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nd Note] “우리 모두 다중이가 되자!” 내 속에 너무 많은 ‘나’
이 가사를 논하다 보면 소위 ‘다중이’, 즉 다중인격자를 귀엽게 지칭하는 말이 자연스레 따라붙곤 한다. 어느 한 가지로 콕 집어 말할 수 없는, 인간의 복잡한 내면을 표현하는 데 찰떡이기 때문일 것이다. 사실 우리 모두는 ‘다중이’가 맞다. 병리적인가, 그렇지 않은가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하다못해 집에서의 나와 회사에서의 내가 다르고, 친한 동성 친구 앞에서, 또는 이제 막 썸을 타려고 하는 이성 앞에서의 내가 다르듯 말이다. 한발 더 나아가, 필자는 우리 모두가 좀 더 적극적으로 ‘다중이’가 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하는 편이다. 여기서 ‘다중이’는 인격이 여러 가지인 사람을 의미한다기보다는 ‘역할’이 여러 가지인 사람을 의미한다. 그래야 내가 힘들 때 내 속의 ‘또 다른 나’가 ‘나’를 지켜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배우자와의 갈등으로 이혼 위기를 겪고 있는 A나, 회사의 요직에서 밀려나게 된 B가 ‘난 실패자야. 내 인생은 이제 끝났다’고 여기는 것이 이에 해당한다. 비록 누군가의 배우자 또는 아주 잘 나가는 직장인으로서의 역할은 실패했을지언정 여전히 존재하는 나의 다른 측면, 즉 누군가의 소중한 자식이자 형제자매, 영원히 우정을 나누고 싶은 친구, 성실하고 책임감이 강한 동료, 아직 배울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잠재적인 학습자 등으로서의 자신이 있다. 이를 놓지 않는다면, 그는 깊은 절망 속에서도 끈끈한 연대와 단단한 희망을 쥐고 일어설 수 있다.

그러니 우리, 모두 ‘다중이’가 되자.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지만, 다행히도 ‘가시나무’ 노래 가사와는 달리, 그 많은 부분들이 나의 쉴 곳이 되어줄 것이다.
[글 변시영(상담심리전문가 Ph. D, 『마흔, 너무 행복하지도 불행하지도 않게』 저자) 일러스트 프리픽]
[본 기사는 매일경제 Citylife 제988호(25.07.15)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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