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대통령의 보수 스피커 활용법 [노원명 에세이]
![이재명 대통령이 11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언론인 오찬에 앞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정규재 전 한국경제신문 주필, 이 대통령, 조갑제 ‘조갑제닷컴’ 대표, 이규연 대통령실 홍보소통수석. [연합뉴스]](https://img3.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507/13/mk/20250713100302550llgk.jpg)
“이 대통령은 스트레스가 많을 텐데도 낙관적이었다. 대통령직을 즐기시는 것 같다.(…) 권력자가 합리적 대화를 할 수 있으면 일단 안심이 된다.”(조갑제)
언론인 조갑제, 정규재씨는 지난 11일 용산 대통령실에서 이재명 대통령과 두 시간 오찬을 가진 뒤 자신들의 유튜버로 이같이 전했다. 보통 기자들이 누구와 밥 먹고 이렇게 기사를 쓰지는 않는다. ‘야 노기자. 당신 참 비싼 밥 먹었구나’. 이런 눈총이 두렵기 때문이다. 그러나 유튜브는 자유로운 1인 매체이니 그럴 수 있다.
대통령실은 이 두 유튜버와의 오찬 회동을 사전에 공지하고 자리에 배석한 홍보수석이 사후 브리핑도 했다. 대화 내용에 따로 오프더레코드도 걸지 않았다고 한다. 앞서 약 30개 언론사 사장과 가진 만찬은 사전 공지도 없었고 대화 내용은 엠바고에 부쳐져 미디어전문 매체 취재를 통해서만 외부에 알려졌다. 사장단 만찬은 알릴 필요가 없지만 조갑제, 정규재는 홍보 효과가 있다고 봤기 때문일 것이다.
이 대통령은 대선 후보일 때도 조·정씨와 밥을 먹었는데 그때도 화제가 됐다. 두 사람은 보수적이면서 윤석열과 일찌감치 멀어졌다는 공통점이 있다. 보수에 속하면서 윤에 냉담한 사람은 수백만 명은 될듯 한데 어쨌든 이 대통령으로부터 상품성을 인정받은 사람은 두 사람이다. 그 이유를 잠깐 생각해 본다.
첫째, 영향력. 이들은 ‘찐윤’ 혹은 ‘선거부정 음모론’, 기타 코인팔이들을 뺀 우파 유튜버 중 구독자가 많은 편이다. 둘째, 다시 말하지만 윤석열을 매우 싫어한다. 이재명 대통령이 윤을 싫어하는 것보다 더 싫어할지도 모른다. 셋이 앉으면 그 주제로 토론이 가능할 것 같다. 셋째, 나이가 많다. 조씨는 1945년생이다. 무슨 자리를 달라고 할 나이는 아니다. 아직 칠십이 안 된 정씨는 총리나 장관이 가능하겠지만 조씨랑 세트로 엮였으니 자유롭지 않다. 넷째, 공명심. 이들은 기자답게 특종에 대한 욕심이 있다. 대통령과 만나는 것은 큰 특종이다. 그들 나이에 이처럼 떠들썩하게 주목받는 기자는 많지 않다.
대통령실 입장에서 조갑제·정규재는 1년에 한두 번 밥을 내는 것만으로 관리 가능한 보수 스피커인 셈이다. 이들이 밥 먹으며 ‘왜 그렇게밖에 못하느냐’고 입바른 소리를 하면 기분이라도 상하겠지만 둘은 즐겁기만 하다. “이 대통령은 블러핑이 없다. 진솔한 대화를 하시는 분. 대통령 중책에도 불구하고 일에 허덕인다는 느낌 전혀 안보였다. 약간의 비속어 섞어가면서 무해무득의 재미난 대화를 했다. 언어적 능력은 타고난 분이시다.”(정규재).
공자가 말한 ‘유붕이 자원방래하니 불역락호아’의 훈훈한 교유란 이런 것일까. 덕담만 하기도 2시간이 빠듯할 것 같다. 낙종하고 분위기 깨는 기자를 언론계에선 예전에 ‘곰바우’라고 했다. 두 성공한 기자는 무슨 독한 소리로 높은 취재원 기분을 상하게 할만한 곰바우가 못 된다.
그러나 제삼자인 내 눈에는 두 고참 기자가 좀 위태로워 보인다. 뭔가 착각하는 것도 같다. 권력자가 소탈한 느낌을 주는 것, 대화를 즐겁게 이끄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솔직하게만 말해도 상대는 감동하고 바보 같은 농담에도 소녀처럼 까르르 웃게 돼 있다. 그게 권력이 부리는 마법이다. 박정희도, 전두환도, 김영삼도, 김대중도 그랬고 노무현은 특히 그랬다. 심지어 ‘얼음공주’ 박근혜도 사석에선 그렇게 편안하다고 말하는 사람을 본 적이 있다. 권력자를 만난 범인들은 그를 좋아할 마음의 준비가 120% 되어 있는 사람들이다.
조씨는 이 대통령이 일본 문제에 대해 합리적인 말을 많이 했다고 전하며 “한일관계가 한미관계보다 더 안정적일 수 있겠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말했다. 정씨는 10년 전 중국 전승절 행사에 참석한 박근혜에 대해 “이 대통령은 박이 너무 나갔다는 식으로 말했다”고 전했다. 내가 볼 때도 이 대통령은 말을 솔직하게 하는 것이 큰 매력이다. 가령 취임 30일 회견에서 대통령이 여소야대에서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다는 점을 강조하며 “윤 대통령이 참 힘들었을 것”이라고 말했을때 귀가 솔깃했다. ‘대단한 객관주의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에게 썩 유리해 보이지 않는 말을, ‘그때는 나도 너무 했지’ 같은 뉘앙스로 말한다. 이런 화법은 상대의 예봉을 확 꺾어버린다. 조·정씨가 느꼈다는 ‘합리성’ ‘군더더기 없음’ ‘진솔함’이 이런 화법의 매력이다.
그런데 이런 화법를 즐겨 쓰는 사람은 사후 검증을 하는게 중요하다. 말은 수양버들인데 행동은 안 바뀌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말은 이명박처럼 하고, 행동은 문재인처럼 하기도 한다. 이재명 대통령은 야당 할 때도 말이 통하는 사람이라는 소리를 들었다. 그러면서 서른번 탄핵소추를 했다.
조갑제씨와 정규재씨는 앞으로 대통령과 밥 먹을 기회가 있거든 약속 장소에 가기 전에 대통령이 무엇을 실천했는지 한번 점검해 보기 바란다. 건설적 한일관계 기조는 계속되고 있는지, 중국 전승절 초대는 어떻게 대응했는지, 가덕도 신공항은 결단을 내렸는지, 조국 말고 최순실 사면도 신경 쓰는지, 누구 추천을 받아 지명했다는 이진숙 교육부 장관 후보자를 언제까지 끌고 가는지, 전두환 유골함 방치 문제에 대해 무슨 지시가 있었는지 등등(이상은 정규재씨가 전한 오찬 주요 화제들이다).
이 대통령과 밥 먹은 자랑, 대통령 능변 홍보는 대선후보 때 한번 했으면 됐을 것을 두 번째 들으려니 식상도 하고 한심한 생각도 든다. 보수를 대표해서 귀한 기회를 얻었으면 더 큰 얘기를 할 책무가 있다. 즐겁고 부담 없는, 무해무득한 말만 하지 말고 유해유득한 말도 좀 해보라. 그저 재미난 얘기를 나누는 친구 사이로 만났으면 밥만 먹고 자랑은 하지 말든가.
[노원명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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