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산 1조 넘는데 왜 못 고쳤나… 세계유산 화성 융건릉 소나무 복구, 행정이 가로막았다

유혜연 2025. 7. 12. 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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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일 오후 화성시 융건릉 소나무 숲이 지난 겨울 폭설과 최근 폭염 등으로 피해를 보고 있으나 복구작업이 지연되면서 노송 관리에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사진은 화성시 융건릉에 지난 겨울 폭설로 부러진 소나무가 죽어가는 채 방치되고 있는 모습. 2025.7.9 /임열수기자 pplys@kyeongin.com


화성 융건릉 내 소나무 복구가 반년 가까이 지연된 데에는 화성시의 개입 한계(7월11일자 3면 보도)를 넘어, 국가유산청의 경직된 행정 절차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드러났다.

중앙정부는 예산을 제대로 쓰지 못하고 지자체는 관여할 수 없는 사이, 융건릉 소나무 복구가 사실상 공백 상태에 머물렀던 셈이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조차 제때 손 쓸 수 없는 상황이 반복될 수 있다는 점에서 우려가 커지고 있다.

12일 국가유산청에 따르면, 융건릉을 포함한 조선왕릉 일대의 복구 작업과 관련해 긴급 예산 확보는 현실적으로 어려웠던 것으로 확인됐다. 지난해 11월 폭설 당시 이미 그 다음 해(2025년) 예산안이 국회를 통과해 모든 편성이 마무리된 상태였고, 긴급 예산도 조경과 수목 복구에는 즉각적으로 쓰기 어려웠다는 설명이다.

국가유산청 궁능유적본부 관계자는 “정기 예산은 매년 11월에 확정되기 때문에 그 이후 발생한 재해에는 대응이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며 “융건릉 소나무 피해는 정기 예산에 반영되지 못했고, 긴급 예산도 전체 피해 규모나 다른 우선순위에 따라 배분되다 보니 일정이 늦어진 측면이 있다”고 전했다.

아무리 행정 절차상 불가피했다 해도, 유네스코 세계유산이 기후 피해를 입고도 자연경관 복구가 예산에 반영되지 못해 반년 넘게 방치된 현실은 제도 운영의 허점을 드러낸다. 특히 기후재난처럼 발생 시점을 예측하기 어려운 피해에 ‘예산 편성이 이미 끝났다’는 이유로 수개월간 손쓰지 못한 것은 문화재 보호의 기본 원칙을 무색하게 한다.

9일 오후 화성시 융건릉 소나무 숲이 지난 겨울 폭설과 최근 폭염 등으로 피해를 보고 있으나 복구작업이 지연되면서 노송 관리에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사진은 화성시 융건릉에 지난 겨울 폭설로 부러진 소나무가 죽어가는 채 방치되고 있는 모습. 2025.7.9 /임열수기자 pplys@kyeongin.com


예산 구조 역시 문제의 연장선상에 있다. 올해 국가유산청 전체 예산은 1조3천875억원에 달하는데, 이중 국가유산 보수 정비에는 5천299억원이 책정된 반면, 궁능원 전체 관리 예산은 1천431억원에 불과하다. 이는 전체 예산의 10% 남짓에 불과한 수준으로, 조선왕릉처럼 넓은 면적의 문화유산을 감안하면 실제 현장 조경·수목 복구에 쓸 수 있는 예산은 턱없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더욱이 산림과 조경은 기후 영향에 가장 직접적으로 노출되는 영역이지만, 예산 집행은 후순위다. 현장 관계자들에 따르면 수목 정비는 건물 지붕 누수나 석물 낙석처럼 관람객 안전과 직결된 복구 사업에 비해 긴급성이 낮게 여겨지고, 장비·인력 투입이 어려운 구역은 우선 순위에서 밀리는 것으로 알려졌다.

당국 회의에서도 조경과 수목 관리는 주요 의제로 다뤄지지 못했다. 지난해 12월 열린 국가유산청 궁능문화유산분과 위원회 ‘제8차 궁능문화유산분과위원회의’에서 폭설 피해에 따른 융건릉 소나무 복구 필요성이 한 차례 언급됐지만, 이후 진행된 회의에서는 관련 논의가 이어지지 않았다.

결국 이번 융건릉 소나무 복구 지연은 기후재난 피해에 신속히 대응하지 못하는 행정 구조에 더해, 법적으로 중앙정부에만 관리 권한이 집중된 체계 탓에 지자체가 행정 공백을 메우지 못한 현실을 보여준 사례로 평가된다.

최종호 한국전통문화대학교 명예교수는 “수도권을 대표하는 세계유산이 반년 넘게 손쓰지 못한 채 방치된 건, 단순히 예산 부족 때문이 아니라 행정 체계가 기후 재난에 대응할 수 있는 방식으로 설계돼 있지 않기 때문”이라며 “예산 긴급 편성이나 유연한 집행이 가능한 체계로의 전환이 시급하며, 조선왕릉처럼 넓은 면적의 문화유산은 중앙정부가 주도하되 지자체와 협업해 복구 대응력을 높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유혜연 기자 pi@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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