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 인사이드] 꿀벌은 돌아갈 곳이 있는데 사람은 돌아갈 곳이 없다… ‘꿀벌마을 이야기’

마주영 2025. 7. 12. 1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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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천 꿀벌마을 화재민 비상대책위원회가 9일 오전 과천시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과천시와 GH에 긴급 주거대책 마련과 꿀벌마을 내 철조망 철거 등을 요구하고 있다. 2025.7.9 과천/박상일기자 metro@kyeongin.com


“십수년을 살아온 곳인데 하루아침에 철조망을 두르고 한 발도 딛지 못하게 했습니다.”

지난 11일 오전 10시께 찾은 과천시 과천동 꿀벌마을. 한때 마을을 가득 채웠던 비닐하우스들은 온데간데 없고 텅 빈 땅과 주변을 빙 두른 가시 철조망이 보였다. 철조망 너머로 ‘본 토지는 과천과천 공공주택사업 시행자 경기주택도시공사(GH) 소유 토지로, 허가 없이 출입하거나 시설물 등을 훼손할 경우 민형사 법적 조치 예정이다’는 내용의 현수막이 눈에 들어왔다.

앞서 지난 3월 22일 이곳에 불이 나면서 비닐하우스 22개동(주거용 17개동)이 전소했고, 56세대 이재민 90여명이 발생했다. 임대주택으로 대피한 8세대를 제외한 나머지 48세대는 화재 후 마을회관과 경로당, 빈 비닐하우스를 전전했다.

석 달이 지난 지금, 이들은 이재민에서 철거민으로 내몰리고 있다. 꿀벌마을은 과천시 3기 신도시 개발지구에 포함돼 올해 말부터 본격 개발과 철거를 앞두고 있기 때문이다. 현행법상 비닐하우스를 주거 용도로 사용하는 것은 불법이기 때문에 주민들은 주거권을 지킬 방법도 없다.

지난 3월 화재가 발생한 과천 꿀벌마을 내 토지에 경기주택토지공사가 출입통제를 알리는 현수막을 게시하고 철조망과 CCTV를 설치해 출입을 막고 있다. 2025.7.9 과천/박상일기자 metro@kyeongin.com


삶의 터전을 다시 세워보려는 주민들의 시도는 곧바로 좌절됐다. 이재민 홍승순(62)씨는 “떠돌이 생활을 견디지 못한 사람들이 잿더미를 직접 치운 뒤 새로 비닐하우스를 새로 세우려고 철골을 세웠다”며 “그러자 GH에서 찾아와 땅 위에 철조망을 두르더니 감시 CCTV까지 설치하고 갔다”고 토로했다.

GH 관계자는 “해당 부지는 과천 공공주택 재개발 지구로 편입됐으며 현재 법적으로 GH 사유지”라면서 “더 이상 불법 건축물인 주거용 비닐하우스를 지어선 안 된다고 주민들을 상대로 수차례 계도했지만 소통이 되지 않았다”고 철조망을 두르게 된 배경을 전했다.

재개발을 앞둔 동네의 풍경은 크게 다르지 않다. 서울시 강남구의 마지막 판자촌으로 불리는 구룡마을은 수십억원대 고급 아파트가 둘러싸고 있다. ‘준강남’으로 불리는 과천시 역시 비닐하우스가 모인 꿀벌마을 일대에 20억원 대를 호가하는 아파트들이 밀집해 있다. 일대 개발이 시작되면 이들은 어김 없이 살던 곳을 내어주고 또 다른 비닐하우스를 찾아 떠나야 한다.

정부도 손을 놓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비닐하우스, 컨테이너 등 비주택 거주자들이 최소한의 비용으로 보다 나은 환경에 거주할 수 있도록 주거 사다리를 마련했다. 하지만 이들은 ‘주거 사다리’를 탈 여력이 없다고 자조했다.

사진은 과천시 꿀벌마을 주거용 비닐하우스 단지가 화재로 인해 잿더미로 변한 모습. /경인일보DB


꿀벌마을 주민 A씨는 “주택 보증금 지원 기준 금액의 5%만 입주자가 부담하고 나머지는 LH에서 지원한다고 안내를 받았고, 좋은 혜택이라고 생각한다”면서도 “한편으로는 비닐하우스를 지어서 살면 주거 비용이 거의 들지 않는다는 생각에 이곳에 머무르게 된다”고 말했다.

공공임대주택도 입주가 쉽지 않은 것은 마찬가지다. 홍 씨는 “8평짜리 임대주택의 매달 임대료만 23만원이고 관리비 10여만원은 별도”이라며 “마을에 사는 노인들은 연금 30만원을 쪼개서 병원비로 쓰고 있는데, 연금을 전부 주거 비용으로 부담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일상의 흔적이 가득한 마을에 철조망이 둘러졌고, 철조망 너머엔 집으로 돌아갈 수 없는 사람들이 있다. 꿀벌은 돌아갈 둥지가 있는데 꿀벌마을 주민은 돌아갈 주택이 없다.

주민 황모(64)씨는 비닐하우스에서 호롱불을 켠 채 생활하고 있다. 불이 나면서 물과 전기가 모두 끊긴 지 세달이 지났지만, 복구가 지지부진해서다. 비닐하우스로 안으로 들어가니 에어컨과 선풍기가 작동하지 않아 열기에 숨을 쉬기가 힘들었다. 황 씨는 “이제는 이 동네에서 나가라는 뜻으로 아무도 도와주지 않는 것 같다”며 한숨을 쉬었다.

그는 “마을 주민 중 비닐하우스에 사는 것을 자랑스러워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며 “이곳 말고는 더 이상 갈 데가 없어서 서로 의지하면서 살아 있는 것”이라고 했다. 이어 “우리도 이곳에 주소지를 둔 과천 시민인데 비닐하우스에 산다는 이유만으로 이렇게 내쳐지는 게 맞느냐”고 되물었다.

국토교통 통계누리의 주택이외거처 주거실태조사에 따르면 지난 2022년 기준 판잣집과 비닐하우스에 거주하는 사람은 1만132가구에 달했다. 주택이외에서 임대주택으로, 임대주택에서 자가주택으로 이동하는 사다리는 있지만 사다리 아래엔 미처 사다리 오를 의지조차 갖지 못한 사람이 많다.

/마주영 기자 mango@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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