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향만리] 아홉 살의 운동화 / 김진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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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유년 시절에 대한 추억이 있다.
아홉 살의 운동화는 그런 경험을 네 수의 시조로 엮고 있다.
소낭밭 지날 때면 출처 없는 그림자가 있었고, 흉흉한 소문들만 발부리에 걸려서 아홉 살 파란 운동화 자주 끈이 풀렸다.
아홉 살의 운동화에서 보듯 누구나 어린 시절에 대한 특이한 경험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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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홉 살의 운동화 / 김진숙
소낭밭 지날 때면 출처 없는 그림자/ 흉흉한 소문들만 발부리에 걸려서/ 아홉 살 파란 운동화 자주 끈이 풀렸지// 건너편 도살장에선 돼지들이 날아다녀/하늘로 오르려고 안간힘 쓰는 거야/꼬리에 꼬리를 잡고 놓아주질 않았지//그런 날 먹구름은 비명처럼 몰려와/두 귀 틀어막아도 내 뒤를 따라왔지/발목을 빼앗길까 봐 땅만 보고 달렸어//아침 검색창에 뜬 가자지구 아이들처럼/대문 밖 서성이는 이십 세기 겁 많던 아이/세상은 너무 위험해, 신발 끈 고쳐 매준다
『종이는 나무의 예문』(2024, 시와 실천)
누구나 유년 시절에 대한 추억이 있다. 「아홉 살의 운동화」는 그런 경험을 네 수의 시조로 엮고 있다. 특이한 기억이어서 언젠가 작품으로 써서 남기고 싶었을 것이다. 몹시도 아련하고 신비스럽고 무서웠던 일들을 아홉 살 먹은 아이의 운동화를 통해 잔잔히 그리고 있다. 아득하지만 아직도 또렷이 떠오르고 있기에 화자는 숨 가쁘게 이야기를 펼쳐나간다.
소낭밭 지날 때면 출처 없는 그림자가 있었고, 흉흉한 소문들만 발부리에 걸려서 아홉 살 파란 운동화 자주 끈이 풀렸다. 왜 하필 파란 운동화일까? 부모님이 사주신 것이니 색깔의 선택은 아이의 몫이 아닐 수도 있고, 그럴 수도 있다. 색깔이 유독 파랬기에 선명한 기억으로 남아 있었을 것이다. 괴기스러운 일은 이어진다. 즉 건너편 도살장에선 돼지들이 날아다녀 하늘로 오르려고 안간힘 쓰는 정황이다. 이 일은 지극히 비현실적이지만 아홉 살 아이에게는 무척 끔찍한 공상이었다. 실제로 그러할 것이라는 마음이 들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러한 상상은 꼬리에 꼬리를 잡고 놓아주질 않았다. 그런 날 먹구름은 비명처럼 몰려와 두 귀를 틀어막아도 계속 아이의 뒤를 따라왔다. 화자는 발목을 빼앗길까 봐 땅만 보고 달렸다. 겁에 질린 혼비백산 상황이다. 마지막 수에서는 아침 검색창에 뜬 가자지구 아이들처럼 대문 밖 서성이는 이십 세기 겁 많던 아이에게 세상은 너무 위험해, 라고 하면서 신발 끈을 고쳐 매주고 있다. 위험한 세상을 헤쳐나가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야무지게 운동화 끈을 묶어야 한다. 자칫 끈이 풀리면 걷거나 달릴 때 밟혀서 다칠 수가 있어서다.
「아홉 살의 운동화」에서 보듯 누구나 어린 시절에 대한 특이한 경험이 있다. 그러한 이색적인 체험이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아 때로 삶의 동력이 되기도 한다. 그렇기에 그런 에피소드를 글로 남기는 일은 소중하다. 주인공이 두려움을 이겨내려고 안간힘을 다하고 있는 장면이 또렷이 떠오르는「아홉 살의 운동화」는 성장통의 생생한 기록이다. 실로 한 편의 동화를 읽은 느낌이다. 몹시 아련하여 오랫동안 마음을 흔든다.
이정환(시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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