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팔순 노모에게 월세를 받아야 하는 나라

팔순 노모에게 월세를 받아야 한다는 법 앞에서, 우리는 도대체 무엇을 위해 법을 만들고 지키고 있는가를 자문하게 된다. 최근 한성숙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후보자의 인사청문 과정에서 드러난 이른바 '편법 증여' 논란은 단지 한 후보자의 해명을 넘어, 상속세 및 증여세법의 현주소와 그 허점을 드러낸 계기다. 자식이 이사한 뒤 남은 집에 모친이 무상으로 거주한 것을 두고 '증여'라 하며 세금을 물리는 이 법 앞에, 상식은 자리를 잃었다.
문제의 핵심은 명확하다. 법은 원칙을 세우기 위해 존재하지만, 현실을 외면한 원칙은 삶을 옥죈다. 이번 사례에서 지적된 상속세 및 증여세법은 부동산 무상 사용에 따른 이익이 발생할 경우 증여로 간주하고 세금을 부과한다. 본인의 부모가 거주하더라도 그 기준은 예외 없이 적용된다. 이로 인해 자녀는 모친에게 월세를 받아야 하고, 모친은 증여세를 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한다. 이는 단지 법적 오류가 아니라, 가족 공동체에 대한 인식과 법의 기본철학이 맞닿는 지점에서의 구조적 균열이다.
가족 간 무상 거주를 '이익'으로 간주하는 법률은 시장 논리를 법체계 안에 무비판적으로 들여온 결과다. 물론 세법은 회피와 탈루를 막기 위해 일정한 엄격성을 유지해야 한다. 그러나 모든 상황을 동일하게 적용하면서 예외조항과 유연성이 없을 경우, 선의를 처벌하고 필요를 무시하게 된다. 이번 사례처럼 팔순의 노모가 수입도 없이 아들 소유의 아파트에 사는 것이 법적으로 '과세 대상'이 된다는 현실은, 세법이 '편법'을 방지하기보다 '평범한 삶'을 억누르는 장치가 되고 있음을 방증한다.
더욱 우려스러운 점은 국회의 반응이다. 이번 논란을 통해 드러난 법의 모순은 이미 수년 전부터 전문가들에 의해 지적돼 왔지만, 그동안 국회는 침묵으로 일관했다. 민생을 위한 법 개정은 차일피일 미뤄지고, 정치적 진영에 이익이 되는 법안은 전광석화처럼 처리된다. 대다수 국민이 겪는 불편함이나 납득할 수 없는 법적 모순은 국회의 우선순위에서 밀려난 지 오래다. 법을 바꾸는 것은 국회의 권한이자 의무다. 그런데도 '왜 지금까지 아무런 손질도 하지 않았는가'라는 질문 앞에 국회는 여전히 응답하지 않는다.
이러한 태만은 결국 국민의 법 감정과 신뢰를 갉아먹는다. "모친에게 월세를 받아야 하는지도 몰랐다"는 후보자의 발언이 단지 해명으로 들리기보다, 국민의 정서와 동떨어진 법제도를 반추하는 절규처럼 들리는 이유다. 상속과 증여의 문제는 단지 자산 이전이 아니라, 가족 간의 부양과 책임이라는 공동체의 기본 단위와 직결된다. 여기에 일률적인 과세 잣대를 들이대는 지금의 제도는 현실에 대한 깊은 이해 없이 만들어진 규범이다.
이제라도 국회는 민생법안의 우선순위를 재조정해야 한다. 국민의 일상에서 벌어지는 크고 작은 불합리들을 법과 제도로 해결하는 것이 입법기관의 본령이다. 단지 이번 논란의 해명을 넘어, 상속세·증여세법 전반에 걸쳐 현실 적합성과 형평성을 재검토해야 한다. 특히 고령 부모의 거주 문제, 부양책임과 관련된 세법상 예외 적용 가능성 등 실질적 개선책이 시급히 논의돼야 한다.
법이 국민을 위한 것이라면, 그 법은 국민의 삶에 닿아 있어야 한다. '국민을 위한 정치'를 말하기 전에, 국민이 겪는 일상의 불합리를 돌아보라. 법은 상식을 담아야 하고, 정치인은 현실을 읽어야 한다. 팔순 노모에게 월세를 요구해야 하는 나라에서, 이제는 법을 고쳐야 할 때다. 국민의 상식을 외면한 법은 더 이상 법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