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의 등장과 '저자'의 죽음 [PAD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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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저자의 죽음'이라는 제목부터 눈을 끄는 6월 4일자 노에마 기사는 저자의 존재를 역사적으로 짚어봅니다. 사실 저자, 저작권이라는 것에 우리가 관심을 가졌던 것은 역사적 산물이라고 합니다.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구전'(口傳)의 시대에는 누가 '원 저자' '원 창작자'인지 관심이 없습니다. 밀양아리랑의 원 작곡자가 누구인지 아시나요? 이 기사에 따르면 인쇄술과 대량 인쇄물의 등장에 따라 누가 판매의 댓가를 받아야하는지라는 경제적, 법적 문제가 발생했고, 이에 따라 '저자가 누구인가'라는 문제에 관심이 생겼다고 합니다. 그리고 지식이나 아이디어, 창작의 '개인화' '사유화'가 발생했습니다. 생각도 개인화, 사유화됩니다. 데카르트가 'cogito ergo sum' 즉 '생각한다고 고로 존재한다'고 한 것이 대표적입니다. 생각은 내가 하는 것이라는 근대적 자의식입니다. 사실 어떻게 보면 한 나라와 한 시대의 집단적 정신(Geist)이 유령처럼 세상에 떠돌면서 전개되는데, 어떨 때는 A라는 사람의 뇌와 몸을 빌려 생각을 전개하고 다른 때는 B라는 사람의 뇌와 몸을 빌려 생각을 이어간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우리의 개인적 머리는 집단적 정신이 잠시 빌려 쓰는 숙주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이 기사는 근대적 '저자' 개념 집착을 이제는 버릴 때가 된 것이 아닌가 반문합니다. 이 '저자'라는 역사적 현상에 집착하다보니 AI의 LLM(대규모언어모델)에 심리적, 정서적으로 저항하고 있는 것 아닌가라는 비판입니다. LLM은 세상에 떠도는 당대의 말들을 정리해서 제시합니다. 무슨 생각이 있는 것이 아니라 통계적으로 가장 주류가 되는 말들을 제시하는 것입니다. 생각의 주체가 만든 말이 아니라 그냥 세상에 떠도는 말들이기 때문에 '생각없는 말들' 아니냐며 무시할 수도 있습니다만, 사람인 '내'가 말들을 이용해 내 생각을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의 말들(ideas)이 사람인 '나'를 이용해 자신들을 전개하고 표현한다는 시각에서 본다면 주체 없는 말들이라고 해서 가치가 떨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노에마 기사는 그런 점에서 이제 '저자는 죽었다'고 선언하면서 대신 '비평적 독자의 탄생'을 주장합니다. 세상의 공기 중에 떠도는 아이디어를 사람 저자든 AI든 누군가가 정리해주면 그것을 결국 선별하고 비평적으로 읽어내는 것은 독자이며, 독자만이 단단한 실체로서 문화의 중심이 될 것이라는 주장입니다. 독자 여러분도 한번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은 생각의 주체인가요? 아니면 말(또는 idea)이 여러분의 눈과 귀로 들어왔다가는 뇌와 혀를 통해 세상으로 다시 나가 돌아다니는 건가요? 기사 전문은 PADO 웹사이트(pado.kr)에서 읽을 수 있습니다.

지금 이 글을 비롯해서 어떤 글이든 접할 때 우리는 자연스럽게 "누가 이 글을 썼는가, 그래서 이 내용에 저자(author)로서 권위(authority)를 부여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지게 된다. 이를 확인하기 위해 저자에 관한 정보를 찾아보기도 한다.
저자가 누구인지는 이 글의 진리성을 가늠하는 데 중요한 기준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약력을 통해 내가 미국의 한 대학에서 커뮤니케이션학을 가르치는 교수임을 확인하게 되면, 독자는 내가 이 글에서 다루려는 '대형언어모델(LLM)의 출현이 가져온 혼란'에 대해 논할 적절한 위치에 있고, 내가 제시하는 견해 역시 어느 정도 신뢰할 만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결국 독자는 저자의 정체를 파악했고, 그가 이 주제에 관해 일정한 권위를 가진 인물이라고 판단할 것이다.
그러나 텍스트가 챗GPT, 클로드, 딥시크와 같은 LLM에 의해 생성된 경우에는, 저자가 누구인지 안 보인다. 기술적으로는 알고리즘이 글을 작성했지만, 이를 실행시키기 위해서는 인간이 프롬프트를 제공해야 한다. 그렇다면 진정한 저자는 누구인가? 알고리즘인가, 인간인가, 아니면 양측의 공동 작업인가? 그리고 이 질문은 왜 중요한가?
2022년 챗GPT 출시 이후, 인간 저자의 종말을 한탄하는 많은 논평이 쏟아졌다. LLM이 글쓰기라는 행위를 완전히 장악하거나, 인간이 고유의 창의성을 그들에게 지나치게 넘기게 될지도 모른다는 우려의 목소리였다.
지난해 한 저널리스트는 이 기술의 발전으로 인해 우리는 "말을 잃고, 생각을 잃고, 자아를 잃게 될 것"이라고 개탄했다. 하지만 그는 영향을 받는 것은 비단 작가만이 아님을 강조하면서 이렇게 덧붙였다. "만약 AI가 인간의 글쓰기를 정말로 대체한다면, 독자이자 작가인 우리 인간은 과연 무엇을 잃게 될 것인가? 우리가 치를 대가는 이전의 그 어떤 자동화의 물결도 견줄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날 것이다."
하지만 나는 생각이 다르다. LLM이 저자라는 개념의 종말을 시사할 수는 있지만, 그것은 결코 우리가 애도해야 할 상실이 아니다. 오히려 LLM은 해방을 의미할 수 있다. 그것이 작가와 독자 모두를 '저자'라는 이름의 권위적 통제와 영향으로부터 자유롭게 하기 때문이다.
(계속)
김수빈 에디팅 디렉터 subin.kim@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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