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ON- 이달균의 경남 영화 촬영지 돋보기] (17) 국화꽃 향기- 통영 용호도

knnews 2025. 7. 12. 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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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재에게 첫눈에 반한 인하
‘독서클럽 아지트’ 책방서 재회
동아리 활동하며 감정 싹터
암투병 중이던 그녀와 이별
진정한 사랑의 의미 일깨워줘

영화 촬영지 ‘통영 용호도’
6·25 포로수용소 역사 품어
‘사라’‘매미’ 태풍 피해도
농활 장소는 현재 고양이센터
영화에서 농활 장소로 나오는 학교. 지금은 ‘공공형 고양이 보호 분양센터’로 바뀌었다./이달균 시인/

영화에서 농활 장소로 나오는 학교. 지금은 ‘공공형 고양이 보호 분양센터’로 바뀌었다./이달균 시인/

◇그녀의 머릿결에서 국화 내음이 난다= 영화 ‘국화꽃 향기’는 2003년에 개봉한 이정욱 감독의 장편영화 데뷔작이다. 이 영화로 제26회 황금촬영상 신인감독상과 신인남우상(박해일)을 수상했으니 첫 영화치곤 꽤 좋은 평가를 받은 셈이다. ‘하늘정원’ 편에서 말했듯이 이 영화 역시 신파의 공식을 충실히 따라간다. 눈치챘겠지만 서인하(박해일)와 민희재(장진영) 두 사람의 사랑 이야기로 마지막에 여주인공이 죽는, 애틋함으로 승부한 영화다.

“그녀의 머릿결에서 국화 내음 같은 좋은 향이 났다.”로 시작했다가 “세상 마지막 순간보다 슬픈 건 나로 인해 눈물지을 당신입니다.”라는 대사로 마지막을 장식한 전형적인 멜로물이다. 이런 문학적 문장은 곳곳에 등장하는데 그것은 100만부 이상이 팔린 김하인의 베스트셀러 소설을 원작으로 했기 때문이다. 당시 장진영은 TV를 통해 상당히 알려진 배우였으나 박해일은 그리 알려진 배우가 아니었다. 감정 표현이 서툴고 풋풋한 대학 초년생 연기를 훌륭히 소화해 냈다.
영화 ‘국화꽃 향기’ 스틸컷.

영화 ‘국화꽃 향기’ 스틸컷.

영화는 대학 새내기인 인하의 시선을 따라 진행된다. 우연히 지하철역에서 희재를 보게 되고, 그녀 특유의 당당함과 배려심에 금세 끌리게 된다. 그리고는, ‘글뿌리 독서클럽’의 아지트인 ‘숨어 있는 책방’(주인 역할: 변희봉)이란 헌책방에서 희재를 다시 만나게 된다. 그녀는 이 동아리 회장으로서 리더십 있고, 지적 욕구가 강한 학생이다. 희재는 미국에서 학교를 다니다 온 관계로 한국 역사와 정체성에 대해 잘 모르는 인하에게 “그건 핑계가 될 수 없으니 공부한 후에 이 클럽에 들어오라”고 잘라 말한다. 인하는 이런 희재가 밉지 않았고, 오히려 그녀의 말을 충실히 실천한다.

그때의 대학 생활이 그렇듯 ‘글뿌리 독서클럽’ 회원들도 농활을 가게 된다. 방학 때 도시에서 시골(섬)로 농활을 가는 것은 대학 동아리의 중요한 일부분이었다. 일종의 농촌봉사활동과 같은 것인데 일손을 돕기도 하고, 어린이들에게 공부와 오락을 가르치기도 하는 추억 여행이다. 특별한 장면 전환 없는 영화에선 이런 환경 변화는 꼭 필요하다. 새로운 볼거리와 전혀 다른 배경 화면으로 인해 이야기 전개가 풍부해지고 에피소드도 늘어나기 때문이다. 그렇게 선택된 장소가 바로 오늘 찾아온 섬 용호도이다. 박 선배(안내상)의 고향이란 설정이 자연스럽다.
영화 ‘국화꽃 향기’ 스틸컷.

영화 ‘국화꽃 향기’ 스틸컷.
영화 ‘국화꽃 향기’ 스틸컷.

영화 ‘국화꽃 향기’ 스틸컷.

◇시련과 극복의 역사 간직한 섬= 그래서 이 영화 촬영지 찾아 통영 용호도(龍湖島)에 간다. 통영시는 570개의 섬이 있는데 44개의 유인도와 526개의 무인도로 구성되어 있다. 필자는 과거 섬 여행을 자주 다녔으므로 용호도 역시 세 번이나 갔었다. 당시 유감스럽게도 이곳이 ‘국화꽃 향기’ 촬영지였음을 알지 못했다. 이 글을 위해 다시 가볼 수 있게 되었고, 인연 있는 이들을 떠올릴 수 있어 좋았다.

용호도는 예전에는 용초도라고 불렀다. 몇 개의 지명 유래설이 있는데, 수동산(192m) 기슭에 용머리풀이 많이 자생해 붙여졌다는 설과 용이 풀밭에 누운 것과 같은 모양에서 유래했다는 설, 용과 호랑이가 서로 싸우는 ‘용호상박’ 지형을 닮았다 하여 붙여졌다는 설 등이 있다.

이 섬은 용초동(龍草洞)과 호두동(虎頭洞) 두 마을로 분리되어 있다. 2018년에 국가지명위원회가 두 마을을 통합해 명칭을 용호도로 공식 지정했다. 섬 면적은 3.388㎢, 해안선 길이는 8㎞, 통영시에서 14㎞ 떨어져 있으며 면 소재지인 한산도에서는 3㎞ 거리에 있다. 용초 주민들의 주업은 가두리 양식업이고, 호두 주민들의 주업은 미역 생산이라 한다.
뱃전에서 본 용초마을.

뱃전에서 본 용초마을.

통영 여객선터미널에서 용호도로 가는 배인 한산농협카페리2호는 하루 세 번, 오전 7시, 10시 30분, 오후 2시 30분에 있다. 용초항에 내리면 마을 전경이 한눈에 들어오고 바다 건너 맞은편엔 한산도의 주산인 망산 능선 아래 하소리가 보이고, 시야를 조금 넓히면 하소리와 추봉리를 잇는 추봉 연도교가 선명히 보인다.

용호도는 시련의 역사를 안고 있다. 6·25전쟁으로 포로수용소가 설치되면서 주민들은 강제로 이곳을 떠나야 했고, 휴전협정 후에야 돌아올 수 있었다. 그것도 혹독한 사상 검증을 받은 후에야 가능했다. 주민들은 다시 삽과 곡괭이로 터전을 일구었다. 전쟁의 상흔을 극복해 갈 무렵 이번에는 자연재해가 덮쳤다. 1959년 9월엔 사라호 태풍이 와 주민 13명이 숨지고, 60여채의 가옥, 23척의 배가 파손됐다. 그리고 2003년엔 태풍 매미로 인해 섬은 초토화됐다. 이렇듯 사람에 의해, 자연에 의해 섬은 상실의 시간을 보냈으나 섬사람 특유의 인내와 극복 의지로 인해 지금은 살만한 섬이 되었다.

오늘 일정은 용초항에서 내려 포로수용소 유적지 탐방, 수동산 정상을 거쳐 호두마을 쪽으로 하산, 폭풍의 언덕에서 준비해 간 충무김밥을 먹고, 폐교를 거쳐 용초 마을로 돌아오는 4시간이다. 수동산 정상에서 호두마을 쪽으로의 하산 길은 권하고 싶지 않다. 잡초가 무성해 길이 잘 보이지 않았고, 애초에 계획했던 호두산행은 등산로가 잘 닦여 있지 않고 가시덤불이 많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먼저 임도를 따라 수동산 기슭에 있는 6·25전쟁 포로수용소 유적지로 향했다. 비록 아픈 역사의 잔재이긴 하나 이곳 주민들의 수용소 유적에 관한 관심은 크다. 포로수용소는 거제시가 워낙 유명하지만, 용호도에도 그와 관련한 흔적이 여러 군데 남아 있다. 1952년 5월부터 1954년 말까지 약 3년 동안 미군과 국군 1개 대대가 용초마을에 주둔해 2000여명의 북한 포로들을 수용했다. 이곳은 특별 관리가 필요한 포로들을 주로 수용한 곳이라 한다.

필자는 2010년 무렵부터 당시 김재덕 이장과 주민들이 유적지 발굴, 보존, 홍보를 위해 힘쓴 사실을 잘 알고 있다. 풀을 베고 길을 내고 각종 미디어를 통해 홍보에 애쓰던 기억이 생생하다. 유적은 산기슭 곳곳에 흩어져 있다. 세월이 한참 흐른 탓으로 지금은 안내 표지판이 낡거나 없어지기도 해 찾아가기도 쉽지 않다.

여기저기 산길을 따라 헤매며 사진을 찍었다. 오늘 만난 유적은 18.5m 원형의 대형 콘크리트 구조물인 급수장과 깃발 게양대, 한참을 헤맨 끝에 만난 저수지와 배수로 등이다. 표지판도 부족하고 시간도 제한돼 있어 다 보지 못한 점이 아쉽다. 이에 대해 현재 이장인 김두진씨는 “통영시가 유적지 복원에 좀 더 많은 관심을 쏟았으면 좋겠다”는 말을 덧붙인다.
포로수용소 급수장.

포로수용소 급수장.
포로수용소 깃발 게양대

포로수용소 깃발 게양대.

◇누군 사랑이라 말하고, 또 누군 어리석은 열정이라 말한다= 다시 영화 속으로 들어가 보자. 카메라는 섬 곳곳을 비춰준다. 낙조를 감상하기도 하고 학교에서 아이들과 즐거운 한때를 보내기도 한다. 이때만 해도 섬 초등학교에 서른 명 가까운 아이들이 있어 농활 장소로 안성맞춤이었다. 옥에 티를 찾자면 섬에서 나고 자란 아이들이 서울말을 쓴다는 것인데 이런 정도야 그냥 넘어가도 좋다. 어쨌든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있는 학교는 옛 고향 섬을 떠난 사람들의 향수를 자극하기엔 충분하다.

바닷가 모래 언덕에 앉은 아담하고 정겨운 한산초등학교 용호분교는 영화를 찍고 얼마 후인 2003년 9월 전국을 강타한 태풍 매미로 인해 파괴되고 만다. 한참 후에 주민들의 열망으로 다시 현대식 건물로 신축했으나 이마저 학생이 없어 결국 폐교되고 말았다. 지금은 ‘공공형 고양이 보호 분양센터’로 변해 있다.

대학 졸업 후 그들은 각자의 삶을 산다. 희재는 남편을 사고로 먼저 떠나보내고 혼자 살고 있다. 그녀의 절친 정란(송선미)은 실은 옛날부터 인하를 좋아했다. 하지만 아직도 인하의 가슴 깊이 희재가 있음을 알기에 그런 표를 내지 않는다. 가만히 보니 남편을 여읜 희재는 암 투병 중이다. 인하는 변함없이 그런 희재를 사랑한다. 외곬을 향하는 연하의 순수한 청년을 누가 사랑하지 않을 수 있으랴.

그러므로 더욱 서사는 예측가능한 결말을 향해 간다. 그렇다. 비록 스토리는 뻔하다 해도 이런 영화를 굳이 폄하할 이유는 없다. 우리 지난 청춘 시절의 사랑이야말로 돌이켜놓고 보면 얼마나 서툴고 유치했던가. 사랑하는 이를 향한 시선은 장막 뒤에서 숨어본 것이 고작이었고, 다가가는 걸음은 나뭇가지에 걸려 넘어지던 그 유약하고 애잔한 한때, 하지만 돌아가고 싶은 날들이 아니었던가? 영화도 그런 방식으로 감정에 호소하며 나아간다.

영화에서 국화꽃은 등장하지 않는다. 중요한 매개물이 아닐 수도 있다. “그녀의 머릿결에서 국화 향기가 난다”는 한마디면 충분하다. 가을은 국화의 계절, 여러 도시에서 국화축제를 연다. 창원 국화축제의 명작인 다륜대작(多輪大作)을 비롯한 여러 형상과 빛깔로 축제를 열다 보면 이 꽃이 갖는 비애의 이미지를 떠올리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차가운 겨울을 예비하며 피어나는 국화는 어딘지 처연하고 뜻 모를 아픔과 이별을 암시하게도 한다. 이 영화는 그런 막연한 서정에 기댄 측면도 있다.

인하는 방송국 PD가 되어 있다. 당시 브라운관 스타였던 정은아 아나운서의 목소릴 통해 그녀를 회상한다. “저는 사랑이라 말했는데 그녀는 어리석은 열정이라 말했습니다. 저는 영원이라 말했는데 그녀는 순간이라 말했습니다.” 희재와 인하는 우여곡절 끝에 다시 재회하고 가정을 꾸린다. 둘은 다시 용호도를 찾는다. 그 여행은 그들의 마지막 여행이 될 것이었다. 그렇게 행복이 무르익어갈 무렵, 딸 하나를 남긴 채 희재는 이승을 떠나고 만다.

◇국화꽃 향기처럼 세상 떠난 배우 장진영= 슬픈 죽음으로 끝난 영화 ‘국화꽃 향기’를 찍은 6년 후인 2009년 9월, 38세로 장진영은 이승과 영영 작별한다. 1997년 TV 드라마 ‘내 안의 천사’로 데뷔, 시트콤 ‘남자 셋 여자 셋’ ‘순풍산부인과’ 등에 조연으로 출연하면서 얼굴을 알렸다. 1999년 스크린으로 자리를 옮겨 ‘반칙왕’ ‘소름’ ‘국화꽃 향기’ ‘싱글즈’ ‘청연’ ‘연애, 그 참을 수 없는 가벼움’ 등 화제작에 잇따라 출연했다. 탁월한 패션 감각과 도회적 이미지로 새로운 지평을 열어나갔다.

비록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녀의 필모그래피는 상당히 화려하다. ‘소름’과 ‘연애, 그 참을 수 없는 가벼움’으로 청룡영화상 여우주연상을 두 차례 받았고, 2002년 포르투갈 판타스포르토 영화제에서 ‘소름’으로 여우주연상, 2006년엔 대한민국영화대상 여우주연상과 한국영화평론가협회상 여우주연상 등을 수상하면서 주목받는 배우로 떠올랐다.

사람마다 느낌은 다르겠지만 나의 창에 각인된 장진영은 특별하다. 비단 요절한 배우이기 때문이 아니라 시원하고 깔끔함 뒤에 언뜻언뜻 보이는 비애의 이미지로 기억되기 때문이다. 커다란 눈매에 이어진 미소, 중저음의 목소리, 보이시한 매력도 한몫을 했다. 장진영은 타고난 재능과 열정을 꽃피우며 불꽃처럼 살다 떠났다.

이달균(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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