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멀티탭이 부른 대형 화재…‘전기 폭탄’ 일상에 도사린다
수명 기준 없는 KC인증 제도 허점…전문가 “2년 주기 교체·문어발식 사용 금물” 경고

지난 10일 부산소방재난본부는 실제 화재 조건을 재현한 실험을 공개했다. 10A짜리 2구형 멀티탭에 에어컨(15A)과 온풍기(10A)를 동시에 연결하자 6분 30초 만에 배선 온도가 100도를 넘겼고, 7분 25초가 지나 전선 부근에서 스파크가 튀며 천 조각에 불길이 옮겨붙었다. 겉보기에 멀쩡했던 멀티탭이 순식간에 화염으로 변한 것이다.
문제는 정격전류를 초과하지 않아도 위험할 수 있다는 점이다. 멀티탭의 전체 허용 전류는 10A지만, 2구형일 경우 1구당 약 5A 이내로 사용하는 것이 안전하다. 온풍기 하나만 연결해도 1구 허용치를 넘을 수 있고, 에어컨처럼 작동 초기에 전류가 18A까지 치솟는 전자기기는 벽면 콘센트를 사용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것이 소방의 설명이다.
실제 소방청에 따르면 최근 5년간 여름철 에어컨 관련 화재는 꾸준히 증가세를 보여 2020년 221건, 2021년 255건, 2022년 273건, 2023년 293건, 2024년에는 387건으로 급증했다. 특히 무더위가 절정에 이르는 7~8월에는 전기적 원인으로 인한 화재가 집중된다. 최근 5년간 전국의 전기화재 7036건 중 26.2%인 1843건이 이 시기에 발생한 것으로 집계됐다. 고온다습한 여름철은 전기화재에 가장 취약한 시기인 셈이다.
멀티탭은 일상에서 자주 쓰이는 전기용품이지만, 정작 안전 정보는 부족하다. 최근 3년(2022~2024년)간 멀티탭 관련 화재는 전국적으로 931건에 달하며, 이로 인해 7명이 숨지고 37명이 다쳤다. 재산 피해 규모도 153억 원에 이른다. 대부분이 오래된 멀티탭에서 발생했지만, 제품에 사용 기한을 표시하지 않아 위험 징후를 미처 인지하지 못한 사례가 많았다.
정격전류 초과, 이른바 '문어발식 사용'도 원인이지만, 멀티탭 자체의 수명을 판단할 기준이 제도화되지 않은 점이 더 큰 문제로 꼽힌다. 현재 멀티탭은 KC 인증을 받으면 판매가 가능하며, 이후 안전관리나 수명 정보 표시는 업체 자율에 맡겨져 있다. 일부 대형마트 PB상품에는 1~3년의 권장 사용기간이 명시돼 있지만, 저가 제품 다수는 관련 정보가 아예 빠져 있다. 환경부는 멀티탭의 최대 사용 권장 기한을 2년으로 보고 있다.
멀티탭 화재는 전력 과부하 외에도, 피복 갈라짐이나 접촉 불량, 먼지 등으로도 발생한다. 특히 저용량 멀티탭일수록 전선이 얇아(1㎜) 열에 취약하며, 고용량(1.5㎜)이나 벽면 콘센트(4㎜)에 비해 안전성이 떨어진다. 전문가들은 "멀티탭은 본질적으로 '소모품'"이라며 "내구성을 맹신하지 말고 주기적 교체와 관리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멀티탭을 보다 안전하게 사용하려면 정격전류의 60% 이하만 사용하고, 한 구에 고용량 제품을 겹쳐 꽂는 '문어발식' 사용은 피해야 한다. 외관상 이상이 없더라도, 멀티탭에서 '딸깍' 소리가 나거나 흔들릴 경우, 피복이 갈라졌거나 색이 변했을 경우에는 즉시 교체가 권장된다. 먼지 제거 등 기본적인 청소도 정기적으로 병행해야 한다.
소방재난본부 관계자는"멀티탭은 정격 용량을 지켜도 환경이나 먼지, 배선 꼬임 등의 이유로 불이 날 수 있다"며 "2년 주기로 교체하고, 에어컨처럼 전력이 큰 제품은 반드시 벽면 콘센트를 쓰는 것이 안전하다"고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