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에 일을 할 것인가?’ 국민투표로 물었더니 [평범한 이웃, 유럽]

2011년 5월, 내가 스위스 취리히로 온 지 얼마 안 되었을 때의 일이다. 토요일 오후에 동네 마트에서 쇼핑을 하고 있었다. 상품의 독일어 설명을 사전 찾아가며 더듬더듬 읽고 있는데 매장 직원이 다가와 문 닫을 시간이니 나가달라고 했다. 바깥이 아직 환한데 영업 종료라니, 당황해서 시계를 봤다. 6시를 갓 넘긴 시각이었다. 급히 계산을 마치고 나와 보니 매장 입구에 토요일 영업이 6시까지라고 안내되어 있었다. 난감했다. 필요한 걸 다 사지도 못한 데다 다음 날인 일요일은 마트가 아예 문을 닫기 때문이었다. 주말이 훨씬 붐비는 한국의 대형마트 쇼핑에 익숙했던 나는 답답했다. 고객이 많은 주말에는 오히려 영업을 더 길게 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당연하게 여겼던 것이 당연하지 않을 수도 있음을 받아들이는 데는 시간이 제법 걸렸다. 이후 스위스 마트 영업 규정에도 변화가 생겼고, 내가 갔던 마트도 요즘은 토요일 저녁 8시까지 문을 연다. 하지만 일요일은 여전히 휴업이다.
스위스에서는 ‘일반적으로’ 일요일 근무가 금지되어 있다. 이 말은 정부 당국에서 승인을 받고 대상 직원의 동의를 얻은 경우 일요일 근무도 가능하다는 뜻이다. 일요일 근무자는 특별한 수고를 더 하는 것으로 간주되므로 이에 대한 보상도 추가로 주어진다. 우선 시급이 평일에 비해 50% 더 높다. 휴가도 늘어난다. 일요일 근무가 5시간 이하인 경우 4주 이내에 동일한 시간의 휴가를 사용할 자격이 생긴다. 5시간 이상 근무했다면 2주 내에 (기존 휴식 시간을 제외하고) 최소 24시간 연속 휴식 시간이 주어진다. 휴가를 대신해 현금으로 보상을 지급하는 것은 불법이다. 정부의 허가를 받지 않고도 일요일 근무가 합법인 직종이 일부 존재하긴 한다. 의료, 언론, 접객 분야, 그리고 신문 가판대나 제과점, 극장 등이다. 마트는 여기 포함되지 않는다.
하지만 마트야말로 시간에 관계 없이 수요가 발생할 수 있는 필수 업종이 아닌가. 예상치 못한 긴급 상황이나 여행객의 수요를 맞출 필요가 있고, 따라서 스위스에서도 예외적으로 최소한의 일요일 마트 영업은 허용한다. 공항, 기차역, 주유소, 그리고 산악 관광지대에 있는 마트가 그에 속한다. 어떻게든 영업시간을 늘리려는 대형 유통업체들은 이 예외 조항을 확대하려고 로비를 하거나, 또는 규정의 허점을 파고들어 문을 열기도 한다. 일요일 근무를 법으로 금지한 정부와 이를 우회해 영업하려는 유통업체, 그리고 최전선에서 이를 막으려는 노조 사이의 밀고 밀리는 싸움이 끊이지 않는다. 그중에서도 특히 흥미로운 케이스가 하나 있다. 취리히 시내 중앙역 인근의 촐슈트라세(Zollstrasse)에 있는 ‘미그로 데일리(Migros Daily)’를 둘러싸고 최근 몇 년 동안 벌어지고 있는 일이다. ‘미그로(Migros)’는 스위스에서 가장 큰 유통 체인이고 미그로 데일리는 그 하위 브랜드다. 한국으로 치자면 ‘이마트’의 자회사인 ‘이마트24’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촐슈트라세에 미그로 데일리가 문을 연 건 2019년 5월이다. 이 논란에서는 매장의 위치가 중요하다. 매장은 취리히 중앙역 18번 플랫폼 바로 길 건너에 있어서 역과 아주 가깝지만 엄밀히 말하면 기차역 외부에 있다. 역의 경계선과 매장 입구까지는 10m도 채 되지 않는다. 미그로는 이를 중앙역에 속하는 매장, 즉 법적으로 일요일 영업이 허용되는 위치라 판단하고 주 7일 문을 열었다. 하지만 스위스 최대 노조 우니아(Unia)는 중앙역 밖에 있는 미그로 데일리의 일요일 영업이 불법이라며 경제노동청(AWA)에 이의를 제기했다. 경제노동청이 불법임을 인정하면서 미그로 데일리는 영업을 잠정 중단했다.

그러나 미그로 데일리는 고객 셀프 계산대를 설치하는 리노베이션을 거쳐 2020년 10월 다시 문을 열었다. 일요일에 누군가 근무를 하는 게 불법이라면, 사람 없는 무인 매장은 합법이라는 해석이었다. 이번에는 경제노동청도 문제가 없다며 일요일 영업을 허용했다. 우니아가 보기에 그것은 꼼수였다. 우니아의 조사 결과 판매 직원은 없었지만 매장을 지키는 경비원이 일요일에 근무를 하고 있었다. 경비원은 아침에 출근해 매장에 불을 켜고, 셀프 계산대 줄을 감독하고, 노숙자나 주취자 등을 매장에서 쫓아내고, 고객이 쇼핑하다 쏟은 음료를 치우는 일까지 하고 있었다. 문제는 또 있었다. 일요일 아침에 미그로 데일리에 빵 등의 신선식품을 비치하기 위해 인근 중앙역 내 일요일 근무가 허용되는 다른 매장 직원들이 이 매장으로 빵을 배송해왔다. 무인 매장이라던 촐슈트라세 미그로 데일리의 일요일 영업을 위해 경비원과 타 매장 직원들이 일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우니아는 이것이 불법행위라고 고소했고, 취리히 행정법원은 우니아의 손을 들어주었다. 2022년 봄, 미그로 데일리의 일요일 영업은 다시 중단됐다.
무인 매장의 일요일 영업은?
이게 끝이 아니다. 미그로 데일리가 일요일에 문 열고 닫기를 반복하던 사이 촐슈트라세에 변화가 생겼다. 취리히 시가 이 거리 일부를 재개발하며 차량 통행금지 구역으로 지정한 것이다. 중앙역 바로 옆에 있는 거리라 늘 여행객으로 붐빈다는 점을 고려한 조치였다. 그러자 미그로 측은 이 거리에 위치한 문제의 매장이 일요일 영업이 합법인 ‘여행객 수요를 충족하는 사업체’로 분류될 수 있다며 다시 주 7일 영업을 시작했다. 우니아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고 사건은 또 법원으로 갔다. 취리히 행정법원은 올해 3월 내린 판결에서 다음과 같이 결론 내렸다. “중앙역 바로 옆 차량 통행금지 거리라 하더라도, 이 거리에 있는 모든 상점을 단순히 ‘여행객 수요를 충족하는 사업체’로 분류할 수는 없다. 규정의 목적은 여행객들이 여행 중 필요한 상품과 서비스를 쉽고 빠르게 구매하도록 하는 것인데 중앙역 내에 이를 위한 매장들이 이미 존재한다. 미그로 데일리는 여행객을 위한 매장이라기보다 동네 매장이므로 일요일 영업이 여전히 금지된다”. 다시 한번 우니아가 이긴 것이다. 미그로는 현재 연방 대법원에 항소하고 결과를 기다리는 중이다.
위의 케이스는 스위스에서 진행 중인 일요일 마트 영업 논란의 한 사례일 뿐이다. 비슷한 일이 여기저기서 진행 중이다. 코로나19 팬데믹을 거치며 소매업이 많이 위축된 데다 온라인 쇼핑이 늘어나면서 일요일 마트 영업, 정확히는 일요일 근무를 둘러싼 찬반 논란이 더 격렬해지고 있다. 한국에서 꼭 등장하는 ‘전통시장 보호’ 같은 근거는 없지만, 스위스(취리히) 사회도 나름의 이유로 일요일 영업을 찬성 또는 반대한다.
찬성 입장을 보자. 첫째, 시대가 변했다. 오래된 일요일 휴무 전통의 기반은 기독교이지만 취리히는 더 이상 종교가 지배하는 도시가 아니다. 둘째, 노동자에게 일요일에 무조건 쉬라는 건 개인의 자유 침해다. 가족 모임 역시 일요일에 하든 말든 국가가 관여하지 말아야 한다. 셋째, 병원, 운송, 언론처럼 일요일에 근무하는 직종이 있다. 마트 영업을 막는 건 직종 차별이다. 넷째, 일요일 영업은 일자리를 창출하고 경기를 부양한다. 다섯째, 기차역이나 공항에 매장을 낼 여력이 있는 대형마트만 일요일 영업이 가능하므로 그럴 수 없는 소상공인에 대한 차별이다. 여섯째, 런던이나 파리 같은 다른 대도시는 일요일에도 마트 영업을 하는데 취리히만 안 하면 국제도시로서의 위상이 떨어지고 관광객이 줄어든다. 일곱째, 24시간 문 여는 온라인 쇼핑몰과 경쟁하려면 일요일 영업이 불가피하다.
반대 근거도 만만찮다. 첫째, 굳이 일요일까지 물건을 사고파는 성장 위주의 소비 문화를 지양한다. 둘째, 일요일 근무자의 쉴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 주로 저임금 노동자인 이들은 일요일 근무를 거부할 수 없고 번아웃, 우울증, 심혈관질환 등에 시달린다. 셋째, 가족이나 친구와 모임이 많은 일요일에 일하는 사람은 사회적으로 고립될 가능성이 높다. 넷째, 경기부양은 환상이다. 예산은 어차피 한정적이므로 일요일 영업 때문에 소비자의 지출이 늘어나는 건 아니다. 다섯째, 일요일 영업은 판매직뿐 아니라 물류, 보안, 청소, 회계 등 다른 직종에 연쇄적 업무 부담을 지워 스트레스가 사회 전체로 확장된다. 여섯째, 일요일에 문 연다고 온라인 쇼핑몰을 이길 수는 없다. 온라인 쇼핑몰은 일요일 판매 때문이 아니라 편리함, 다양한 선택지, 낮은 가격 등 다른 이유로 경쟁력이 높다.
‘고객은 왕이다!’ 투표의 결과
논쟁을 따라가다 보면 일요일 영업(근무)을 어떤 관점에서 바라봐야 할지 혼란스럽다. 핵심을 어디에 둘 것인가? 지켜야 할 종교적 전통인가, 양보할 수 없는 노동자의 권리인가, 시대에 맞춰 자연스럽게 변해야 할 생활 방식인가, 일요일에 돈을 버는 것은 특권인가 희생인가? 정부는 기업과 개인의 경제활동을 어디까지 보장하고 어떻게 보호해야 하나? 주요 사안에 대해 국민이 투표로 결정을 내리는 직접 민주주의 나라이니만큼, 어쩌면 투표 결과야말로 가장 투명하고 합리적 결론일지도 모른다. 스위스 국민은 일요일 근무를 어떻게 볼까? 19세기에 만들어진 노동법에 근거해 원칙적으로 금지됐던 일요일 노동이 기차역 내 매장이라는 한정된 공간에서나마 허용된 것은 2005년 11월 실시된 전국 국민투표에서였다. 찬성 51%라는 근소한 차이로 이뤄진 변화였다. 하지만 7년 뒤인 2012년, 스위스 최대 칸톤이자 경제 중심지인 취리히에서 치러진 영업시간 완전 자유화 투표(이 안건의 별칭은 ‘고객은 왕이다!(Der Kunde ist König!)’였다)에서는 반대 71%로 유권자들이 명백한 거부 의사를 드러냈다. 스위스 고객은 왕이 되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지금 취리히에선 또 다른 중요한 논의가 진행 중이다. 일요일 영업 금지라는 원칙에도 불구하고 현재 1년에 4회까지 일요일 영업을 허용하며 업체들은 이 기회를 사람들이 쇼핑을 많이 하는 크리스마스 휴일 전에 주로 이용한다. 이것을 총 12회까지 늘리자는 안건이다. 취리히 자유민주당(FDP)이 주도한 이니셔티브로, 하원 경제위원회에서 통과됐고 이제 국가평의회 통과를 기다리는 중이다. 우파 정당과 기업은 침체된 경기를 살릴 수단이라며 이 안건을 홍보하고, 좌파 정당과 노조는 저임금 근로자의 처지가 악화될 것이라며 우려한다.
스위스 ‘일요일 연합(Sonntagsallianz)’은 노동 없는 일요일을 주장하는 단체로 노조와 교회, 직업의학협회 등이 주요 회원이다. 이 단체의 웹사이트에는 일요일 휴무 근거 중 하나로 “서기 321년 로마 황제 콘스탄티누스의 칙령 이후 약 1700년 동안 일요일은 우리 사회에서 법적으로 보호되는 휴업일이었다”라는 설명이 나와 있다. 현재 벌어지는 첨예한 논쟁의 수준에 비해 황제의 칙령이라는 건 맥빠지는 근거다. 이보다는 휴일 근무가 육체적·정신적 건강에 미치는 영향, 시장의 판도를 바꾼 온라인 쇼핑몰과의 합리적 경쟁 방안 등에 대한 고민이 시급할 것이다.
취리히·김진경 통신원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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