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가 품은 삶의 철학, ‘쿰다’

4년 전 가을, 제주대 탐라문화연구원의 초청으로 바다 건너 남쪽 땅 파라다이스 제주를 찾았다. 이어진 학술회의장에서 '쿰다'라는 생소한 단어를 처음 접하게 되었다. 그런데 이에 대한 개인적인 무지도 잠시, 계속되는 연구자들의 발표 속에서 일련의 언어생활 속에 감추어진 제주 문화의 본바탕이 지닌 철학과 정신에 대한 강한 의문이 뇌리를 스쳐 지나갔다.
이후 육지로 돌아와 이런 내용들을 정리하면서, 실로 오랫동안 연구하고 확인해 왔던 한국 고유의 '한사상 내지 한철학적 사유'와 실천 가치의 세계 그리고 제주 '쿰다의 현실문화'가 밀접하게 서로 관계되어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육지가 서구화 도시화의 과정에서 고유한 한사상의 순수함을 상실한 데 비해, 제주는 오히려 실제의 현장으로서 독특한 의미로 남아 있었다. 곧 육지에서의 ᄒᆞᆫ의 사상과 문화가 정치 사회 역사적으로 변질해 왔다면, 제주 섬의 '쿰다'는 현실의 정치 사회와 거리를 두고 순수한 형태의 '한사상적 살림살이 문화'의 모델을 도리어 간직해 온 셈이라 할 것이다. 더하여 최근 대두된 글로칼리티의 측면에서, '쿰다'는 21세기 새로운 인문학과 미래적 현실의 모색이라는 주제와도 연결됨을 지금 느끼고 있다.
대개 철학은 세계관과 인생관의 학문이라고 말한다. 이 점을 고려하면, 올바른 세계관의 문제는 정당한 삶이란 윤리적 측면과 맞물리고, 올바른 인간관이란 삶에 대한 우려와 고통을 감소시켜 준다는 데서 그 참된 의의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지금 21세기, 양자역학과 AI는 새로운 과학이론과 현실적 가능성으로 현대를 선도하는 중이다. 그런데 그 내면의 세계관 즉 파동 입자 이중성의 중첩이나 얽힘의 양상을 한철학의 관점과 서로 대비한다면, 'ᄒᆞᆫ[韓, 一, 恨) 즉 하나 됨의 철학'은 단순히 헛된 구호나 고립된 문화 혹은 철학으로만 남지 않는다. 이는 오히려 형이상학의 측면에서 근원적 세계이해의 가능성을 지닌 보편 철학이 될 가능성이 훨씬 크다. 그리고 한국 정신의 핵심에 '한(韓) 또는 ᄒᆞᆫ 그리고 하나 됨'이라는 범주적 개념의 사유체계가 일정하게 자리하고 있음은 분명한 사실이다.
이 경우, '제주의 쿰다'는 지역 공동체의 생활 문화로서 한철학적 관점에 따라 저 옛날부터 창달 전승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제주 토속어 '쿰다'라는 용어와 함께 제주는 이에 따른 생활문화의 세계를 구축해 온 것으로 보인다. 현지인들에 따르면, 이는 현재 단어 자체로는 잘 쓰이지 않으며 대개 '드르쿰다'라는 복합어로 사용하고 있다고 한다. 이에 대한 설명을 보면, 대개 쿰다는 '품어 안다'라는 의미로 사전적 정의가 이루어지는데, 일상에서는 '드르쿰다'라는 말을 오히려 더 자주 쓴다는 것이다. 곧, '드르'와 '쿰다'가 합해진 복합개념이라는 의미다. 그 용례는 '마치 신경 쓰지 않는 것처럼 하면서, 건드리지 않고 상대를 품는다'라는 의미로 사용한다고 전한다. 그러면 제주 사람 김준표가 설명하는 '쿰다'의 뜻을 살펴보자.
"드르'쿰다'와 '싸다'의 의미…'한 켠에 던져두고 내버려두라'는 의미에 가깝기에 '두루싸다'보다 '드르싸다'가 바른 표현일 것으로 짐작된다. '드르'의 경음 발음인 '뜨르'가 '벌판'을 뜻한다는 것에 근거하여 '드르'를 해석하자면 '넓게 펼치는, 팔을 뻗어 거리가 멀어지는 범위' 정도를 뜻하는 접두어로 이해할 수 있다."
여기서 간단히 이해해본다. 만일 제주어 '드르'가 벌판이라는 뜻의 뜨르와 관련된다면, 이는 어쩌면 통 크게 살자는 의미와도 연결될 수 있다. 더하여 '드르싸다'에서 싸다가 내버려 둔다는 뜻을 함의하고 있다면, 이는 경상도 말로 '고마, 놔두라'라는 의미와도 상통할 것 같다. 충청도의 '냅둬요' 까지를 생각하면, 이는 어쩌면 한민족 고유의 정서 중 하나로써, '굳이 참견하지 마라. 또한 제 나름의 생활방식을 인정하라'라는 의미 또한 강하게 보유한 것으로 보인다. 즉 개입과 간섭을 통한 타율적 정체성, 다시 말해 자·타 구분의 명확함이기보다는 상호 승인을 통한 느슨한 연대로서의 同化라는 사회적 가치를 중시한다는 것이다. 여기에 또 다른 이해로, "혈연이어서 궨당이 아니라 함께 힘을 나눌 구성원들이어서 궨당이기에, '동네궨당,' '갑장궨당'이라는 표현"도 있다고 한다.
'드르쌍 내불멍'과 '쿰' 그리고 '궨당'까지, 이로부터 쿰다와 관련된 제주의 여러 언어를 확인할 수 있다. 이들을 고려하면, '쿰다의 문화'는 사실상 세상살이에 대한 대응 전략의 하나로, 제주인들이 받아들인 것으로 이해되기도 한다. 이는 아마도 화산섬으로서의 제주의 자연과 사회적 현실은 삶의 터전 자체를 뒤흔드는 근원적 불안의식과 그에 따른 대응의 형태, 두 가지 방면에서 살펴볼 수 있을 것이다.
섬이라는 지리적 특성은 외부와의 만남과 침탈이라는 태생적인 한계를 가진다. 이는 유토피아적인 평화와 고립의 상황이라기보다는, 외부와의 현실적인 접촉과 변화라는 문제의식을 포함하게 된다. 따라서 어떤 식으로든 제주인에게는 외부 세계에 대한 대응이 필요하게 될 것인데, 여기에 제공된 대응 전략으로서의 방식이 '쿰다의 생활문화'를 발전시켜 온 것은 아닐까 한다. 그리고 이 대목에서 한국문화 속에 자리한 '어울림'과 '함께 또는 같이 갑시다'의 철학적 의미를 떠올려본다.
섬이라는 특수한 환경 속에서 살아가든, 육지라는 개활지에서 살아가든, 이방인과의 조우 속에서 인간이 보여주는 일반 심리는 '기대와 염려, 평화와 불안'이라는 두 가지 상반된 감정을 지닌 채 만날 수밖에 없다. 소위 텃세라고 부르는 것 또한 일련의 타자에 대한 심리적 대응의 하나다. 육지든 섬이든 어느 곳이든, 이런 텃세의 문화는 항상 존재하고 있음을 확인한다. 다름에 대한 정신적 이해와 받아들임의 현실적 문제는 다르기 때문이다. 곧, 서로 다른 개인들이 하나의 공동체 속에서 같이 살아가고자 할 때, 여기에는 어떤 식으로든 일련의 문화방식이 제공되어 대응의 전략을 모색하지 않을 수 없다.
따라서 이러한 생활언어의 문화적 측면을 좀 더 깊이 추적해 본다면, '쿰다'의 제주 언어 역시 고유한 '한철학'과 만나고 있음을 추론해 볼 수 있을 것이다. [②편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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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제주대학교 탐라문화연구원 학술지 '탐라문화'(제68호, 2021. 11.)에 '쿰다와 ㅎㆍㄴ, 그리고 21세기'이라는 제목으로 실은 논문을 '제주의 소리'에 싣기 위해 일부 수정, 요약, 정리한 것이다.
중원(中垣) 민영현(閔泳炫)
경상남도 사천 출생, 철학박사.
부산대, 한국해양대, 동명대, 대구한의대 출강.
ONN닥터TV <명리학개론 실전사주풀이> 담당 진행.
<천부삼일원> - 양자·기학 연구소 心柱(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