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그림자가 짙어지는데…우리 하늘 지킬 시간은 많지 않다 [박수찬의 軍]

공군의 항공작전을 하늘에서 지휘·통제하는 조기경보통제기 4대를 3조원을 투입해 구매하는 항공통제기 2차 사업이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다.

사업 주관부서인 방위사업청은 입찰이 세 번 연속 유찰되자 지난 5월 26일 네 번째 입찰 재공고를 냈으며, 지난달 30일까지 제안서를 접수한 뒤 평가를 했다.

평가 결과 스웨덴 사브와 미국 L3해리스가 후보에 포함됐다. 지난 세 차례 입찰에서 모습을 드러냈던 보잉은 참여하지 않았다.

한국 공군 E-737 조기경보통제기가 활주로에 접근하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공군의 E-737 조기경보통제기 4대를 제작·공급한 보잉이 후속 사업에 참여하지 않게 되면서 사브의 글로벌아이와 L3해리스가 제안하는 G6500이 경합하는 구도가 만들어진 셈이다.

방위사업청은 사업 조건을 충족하는 기종이 있으면, 해당 기종을 선정한다는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글로벌아이와 G6500은 유럽과 이스라엘 기술이 적용된 기체다.

브라질 엠브라에르 C-390이 최종 선정됐던 대형수송기 2차 사업처럼 비(非)미국 기종이 도입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국내 사업 싹쓸이’ 보잉, 영향력 축소되나

방위사업청이 추진하던 항공통제기 2차 사업에선 보잉(E-7A)이 유력 후보로 거론되어왔다.

다른 기종보다 성능이 우위에 있고, E-737을 개량한 기종으로써 후속군수지원 등이 유리하다는 장점도 있다. 사업이 순조롭게 진행될 것이란 관측이 제기됐던 대목이다.

스웨덴 사브의 글로벌아이 조기경보통제기가 시험비행을 하고 있다. 사브 제공

하지만 사업 추진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2023년 11월과 지난해 2월 1·2차 입찰에선 제안서 평가 과정에서 2개 업체가 일부 필수조건을 충족하지 못했다.

지난해 4월 3차 입찰에선 필수조건이 충족돼 시험평가와 협상이 이뤄졌으나 가격협상에서 보잉·사브·L3해리스의 최종 제안가가 사업 예산을 초과해 유찰됐다.

방산업계에선 이번 재입찰을 앞두고 우려의 목소리가 적지 않았다. 3차 입찰 유찰 직후 실시된 재입찰을 앞두고 업체들이 제안서를 제출하는데 주어진 시간은 30일. 새로운 조건을 제시하기에는 시간적 여유가 부족했다.

이는 보잉에 상당한 악재로 작용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보잉의 E-7A는 미국 정부가 보증하는 대외군사판매(FMS) 방식으로 사업에 참여했다. FMS에서 방위사업청의 계약 상대는 미 국방부다. 미 국방부는 보잉과 별도 계약을 맺고 제품을 생산, 관리한 후 완성된 제품을 한국에 인도한다. 

FMS를 진행하려면 방위사업청이 요청서(LOR)를 미국에 보내고, 미국 정부가 가격·조건·일정·지원 내용이 포함된 제안 및 수락서(LOA)를 한국으로 보내야 한다. 이 과정은 단기간 내 이뤄지지 않는다.

방산업계 관계자는 “최대한 서둘러도 LOA가 한국에 오기까진 최소 3개월이 걸리고, 그보다 더 늦어질 수도 있다. 30일 안에 (LOA가 제출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이같은 상황에서 보잉의 입찰은 어려울 수밖에 없다.

L3해리스가 제안하는 조기경보통제기 상상도. L3해리스 제공

가격도 변수로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E-7A는 보잉 737기를 플랫폼으로 쓴다. 비즈니스 제트기를 사용하는 경쟁 기종보다 가격이 높다.

미 공군이 E-7A 도입을 결정해 미국과 공동발주 시 도입비와 운영유지비 하락 효과가 있을 것이란 관측이 나왔다.

하지만 최근 트럼프 행정부가 E-7A 대신 해군용 E-2D 조기경보기로 선회할 조짐을 보이면서 이마저 기대하기 어렵게 됐다.

트럼프 행정부의 불확실한 관세 정책도 영향을 미친다는 지적이다.

보잉 737은 미국 외에 여러 국가에서 부품을 들여와 조립한다. 관세 수준에 따라 기체 가격도 영향을 받는데, 국가별·품목별 관세는 확정되지 않고 있다. 보잉으로선 가격협상에서 제시할 가격을 정하기가 매우 까다로운 셈이다.

이같은 국면은 보잉의 AH-64E 공격헬기 36대를 추가 도입하는 대형공격헬기 2차 사업이 사실상 백지화 수순을 밟고 있는 것과 맞물려 보잉의 한국 내 입지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관측을 낳게 하고 있다.

미 공군이 도입하기로 했던 E-7A 조기경보통제기 상상도. 보잉 제공

◆남은 변수는 어떤 것일까

방위사업청과 사브·L3해리스와의 협상은 가격과 절충교역에 집중될 예정이다. 기술과 성능, 상호운용성 등은 기존 평가자료를 활용하고 가격과 절충교역만 재협상하면 협상 기간을 단축할 수 있다.

사브와 L3해리스는 보잉처럼 지난 3차 입찰에서 방위사업청이 정한 총사업비를 초과하는 가격을 제시했다. 이번 재입찰에서 상당한 수준의 비용 절감이 필요한 상황이다.

방산업계 관계자는 “기존 옵션들 중에서 일부를 빼는 식으로 비용을 낮추려 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사브 글로벌아이는 캐나다 봄바디어 G6500 비즈니스 제트기에 자사의 최신 에리아이(Erieye)-ER 레이더를 탑재했다. 체공시간은 13시간에 탐지거리는 650㎞이며, 수천개의 표적을 동시에 추적할 수 있다고 사브는 설명하고 있다.

공군이 요구하는 360도 감시정찰 능력을 갖추고자 전방과 후방에 레이더를 추가했다.

아랍에미리트(UAE), 스웨덴 등이 도입했으며, 프랑스도 구매를 검토하고 있다.

L3해리스는 봄바디어 G6500 기체에 이스라엘 항공우주산업(IAI)의 레이더를 탑재한 모델을 제안했다. 다만 납품실적은 없다.

사브와 L3해리스는 대형 여객기를 사용하는 보잉 E-7A와 달리 비즈니스 제트기를 플랫폼으로 쓴다.

국내에선 비즈니스 제트기가 생소하지만 해외에선 전자장비가 소형화되어 비즈니스 제트기에도 탑재할 수 있게 됐고, 엔진 성능이 높아져서 장기 체공이 가능해지면서 비즈니스 제트기가 군용으로도 널리 쓰이고 있다. 

한국 공군 E-737 조기경보통제기가 착륙을 위해 활주로에 접근하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사업 수주와 절충교역 충족을 위해 사브와 L3해리스는 국내 업체와도 손을 잡았다.

사브는 지난해 10월 한국항공우주산업(KAI)과 산업 협력·기술 이전을 위한 업무협약(MOU)을 맺었다. 사브는 글로벌아이 제작 과정에서 KAI와 항공역학 개조, 시스템 설치, 테스트 등을 협력하기로 했다.

L3해리스도 2022년 12월 대한항공을 국내 사업 파트너로 선정, 항공통제기 2차 사업 수주 시 개조 및 부품 양산 등 국내 생산 전반과 운용 인원에 대한 교육 훈련 및 교범 제작 등을 협력하기로 했다.

하지만 일각에선 우려의 시선이 여전하다. 30일 안에 비용을 총사업비 수준으로 인하하는 것이 가능하느냐는 것이다.

보잉만큼은 아니지만, 두 업체 모두 3차 입찰에서 상당한 액수를 초과했다. 성능에 영향을 미치지 않으면서 절충교역을 충족하는 비용 구조를 방위사업청에 제시할 수 있을지는 불확실하다.

납기 준수 여부도 변수다.

글로벌아이는 한국의 요구를 반영한 성능개량이 이뤄져야 한다. 복수의 레이더가 수집한 정보를 단일 화면에 제공하려면, 새로 장착하는 레이더와 기존 레이더 및 센서를 체계통합해야 한다. L3해리스는 납품실적이 없다.

스웨덴 사브의 글로벌아이 조기경보통제기들이 시험비행을 하고 있다. 사브 제공

이같은 요소들은 잠재적 리스크에 대한 부담을 높인다. 리스크가 현실화하면 납기가 지연될 위험도 높아진다.

이번에도 협상에서 뚜렷한 성과를 거두지 못한다면, 기종 선정은 내년으로 넘어갈 수도 있다. 

이때는 사업의 원만한 추진을 위해 총사업비 증액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질 전망이다. 사업비를 늘리려면 기획재정부와 협의를 진행해야 하고, 필요에 따라서는 사업타당성조사를 거쳐야 할 수도 있다. 사업 지연 가능성이 제기되는 대목이다.

이같은 절차를 거쳐 재입찰을 진행하게 되면, 보잉이 입찰에 다시 참여해 3파전 구도가 복원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트럼프 행정부가 국방비 및 주한미군 방위비분담금 대폭 증액을 압박하는 국면에서 미국산 무기 구매 확대는 정부가 검토할 수 있는 옵션 중 하나다.

북한이 개발한 조기경보통제기가 활주로를 이륙하고 있다. 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

공군이 기존에 운영하는 E-737 4대는 거의 매일 휴전선 일대 대북 감시에 투입돼 작전·운영유지 부담이 커지고 있다. 북한은 독자적인 조기경보기를 개발해 통합적인 항공작전을 수행할 채비를 하고 있다.

대북 감시와 공중전 지휘 등을 위해선 조기경보통제기 전력 강화가 필수인 만큼 공군이 원하는 기종을 적절한 시기에 전력화할 수 있도록 사업추진전략을 면밀하게 구성해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되는 대목이다. 항공통제기 2차 사업을 추진하는 방위사업청에 군과 방산업계의 관심이 쏠리는 이유다.

박수찬 기자 psc@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