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사람을 사람으로 만나 짓는 관계가 단단하다

기호일보 2025. 7. 13. 1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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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태운 인문공동체 책고집공동대표
강태운 인문공동체 책고집공동대표

미술인문 '화삼독(畵三讀)' 강의를 다니다 보면 다양한 강의실을 접한다. 아테네 야외 극장을 떠올리게 하는 층계식 공간은 시선이 무대로 집중되는 느낌이다. 대학 강의실 같은 정형화된 풍경은 호불호를 떠나 가장 익숙한 환경이다. 군데군데 잠자는 아이들이 섞인 학교 교실도 기억에 남는다. 교회 예배실에서는 마치 목사가 된 기분이 든다. 미술관은 덤으로 콧바람을 쐴 수 있는 곳이다.

가장 인상적인 강의장은 식탁 공간이었다. 생활인들은 가운데 4인용 탁자 2개를 붙이고 둘러앉아 밥을 먹는다. 기다란 탁자는 벽 쪽으로 붙였다. 그 양끝에 잡동사니가 놓여 있지만 식구가 늘면 혼자 밥 먹는 공간 같았다. 강의 자료를 띄울 TV 옆으로 수납장을 놓았고 전자레인지와 밥솥이 자리했다. 가로세로 모두 채 4m가 되지 않았다. 물리적으로 강사와 수강생 간의 거리를 느낄 수 없는 곳에서 작게는 7명, 많게는 12명과 오손도손 그림 이야기를 나눴다. 좁고 낮은 천장, 식기 특유의 소리, 밥 냄새 같은 생활의 감각들이 오히려 그림을 더 가까이 끌어당겼다. 사람과 사람이 서로의 온기를 느끼며 마주 앉은 이 풍경이, 어쩌면 인문학 강의실의 원형인지도 모른다.

거실과 복도를 활용한 강의장도 기억에 남는다. 이동식 스크린과 프로젝터, 접이식 의자를 놓으면 아담한 강의실로 변했다. 20명 남짓 수용이 가능하며 생활인들은 방에서 문을 열고 나오면 바로 수강생이 된다. 유리 창문으로 방 내부가 그리고 누워서 휴대전화에 시선을 고정한 생활인 몇 분이 보였다.

수강생 중에는 강사와 눈을 마주치지 않고 정면만 바라보는 분들이 있다. 강의 내내 표정 변화가 없다. 문화센터나 대학 강의처럼 듣고자 하는 의지로 충만한 준비된 수강생과는 분명히 다르다. 경직된 모습이라고 해서 강의를 거부하는 건 아니다. 강의가 끝나고 그중 한 분이 앞으로 찾아와 또박또박 소감을 얘기할 땐 온몸에 오싹 전율이 일었다. 하지만 끝까지 속내를 내비치지 않던 수강생 모습은 돌아가는 길 내내 뇌리를 맴돌았다. 왜 그들은 단단히 잠근 얼굴로 자리를 지키는가. 그 침묵은 나에겐 질문이었다.

미국에서 진행된 '클레멘트 코스(Clemente Course)' 사례에서 중요한 단서를 찾았다. 이 프로그램은 언론인이자 작가인 얼 쇼리스가 주도한 인문교양 교육으로,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에게 자존과 시민적 역량을 회복할 기회를 제공하려는 목적에서 출발했다. 그는 감옥, 빈민가, 보호시설 등에서 수강생들을 만나며 왜 그들이 인문학 강좌에서 침묵하거나 중도 포기하는지를 묻고 또 물었다. 그가 발견한 이유 가운데 하나는 '안전하지 않아서'였다. 그 한 줄에 시선이 오래 머물렀다. 강의를 준비하고 현장에서 그들과 만나는 동안 나는 한 번도 '안전'이라는 단어를 떠올린 적이 없었다.

우리 사회는 실패자의 말을 경청하고 공감하는 데 인색하다. 오히려 반면교사로 삼을 좋은 사례로 대상화해 관찰하고 분석한다. 노숙인은 사적 공간이 보장되지 않고 거리의 삶은 커튼 없는 유리창처럼 그대로 노출된다. 그런 일상의 무방비함이 오히려 그들의 침묵과 경직됨 그리고 방어적인 태도를 설명해 주는지도 모른다. 자기와 다르고 안전하지 않다고 느낀다면 그것이 무엇이든 방어적일 수밖에 없다.

인생의 격랑 속에서 누구든지 실패와 소외를 경험한다. 조심하지 않으면 소중한 걸 잃는다는 사실은 모두가 겪는 보편적 속성이다. 우리는 모두 사람인데, 사람이 사람을 사람으로 만나기가 쉽지 않다. 자신이 안전하게 보호받고 존중받고 있다는 느낌은 사람의 본능적 감각이다. 경계에 갇힌 시야를 크게 열고 서로 사람으로 알아가는 것. 존중하며 인사하고 편견 없이 그들의 정체성을 받아들이는 노력이 소통의 시작이다. 사람이 사람을 사람으로 만나 짓는 관계가 단단하다. 우리는 모두 사람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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