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번이나 뒷통수 맞은 도시의 눈물, 유랑자 농구팀의 미래는? [추동훈의 흥부전]

추동훈 기자(chu.donghun@mk.co.kr) 2025. 7. 12. 1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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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부전-112][오리저널-32]브루클린 넷츠

[오리저널] ‘오리저널’ 시리즈는 몰랐던 이야기를 들었을 때 나오는 감탄사 ‘오(oh)’와 지역·지방을을 뜻하는 ‘리저널(regional)’의 합성어로 전 세계 여러 도시와 지역에서 유래한 재미있는 오리지널(original) 콘텐츠입니다. 아래 기자 페이지를 ‘+구독’하시면 더욱 알차고 재미있는 이야기를 볼 수 있습니다.
농구 골망에 걸린 도시의 꿈
농구를 단순하게 설명하면 동그란 림과 그물망으로 만들어진 골대에 누가 더 많이 공을 집어넣느냐의 싸움이다. 그리고 빈민들이 가득한 흑인 동네마다 녹슨 철제 백보드와 그물망 하나만 있다면 아이들은 공을 던지고 몸싸움을 해댔다. 그렇게 슈퍼스타가 된 NBA 선수도 수두룩하다. 그리고 NBA 농구팀 중 그물망(Net)를 팀명으로 삼은 진짜 농구팀이 하나 있다. 바로 브루클린 넷츠다. 팀명에 대한 설명이 불필요한 이 팀은 도시 곳곳을 떠돌고 유랑하며 뉴욕을 대표하는 또 하나의 팀으로 자리매김했다. 사실 이 팀의 시작은 브루클린도, 넷츠도 아니었다.
브루클린 넷츠 로고
뉴욕진출을 노리던 변방도시의 꿈
1967년 농구의 인기가 급상승하는 와중에 NBA의 인기를 견제하기 위한 ABA(American Basketball Association)가 출범했다. NBA의 독점을 견제하고 그 파이를 나눠먹기 위해 ABA는 뉴욕 연고지 팀 탄생을 노렸으나 NBA의 뉴욕 닉스로 인해 진입이 쉽지 않았다. 이에 허드슨 강을 사이에 두고 뉴욕 맨하튼 서쪽에 위치한 뉴저지에 신생팀 뉴저지 아메리칸스가 창단했다.
뉴저지 아메리칸스 로고
아메리칸스는 열악한 체육관, 적은 관중, 불안정한 재정 속에서 첫 시즌을 보냈다. 하지만 이들에게 뉴저지는 잠깐 지나가는 곳이었다. 결국 뉴욕진출을 위한 교두보에 가까웠다.
1년만에 첫 배신, 롱아일랜드로 향하다
틈틈이 뉴욕 진출을 엿보던 아메리칸스는 결국 1년만에 뉴욕 진출에 성공한다. 맨하튼의 동쪽에 길게 자리잡은 롱아일랜드로 연고지를 이전한 것이다. 그리고 아메리칸스는 아예 농구팀의 이름까지 갈아엎었다. 아메리칸스라는 지극히 미국적인 팀명을 아예 농구를 대표하는 이름으로 바꾸기로 한 것이다. 바로 농구의 승부를 결정짓는 득점을 위해 반드시 통과해야 하는 골망(net)를 팀명으로 정하기로한 것이다. 그렇게 뉴욕 넷츠(New York Nets)라는 팀명이 새롭게 등장한다.
뉴욕 넷츠 로고
물론 넷츠라는 팀명을 지은 것은 당시의 유행도 영향을 미쳤다. 뉴욕에 연고지를 둔 MLB 야구팀 뉴욕 메츠(Mets)가 있었고 NFL 풋볼팀 뉴욕 젯츠(Jets)가 있었기 때문이다. 뉴욕팀을 꿈꿨던 이 팀은 이러한 운율을 감안해 넷츠(Nets)라는 팀명을 선택했다. 마치 당연히 뉴욕팀인 것 같은 느낌을 팀명을 통해 만들어낸 것이다 .

하지만 이름만큼 성적은 단순하지 않았다. 치열했던 ABA 리그에서 우승하기 위한 진짜 스타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격전에서 살아남기 위해선 진짜 스타가 필요했다.

‘닥터 J’ 시대와 두 번의 왕좌
그리고 1973년, 운명의 남자가 나타난다. ⁠줄리어스 어빙(Julius Erving), 별명은 ‘닥터 J’. 경기장 위를 날던 사나이이자 스카이워크의 원조, 그리고 예술 농구의 선구자. 그가 넷츠에 입단하자 모든 것이 달라졌다. 넷츠는 1974년, 그리고 1976년 ABA 챔피언에 오른다. 특히 1976년 파이널에서 닥터 J는 덩크슛, 공중 방향 전환 등 화려한 기술을 선보이며 예술적인 승리를 거머쥐었다. 그러나 ABA에서의 축배는 그 것이 마지막이었다.
뉴욕 시절 줄리어스 어빙
문닫은 리그, 높은 NBA의 문턱
1976년, ABA가 해체되고 NBA와 합병된 것이다. 넷츠는 NBA에 편입되었지만, 합병 조건은 혹독했다. NBA 입성 대가로 320만 달러를 지불해야 했고, 뉴욕 닉스에게 “영역 침해료” 480만 달러까지 내야 했다. 이를 감당하기 위해 넷츠는 닥터 J를 필라델피아 세븐티식서스에 트레이드한다. 팬들은 분노했고, 팀은 몰락했다.
뉴저지로 돌아온 유랑자
뉴욕에서 밀려난 넷츠는 다시 뉴저지로 복귀했다. 그렇게 뉴저지 넷츠(New Jersey Nets)가 컴백했다. 창단했던 고향으로 돌아왔지만 뉴욕을 바라며 달았던 넷츠라는 어색한 이름이 딸려왔다.

이후 오랜 침체기가 이어진다. 몇몇 가능성 있는 선수들이 지나갔지만, 팀은 늘 1라운드 탈락의 유령에 시달렸다. 그러나 2001년, 모든 것이 변하기 시작했다. 혜성처럼 등장한 제이슨 키드(Jason Kidd)는 뛰어난 시야, 폭풍 같은 패스, 리더십으로 팀을 개조했다. 2002년과 2003년, 넷츠는 두 시즌 연속으로 NBA 파이널에 진출했다. 물론 레이커스와 스퍼스를 만나 패배하며 닥터 J의 영광을 재현하진 못했지만 넷츠 역사상 가장 빛나는 순간이었다. 그들은 “동부의 신흥 강자”로 불리며 다시금 주목받는다.

뉴저지 넷츠 시절 주전 선수들. 가운데가 제이슨 키드
하지만 스타들은 떠나고, 브루클린이라는 새로운 가능성이 서서히 다가오고 있었다.
두번째 배신, 다시 한번 뉴욕
실제 뉴저지는 뉴욕에 비해 티켓 파워가 현저히 약했다. 뉴저지 넷츠 시절 경기장 관중 수는 NBA 최하위권에 머물렀다. 지역 내 농구 열기는 낮았고 뉴욕 닉스에 비해 브랜드 파워도 약했다. 관중 감소는 자연스레 티켓 가격 하락으로 이어졌고 광고나 스폰서쉽 역시 부족했다. 구단의 재정 상황은 지속적으로 악화했다. 구단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수익원과 시장확대는 계속 어려웠다 .
바클레이스 센터
그렇게 또 다시 뉴욕이 눈에 들어왔다. 이번엔 뉴욕시 5개 자치구 중 인구가가 가장 많으면서 젊고 다양한 인구구성을 특징으로 한 브루클린이 후보로 떠올랐다. NBA 역시 이 지역의 잠재적 팬층과 상업적 가치를 높게 평가했다. 특히 브루클린 지역의 부동산 개발업자 브루스 래트너는 투자 그룹을 이끌며 브루클린 애틀랜틱 야드 개발을 추진했다.
브루스 래트너<뉴욕타임즈>
해당 프로젝트의 핵심이 바로 뉴저지 넷츠의 브루클린 이전을 전제로 한 대규모 도시 재생사업이었다. 핵심적인 구장 문제가 해결될 기미가 보이며 연고지 이전에 속도가 붙기 시작했다. 결국 2004년 브루스 래트너는 넷츠를 인수하며 브루클린으로의 연고지 이전을 공표했다. 물론 개발과정에서 잡음도 많았지만 결과적으로 2012년, 브루클린의 중심부에 최첨단 경기장 바클레이스 센터가 완공됐다.

그렇게 2012년 뉴저지 넷츠는 다시 한번 뉴욕행에 나섰다.

2번의 배신과 절치부심
브루클린 넷츠는 현재 브루클린을 대표하는 메이저 스포츠 팀으로 자리매김했다. 사실 이에 앞서 1957년 브루클린을 연고지로 한 프로야구팀이 있긴했다. 바로 브루클린 다저스. 바로 현재 미국 서부 LA의 명문 구단 LA 다저스의 전신이다. (흥부전59화 LA다저스편 참고) 그렇게 새롭게 재단장한 브루클린은 로고, 유니폼 등 모든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브루클린 스타일로 꾸몄다. 힙합 아티스트 제이 지가 구단 경영에 참여하며 젊고 세련된 이미지 구축에 나섰다. 흑인 문화와 힙합, 그래피티 등 역동적인 도시의 분위기가 팀에 녹아들어갔다.
브루클린 넷츠 로고
당연히 브루클린으로 이전 후 관중의 수와 수익은 크게 늘었다. 구단의 가치 역시 크게 높아졌다 또한 뉴욕 닉스와의 지역 라이벌 관계를 구축하며 메이저 구단으로의 도약을 꿈꾸고 있다.

브루클린 넷츠는 여전히 리빌딩 중이다. 하지만 그들은 이제 뉴욕에서 가장 뜨거운 브랜드 중 하나다. 농구 이상의 가치—문화, 정체성, 지역성—을 대표한다. 그리고 지금도 바클레이스 센터에서, 그물망에 공이 걸릴 때마다, 사람들은 외친다.

“Go Nets!”

[흥부전] ‘흥’미로운 ‘부’-랜드 ‘전’(傳). 흥부전은 전 세계 유명 기업들과 브랜드의 흥망성쇠와 뒷야이기를 다뤄보는 코너입니다. 브랜드로 남은 창업자들, 오리저널 시리즈를 연재 중입니다. 아래 기자 페이지를 ‘+구독’하시면 더욱 알차고 재미있는 이야기를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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