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 대통령의 산업화 성공 비법: 새로운 해석

경제발전과 정치의 역학
경제발전은 마차를 타던 가난한 나라가 자동차·비행기를 만드는 부자나라로 도약하는 과정이다. 따라서 경제가 발전하려면 개인과 기업이 모두 자력으로 부자가 될 수 있도록 동기와 기회가 부여되어야 한다. 우리는 시장에서 항상 경제적 성과가 좋은 경제주체만을 선택하여 차별적으로 지원한다. 이를 통해 시장은 완전하지는 않지만 모든 국민을 부자경쟁에 나서도록 동기를 부여하여 경제발전을 견인한다.
그런데, 국가가 균형발전과 경제 평등을 추구한다고 시장성과의 차이를 무시하고 “경제를 정치화”하여 남보다 더 열심히 노력하는 개인이나 기업이나 지역을 부자 되기 어렵게 하면 태업(怠業)이 발생하여 경제발전이 어려워진다. 따라서 경제가 번영하려면 역으로 국가가 “정치를 경제화”하여 스스로 돕는 개인과 기업과 지역이 부자 되기 쉽도록 성과를 우대하는 제도와 정책을 채택하여 발전의 동기를 극대화해야 한다.
박정희 대통령의 국가통치전략
박정희 대통령(이하 경칭 생략)은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는 잠언을 만고불변의 진리라고 선언하였다. 나아가 이것이 시장의 차별적 선택원리임을 통찰하였다. 따라서 국가도 시장처럼 스스로 노력하여 부자 되는 사람이나 새마을이나 기업들을 성과에 따라 차별적으로 지원해야 나라가 번영할 수 있다고 믿고 이원리를 국민에게 설파하고 정책적으로 엄격하게 실행하였다. 이렇게 동기와 기회가 부여된 한국은 단 20년 만에, 가난을 남 탓, 하늘 탓해온 국민이 새마을 성과경쟁을 통해 모두 “하면 된다” 는 역동적인 자조 국민으로 재탄생하였고, 중소기업은 치열한 수출성과 경쟁을 통해 세계적인 대기업으로 성장하였다. 수백 년 걸린 서구 산업혁명을 단 20년 만에 성취하였다. 필자는 이를 성과 없으면 “버린다, 하고 모두 살려내는” 신상필벌의 차별적 유인정책이라고 평가한다. 그동안의 평가와는 반대로 박정희는 강력한 “친시장적 차별화 리더십”으로 “정치를 경제화”하여 번영을 이끌었다.
유신 정치, 박정희의 정치의 경제화
박정희의 성과 중시 차별화 리더십은 그의 권위주의 정치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박정희의 차별적 유인전략은 오늘날 한국은 물론 전 세계 민주주의의 병폐인 성과를 무시하고 평등주의적 무차별적 지원정책에 탐닉하는 “경제의 정치화”와 대척점에 있다. 당시 야당도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게 사회주의적 평등 이념에 사로잡혀 성과 중시 박정희식 기업, 수출, 산업육성 정책을 특혜, 비민주, 반농업, 외채 망국이니 하며 반대를 일삼았다. 박정희 정치는, 바로 이런 야당과 타협할 것이냐 아니면 민주주의를 희생해서라도 강력한 추진력으로 시장친화적 산업화정책을 추진할 것이냐 하는 어려운 선택의 갈림길에서, 민주라는 형식보다 번영이라는 실질을 선택한 “정치의 경제화” 결단이라 할 수 있다. 역사는 박정희 선택이 옳았음을 증명하고 있다.
그러나, 동시에 박정희는 78년 유신 2기 대통령취임 직후 임기 전인 81년에 사임할 계획을 피력하였으며, “내가 봐도 유신헌법의 대통령 선출 방법은 엉터리야. 그러고서야 어떻게 국민들의 지지를 얻을 수 있겠어? 헌법을 개정하고 나는 물러날 거야,”(1979) 라는 등 유신에 대한 비판적 성찰을 잃지 않았다.
우량기업 앞세운 산업화정책의 성공
경제 및 산업정책은 철저한 차별적 경제 유인정책의 실천 과정이었다. 우선 수출육성정책은 철저하게 수출 우량기업들을 앞세워 지원함으로써 모든 기업이 수출만이 살길이라고 경쟁적으로 전 세계 오지를 마다하지 않고 수출 전선에 뛰어들어 기적을 이뤄냈다. 1964년 1억 불에서 81년 200억 불로 17년 만에 200배의 수출 증가 기적을 실현하였다.
1973년부터 전 내각의 반대를 무릅쓰고 중화학 공업화 정책을 추진하였다. 수출을 통해 성과와 능력을 인정받은 기업들을 막대한 유인책으로 참여케 하여 10년도 안 걸려 중화학 건설을 완료하고 오늘날 산업 대국의 바탕을 놓았다. 이를 통한 수출산업 고도화가 수출 기적의 원천이 됐다.
이러한 우수기업을 앞장세운 성과 중심의 산업화정책은 수출과 중화학공업의 성공과 함께 60년대 중소중견기업들을 20년 만에 세계적인 대기업으로 키워냈다. 이는 선진국 산업혁명 이후 20세기 후반의 거의 유일한 산업화와 중소기업육성 그리고 종합적인 경제발전의 성공사례로서 세계 경제 발전사에 금자탑을 세웠다. 이러한 박정희식 성과에 따른 차별적 유인정책은 필자에 의해 “경제발전의 일반 이론”으로 정립되어 세계학계에 발표되었다.
우수마을 앞세운 새마을운동의 성공
농가 소득증대 정책은 60년대 개별 농가 중심에서 70년대 들어 마을 중심의 “새마을운동”으로 전환되었다. 이 운동은 박정희의 성과 중시, 신상필벌의 차별화 정책의 백미이다.
첫해 34,000개 마을에 시멘트 300여 포대와 철근 1톤씩의 지원으로 시작해서 2차 연도에는 성과 있는 16,000개 마을에는 시멘트를 500포대로 늘려 지원하고 실적 부진한 18,000개 기초 마을은 지원 대상에서 배제하는 철저한 차별적 지원으로 마을 간의 경쟁심을 극대화했다. 이러한 차별적 지원정책은 집권당과 내각의 완강한 반대를 무릅쓰고 추진하였다. 이를 통해 5년 만에 90% 이상의 마을이 자조·자립마을로 승격되고 소득은 도시 가구를 추월하는 기적 같은 성과를 실현하였다. “기초 마을은 지원이 아니라 버린다” 함으로써 모두를 자조·자립마을로 이끌어 올린 박정희 리더십의 백미이다.
결어
박정희 시대는 철저하게 시장친화적인 차별적 유인정책으로 “하면 된다”는 자조 정신을 창출하여 모든 국민을 부자경쟁에 나서게 했기 때문에 당시 세계 최고의 동반 성장의 기적이 가능하였다. 그의 “정치의 경제화”가 이를 뒷받침하였다. 그러나 오늘날 한국은 정치 민주화 이후 성과를 무시하는 “경제의 정치화”로 국민이 반자조적이고 정부 의존적으로 바뀌었다. 태업에 따른 저성장·양극화는 불가피한 현상이다.
◇논평: 박정희 산업화의 재해석/이춘근 국제정치아카데미 대표

대한민국은 세계사의 대성공 사례다. 세계 꼴찌 수준의 극빈국에서 세계 10위 권의 경제 군사 대국의 지위에 오르기까지 불과 60년밖에 걸리지 않은 나라이기 때문이다. 더욱 자랑스러운 사실은 부국강병을 통해 민주화도 이룩했다는 점이다. 대한민국이 경제발전과 민주주의의 세계적 모범 국가가 되도록 한 견인차로서 박정희 대통령의 치적은 결코 폄훼될 수는 없는 일이다. 현재 한국 사회는 경제발전과 민주화를 다른 부류의 정치세력들이 각각 성취한 업적으로 이해하는 경향이 있는데 올바른 분석이 아니다.
미국의 저명한 정치학자 세이무어 마틴 립셋 교수는 이미 1950년대에 경제발전은 민주주의를 이룩하기 위한 사회적 선결조건(prerequisite) 임을 밝혀냄으로써 경제발전과 민주주의는 순차적이기는 하지만 함께 이루어지는 일이라고 주장했다. 박정희 대통령은 이 같은 경제발전과 민주화에 관한 진실을 잘 인지하고 있었으며 민주주의를 위해 우선 산업화부터 먼저 이룩하자며 국민들을 독려했다.
박정희의 경제발전 정책은 결과적으로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성공이었다. 그러나 다수의 이론가들은 박정희식 채찍질, 혹은 국가 주도의 계획을 통한 반자유주의적인 경제발전이라고 말한다. 대한민국 경제발전론의 권위 좌승희 박사는 박정희의 경제발전 정책이야말로 본질적으로 시장 친화적인 자유주의 경제발전론의 진수라고 해설한다. 많은 식자들이 사회적 평등을 말하고 못하는 사람(혹은 조직)을 더 지원해야 한다고 말하지만 박정희는 잘하는 사람과 조직은 더욱 지원하고 못하는 경우 아예 지원을 없애 버리는 진정한 시장주의적 접근을 통해 대한민국 전체의 분위기를 바꿔 나갔다. 그러나 박정희의 방식은 못하는 국민들을 배척하는 것이 아니라 ‘버린다 하면서도 결국 모두를 살려내는’ 신상필벌의 차별적 유인 정책이었다.
박정희는 ‘하늘은 스스로 돕는자를 돕는다’ 라고 설파하며 온 국민의 ‘하면 된다’라는 정신을 자극했다. 박정희는 민주주의를 잠시 희생하고 번영의 길을 택하기는 했지만 이는 ‘강력한 추진력으로 시장 친화적 산업화 정책을 위한 고육지책이었다는 좌승희 교수의 주장은 설득력이 매우 강하다. 박정희 역시 스스로 자신의 정치는 국민의 지지를 얻을 수 없는 것임을 ‘헌법을 개정하고 나는 물러날거야’ 라며 술회한 바 있었다.
박정희의 경제발전 정책은 대한민국이 세계로 뻗어나감으로써 가능하다는 철학을 기반으로 했다는 점에서 선지자적이다. 1964년 1억 달러를 수출한 대한민국은 박대통령이 서거한 2년후인 1981년에는 200배로 성장해 있었다. 1973년 무렵 시작된 박정희의 중화학 경제발전 정책은 60년 대의 중소기업들을 20년 만에 세계적인 대기업으로 성장시켰다. 세계 경제 발전사에서 오로지 대한민국만이 가능했던 급자탑이 아닐 수 없다.
박정희 장군이 5.16을 일으켰던 1961년 대한민국 국민의 일인당 소득은 필리핀의 1/10, 북한의 1/3 정도에 불과 했지만 오늘 우리는 필리핀 사람들 보다 5배, 북한 주민보다 30배 잘살게 되었다. 이같은 현실을 가능케 한 박정희 대통령의 공로를 인정해야 한다.
온 국민에게 ‘우리도 부지런히 일해서 잘살 수 있다’는 정신을 북돋은 새마을 운동은 시장 친화적 차별 유인 정책과 결합하여 대한민국의 경제폭발과 민주주의 국가건설의 기본이 되었다. 좌승희 교수의 분석대로 ‘정치의 경제화’를 통한 박정희의 국가발전 전략은 대성공을 이룩했다. 오늘날 정치인들의 무분별한 ‘경제의 정치화’ 정책 때문에 국민이 정부 의존적이며 발전 역행적으로 변모되었다는 사실을 애석해 하는 저자의 주장에 적극 공감하는 바이다. 박정희의 경제 발전에 관한 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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