐다. 2021년 경남도 연구용역은 '조사 자료 부족'과 '낮은 경제성'으로 타당성이 떨어진다는 결론을 내렸다.

올해 기준 경남 소재 추모 조형물은 12개로, 지역사회의 관심 등에 힘입어 건립이 차곡차곡 진행됐다. 피해 할머니 연대체는 지난해 9월 극우 단체가 경남을 찾아 벌인 소녀상 테러 행위에 맞서는 등 소녀상 지킴이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2024년 8월 14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기림의 날을 맞아 거제평화의소녀상 공원에서 소녀상에 헌화하는 시민들. /거제시

◇피해 할머니 유지 계승하려면 = 이들은 소녀상 건립 외 교육 프로그램 개발, 추모 공간 조성 등으로 피해 할머니들이 별세한 이후에도 그들을 추억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헌수 김복동평화공원양산시민추진위원회 위원은 "할머니들이 떠난 자리에 이런 안타까운 역사가 있었다는 것을 교육 프로그램 제작, 학교에 보급하는 등 방식으로 명맥을 이어가야 한다"며 "민간단체 차원에서 공간 조성은 쉽지 않은 일이기에, 지역사회와 조성 공감대를 형성하는 식으로 접근해나가야 할 것"이라고 진단했다.

김명희 경상국립대 사회학과 교수는 "할머니들이 감내해야 했던 피해 역사는 '위안부' 경험에 한정돼선 안 되며 국내 사회, 타국에서 겪은 생애사적 피해로 확장돼 연구해야 할 필요가 있다"며 "피해자들의 증언을 경청하고 기록한 '증언의 증언자들'인 활동가들의 역사 또한 학술적 연구 가치가 있다"고 밝혔다. 이어 "경남은 어느 지역보다 치열했던 피해 할머니 지원 운동이 있었던 곳"이라며 "'위안부' 역사를 복원하고 의미를 성찰하는 일본군 성노예 인권자료관이 만들어질 필요가 있으며, 운동을 이끌었던 민간을 주축으로 역사적 진실을 기록하는 데 주력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지난 윤석열 정부는 역사 정의 실현은커녕 일본의 입장을 대변하며 국민 가슴에 대못을 박았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5월 대선 후보 시절 "올해는 8.15 광복 80주년 되는 해"라며 "피해자 할머님들의 역사적 사실 규명과 명예회복, 그리고 피해 지원에 더욱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연대체들은 일본, 국내 극우세력의 일본군 '위안부' 역사 부정 또한 대응해야 할 과제로 꼽았다.

이경희 일본군위안부할머니와함께하는마창진시민모임 대표는 "일본의 역사 부정이 교묘하게 이어지고 있기에 국내 교육, 시민사회계에서도 이에 반론할 역사·교육자료를 튼튼히 갖춰야 한다"며 "국내 소녀상뿐 아니라 국외 소녀상을 향한 철거 목소리도 이어지고 있기에 이를 지킬 방법도 동원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안지산 기자

※ 이 기사는 지원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