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고은의 장르별미] 날 죽이려는 남편… 그 순간 들린 낯선 목소리

사브리나 임블러의 ‘빛은 얼마나 깊이 스미는가’에 따르면 금붕어는 어항에 있을 때와 강에 있을 때 완전히 다른 존재가 된다. 어항 밖으로 버려진 금붕어는 자기 몸에서 나온 오줌(암모니아) 때문에 붉어졌던 빛깔을 회복하고, 멜론이나 대용량 우유통만큼 커진다. 하루에 300m를 헤엄치는 것도 어항에서는 상상할 수 없던 삶이다. 키우던 금붕어를 함부로 버리면 생태계가 초토화된다는 것을 몇 페이지에 걸쳐 알 수 있는데, 그것과 별개로 야생 금붕어에게 매료된 작가의 마음 또한 이해가 된다. 누구든 내 안의 강력한 야생성을 믿고 싶을 때가 있고, 위험 앞에서는 더 절실해지니까.
배명훈 소설 ‘기병과 마법사’(북하우스)에서도 그런 순간을 목도했다. 익숙한 세계에서 배제된 한 여자가 자기 안에 응축된 힘을 발견해 내는 이야기랄까. 윤해는 살기 위해 멸문을 받아들여야 하는 집안의 딸이다. 폭정을 일삼는 왕의 친족이기에,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모반의 불씨가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소설 곳곳에 마목인과 경작인의 삶을 비교하는 대목이 나오는데, 그 분류로 보자면 윤해는 경작인 중에서도 고난도 머묾이 필요한 경우라 할 수 있다. 없는 듯 존재하기, 숨을 쉬되 눈에 띄지 않기.
어떤 것도 욕심내지 않았던 삶이건만, 그래서 원치 않는 결혼도 참아보려 했건만, 이번에는 남편 될 자가 윤해를 죽이려 한다. 그때 벼랑 끝에서 윤해를 붙든 낯선 목소리! 기병과 마법사의 한 축-마법사가 탄생하는 순간이다. 평면이었던 세계가 입체화되고 윤해는 그렇게 스스로를 구해 낸다. 그리고 자신을 믿어주는 동행과 함께 새로운 야생의 역사를 만들어간다.
경작인이지만 운명의 초원 앞에 내던져진 윤해, 그리고 마목인이지만 변치 않는 것에 기대고 싶은 다르나킨(달낙현)이 만날 때 그들은 놀라운 한 팀이 된다. 마목인이 경작인의 지붕 아래 놓이고, 경작인이 마목인의 말등에 올라 수수께끼의 안갯속을 뚫고 나간다. 배명훈은 매번 새로운 시도를 하는 작가고, 그 시도가 현실의 그물과 얽혀 요동칠 때마다 독자로서 포만감을 느낀다. 동시에 그의 다음 소설에 대한 허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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