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싱·스미싱·리딩방 ‘사기 공화국’…마약과 합치면 범죄수익 연 50조

2025. 7. 12. 0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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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민의 ‘죄와 벌’] 사기와의 전쟁이 필요하다
전국의 화투판을 휩쓸며 도박과 사기를 예술의 경지까지 끌어올린 일명 타짜들의 한판 승부를 다룬 영화 ‘타짜’의 한 장면. [중앙포토]
얼마 전 ‘컴퓨터 수리’ 사기를 당했다. 노트북이 부팅이 되지 않아 인터넷 ‘컴퓨터 수리’ 업체에 연락했더니 출장비 1만원에 기사를 보내주었다. 밤 11시가 되어서야 우리 집에 온, 검정 뿔테에 낡은 검정 반팔 티를 입은 얼핏 ‘너드’처럼 보이는 청년이었다. 내 노트북을 살펴본 그는 살 가망이 없는 사람에게 청진기를 대어 본 의사처럼 안타까운 표정으로 고개를 저으며, 내 노트북이 큰 손상을 입은 것 같다며 회사 연구소의 큰 컴퓨터로 스캔해서 복구를 시도해보아야 한다고 했다. 내가 얼마냐고 묻자 그는 스캔하는 데 10만원 정도가 든다고 했다.

다음 날에 전화가 온 사람은 그 청년이 아니라 목소리가 걸걸한 사장이었다. 그는 SSD 카드가 손상되어서 더 용량이 큰 걸로 교체를 했고 밤새 복구를 했으니 55만원을 달라고 했다. 내가 55만원은 사전에 합의되지 않은 금액으로 줄 수 없으니 노트북을 그대로 돌려달라고 하자, 그는 수리비를 주지 않으면 노트북을 돌려주지 않겠다, 노트북 망가져도 나는 알 바 아니라며 협박했다. 내가 변호사임을 밝히고 명함을 주자, 오히려 “변호사도 수임료 올려치기 하잖아!”하며 고성을 질렀다.

공갈범 고소했더니 경찰 “민사로 하죠”
그 업체의 천호동 주소지로 차를 몰고 가면서 112에 전화했다. 배정받은 경찰이 전화로 “이 사건은 민사 사건이라서 우리가 관여할 일이 아니에요” 하길래 “제가 변호사인데 이 사건은 사기·횡령·공갈 같은 형사 건도 되고 범죄가 진행 중인 현행범입니다”라고 말하자, 입장을 바꾸고 오겠다고 답했다.

영업장(‘회사 연구소’)은 지하에 있었다. 간판도, 인테리어도 없는 허름한 열 평 정도 되는 공간이었다. 사장은 내가 거듭 노트북을 달라고 하는데도 55만원을 주지 않으면 못 준다며 고함을 쳤다.

나는 지금 노트북을 확보하지 못하면 그가 손상을 가할 것 같아서 할 수 없이 55만원을 그 자리에서 휴대폰으로 계좌이체 해주고는 말했다. “이름이 백ㅅㅎ이군요. 이제 당신은 공갈죄의 미수범이 아니라 기수범이 되었습니다.” 그러자 그는 “너 내가 누군지 알아?” “너 사무실 주소 알고 있으니까 사무실에 한 번 찾아가 줄게” “전 판사 변호사의 직권남용 및 횡포 업무방해로 온라인, 유튜브에 이슈화 작업하겠다. 잡도리 당하고 나중 가서 후회 말고”라며 고성을 지르며 협박했다. 그러는 동안 그 경찰 두 명은 동네 주민처럼 구경만 하고 있었다. 그마나 가끔 하는 말은 서른이 되었을까 말까 한 젊은 경찰이 다 했고 오십 대로 보이는 경찰관은 멀찌감치 떨어져서 구경만 했다.

월요일이 되자마자 서비스센터에 검사를 맡겼더니, 그냥 부팅만 시켜주면 모든 것이 정상으로 돌아가는 경우라고 했다. 나는 경찰에 그를 사기·공갈·횡령·협박죄로 고소하면서, 그의 휴대폰과 계좌를 압수해서 다른 피해자들이 당한 사기 건들까지 수사를 해줄 것을 요구하는 고발장도 제출했다. 요즘 경찰의 무기력함에 비추어 그까지 수사할 것인지 의문이 들기도 했지만, 그 사기꾼을 그대로 방치하면 앞으로도 수많은 피해자가 생겨날 것이 뻔했다.

경찰청 통계에 따르면 사기는 지난 10년간(2014~2024년) 24만 건에서 42만 건으로 80% 증가했고 2024년에는 전년 대비 22.9%나 늘었다. 2015년부터는 사기가 절도를 넘어서서 1등 범죄가 되었다. 보이스피싱, 스미싱, 중고나라 사기, 중고차 사기, 당근마켓 사기, 로맨스스캠, 전세사기, 주식 리딩방 사기 등의 시도를 당해보지 않은 사람들을 찾기 어려울 정도이다. 전 국민이 전화·문자메시지·SNS·e메일로 전문 사기꾼들의 연락에 무방비로 노출되어 있고, 사기꾼은 자신을 노출하지 않고 해외 IP로 안전하게(?) 사기를 칠 수 있다. 최근 사기·마약 조직이 벌어들이는 수익이 매년 50조원에 육박하는데, 콜롬비아 마약왕 에스코바르나, 멕시코 시날로아 카르텔 두목 엘 차포가 30년간 벌어들인 수익이 10조원대였다는 점을 생각해 보면, 우리나라에도 이들 못지않은 사기·마약 조직의 두목이 이미 탄생했을 수 있다. 그러나 사기 조직의 총책이 잡혔다는 소식은 K팝 가수들이 빌보드 차트 상위권에 올랐다거나 한국인이 프리미어 리그에서 골을 넣었다는 소식보다 더 듣기 힘들다. 사기범 검거율은 2014년에 80%에 육박하던 것이 2022년 이후에는 50%대로 떨어졌다.

변호사로서 피해자를 대리해서 고소를 진행해 보면 상식을 뛰어넘는 경찰의 무기력한 일 처리에 경악할 때가 적지 않다. 가령, 내 의뢰인 중에 사기 피해자인 30대 여성 H가 있다. 사기범은 H에게 “자신의 굿즈 사업권을 단돈 5억원에 사 가라, 그러면 BTS·아디다스·스타벅스와 콜라보를 할 수 있도록 해주겠다” “리움미술관의 도자기 전시관 한 층을 다 비우고 그 굿즈 특별 전시를 해주겠다”는, 누가 들어도 믿기 어려운 황당한 제안을 했다. 당연히 실현되지 않았다. 이 사기꾼은 평소 어느 법무법인의 이사를 사칭하고 다니는데 자신이 점도 잘 보고 굿도 잘 한다면서 이런 무속 신점을 잘 믿는 사람들에게는 굿을 해준다, 법당을 차려달라 하면서 돈을 받기도 한다.

놀랍게도 S경찰서의 모 수사관은 반년 이상 끌다가 이 사건을 혐의가 없다며 불송치결정을 했다. 불송치결정문엔 “이 사건 혐의를 인정할 증거가 부족하므로 혐의 없다”라고만 적혀 있었다. 반년 이상 수사하고도 이런다면 대체 국가수사기관의 효용이 무엇일까 싶다. 담당 경찰 수사관에게 전화해서 물어보니 “피의자가 BTS 어느 멤버의 삼촌을 만나는 등 콜라보 노력을 했다고 하므로 혐의가 없다고 판단했다”고 했다. 경찰은 BTS 멤버 삼촌이라는 사람에게 전화 한 통 해보지 않았다고 했다. 오히려 내가 수소문을 해서 그 BTS의 삼촌이라는 사람과 통화를 해서 진짜 BTS 멤버의 삼촌이냐고 묻자 그는 BTS 멤버가 서너 살 때 본 이래 본 적이 없는 ‘6촌’이라고 대답했다. 그 경찰은 아디다스나, 스타벅스, 삼성 리움미술관 콜라보 근거에 관해서는 아무런 조사도 하지 않고 모두 무혐의 판단을 한 것이었다.

나의 다른 의뢰인은 배임수증죄로 고소당했으나 돈을 주었다는 사람이 준 적이 없다고 진술해서 혐의가 사실상 벗겨진 상태였다. 그런데도 1년 반이 넘도록 수사 결과가 나오지 않아서 취직을 못 하고 있다. 내가 담당 경찰관에게 언제 결과가 나오는지를 1년 전부터 물었는데, 그때마다 경찰관은 곧 나온다더니 5월에는 “저는 인사이동으로 자리를 옮겼으니 후임이 곧 처리할 것입니다”라는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범죄 피해자를 대리해서 형사 고소를 했더니 담당 경찰관이 전화가 와서 “부디 다른 경찰서로 고소해주기”를 권했다. 사실상 자신은 수사할 의욕이 없다, 여기서 수사를 원하면 원하는 결과가 안 나올 것이라는 말을 온 목소리로 전하고 있었다.

성범죄자처럼 사기범도 신상공개 필요
사실 일선 수사 담당 경찰관들이 마음 편하게 놀고 있는 것은 아니다. 나름대로 열심히 하는 경찰관도 많다. 과도한 업무량과 스트레스로 극단적 선택을 한 경찰관들도 나온다. 그런데 왜 이렇게 수사는 부실할까. 베테랑 경찰들에게 물으면 한결같이 2021년 형사소송법 개정 이래 수사 베테랑들은 다른 부서로 썰물처럼 빠져나갔고 순경 등 수사 경험이 전혀 없는 경찰들이 대거 수사부서에 들어갔기 때문이라 한다. “수사부서 탈출은 지능순”이라는 씁쓸한 유행어가 돌았다고도 한다. 실제 H 사건의 경찰도 교통순경 출신이었다.

기존에는 경찰 단계에서 사건처리가 지연되면 담당 검사가 송치받아서 직접 마무리했지만, 이제는 경찰이 처음부터 끝까지 해야 하니 과거 보다 부담이 큰데 미경험자가 많아 숙련도는 훨씬 떨어진 것이다. 피의자를 혐의가 있다고 송치하든 무혐의 판단을 하든 인사 고과에 차이가 없으니 부담이 적은 무혐의를 하기도 한다. 그만큼 사기꾼은 살판이 나는 것이고 국민들은 희생양이 된다. (베테랑들이 다 빠져나갔다는 말도 선뜻 이해가 되지 않는다. 공무원이 자신이 원하는 보직만 맡고 원하지 않는 일은 안 해도 되는 것일까.)

갈수록 범람하는 사기꾼을 그대로 두면 안 된다. ‘사기와의 전쟁’을 시작했으면 좋겠다. ‘컴퓨터 수리’ 사기 같이 피해자들이 법적 대응을 포기할 수밖에 없는 소액 사기꾼들도 대대적으로 수사해야 한다. 성범죄자의 신상공개처럼, 사기범죄자 신상공개도 하는 것이 좋겠다. 그 전에 수사체계를 제대로 정비해야 한다.

나는 검찰 출신도 아니고 검사들의 권한 남용도 많이 봤고 검사만 수사해야 한다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지금의 수사기관은 사기꾼들에게 아무런 공포심을 주지 못한다. 검사의 수사지휘권이나 직접 수사권은 전면 부정하더라도, 경찰 수사가 미진할 경우에 마무리는 검사가 하도록 해주는 것이 현실적인 최선이 아닐까 싶다. 야구로 치면 선발 투수는 경찰이 맡더라도, 마무리는 검찰이 하도록. 그래야 부실한 수사도, 과도한 수사도 거르고 한 기관의 권력남용을 견제하면서도 경찰과 검찰을 수없이 오가느라 소모되는 시간도 줄일 수 있다. 무엇보다 판치는 사기꾼들을 놓치지 않고 잡는 데 유리하다.

정재민 변호사, 작가. 20여년간 판사, 법무부 송무심의관 등으로 일했다. 『보헤미안 랩소디』(세계문학상 수상작) 등의 소설과 『지금부터 재판을 시작하겠습니다』 『범죄사회』 등의 에세이집을 냈다. 현재 법무법인 예문정앤파트너스의 대표변호사로 형사·이혼·상속 사건을 주로 담당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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