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벌 기회 포기도 사업 기회 제공?”[박상영의 경제본색](4)

2025. 7. 11. 1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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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태원 SK그룹 회장과 유영상 SK텔레콤 대표이사가 지난 5월 7일 서울 중구 SKT타워에서 열린 ‘SKT 해킹 사태’ 기자회견에 입장하고 있다. 서성일 선임기자



입찰에 참여하지 않아 총수 일가가 회사의 지분을 취득하도록 한 행위가 ‘사업 기회 제공’에 해당하는지에 대해 대법원이 최근 첫 판단을 내렸다. 이 판결은 향후 공정거래위원회의 사업 기회 제공 제재 기준에 큰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대법원은 지난 6월 26일, 공정위가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SK실트론 지분 매입을 ‘사업 기회 제공’으로 보고 최 회장과 SK㈜에 부과한 시정명령과 16억원의 과징금을 취소했다. 이번 판결은 공정거래법상 부당지원행위의 한 유형인 ‘사업 기회 제공’ 행위가 대법원에서 본격적으로 다뤄진 첫 사례다.

이번 사건의 핵심은 SK㈜가 입찰에 참여하지 않음으로써 최 회장이 실트론 지분 29.4%를 매입한 것이 사업 기회 제공에 해당하는지였다. 회사가 총수 일가에 적극적으로 돈을 벌 기회를 제공한 것을 넘어 돈을 벌 기회를 포기한 것도 사업 기회로 볼 수 있느냐가 쟁점이었다.

기업 가치 5배 뛴 ‘실트론’

공정위가 그간 ‘사업 기회 제공’ 행위에 대해 제재를 가한 사례는 총수 일가에 적극적으로 사업 기회를 넘기는 방식에 집중돼 있었다.

2019년 공정위는 대림산업이 자체 호텔 브랜드인 ‘글래드(GLAD)’ 상표권을 총수 일가가 100% 지분을 보유한 계열사 APD에 넘긴 행위를 문제 삼았다. APD는 이 상표권을 바탕으로 계열사로부터 30억원이 넘는 수수료를 챙겼다. 공정위는 대림산업이 총수 일가에 사업 기회를 넘긴 것으로 보고 제재를 내렸다.

반면 SK㈜는 실트론 지분 인수를 포기하는 소극적인 방식으로 총수에게 사업 기회를 제공했다. 공정위에 따르면 SK㈜는 2017년 1월 ㈜LG로부터 반도체 핵심 소재인 실리콘 웨이퍼 제조사인 실트론의 지분 51%를 주당 1만8138원에 인수했다. 그해 4월 SK㈜는 추가로 실트론 지분 19.6%를 주당 1만2871원에 매입했다. 그러나 우리은행 등 채권단이 보유한 실트론 지분 29.4%는 매입하지 않았다. 이 지분은 최 회장이 공개 입찰을 거쳐 같은 가격(1만2871원)에 샀다.

이에 대해 공정위는 SK㈜가 실트론 지분 전체를 매입할 여력이 충분했음에도 최 회장이 일정 지분을 소유할 수 있도록 직간접적으로 지원했다고 보고 과징금 8억원을 부과했다. 이 같은 사업 기회를 제공받은 최 회장에 대해서도 과징금 8억원이 부과됐다.

공정위가 이같이 판단한 데는 실트론 지분이 돈을 벌 수 있는 ‘사업 기회’로 봤기 때문이다. SK㈜가 실트론을 인수할 당시 반도체 산업 호황으로 실적 개선이 기대되는 상황이었다. 실제 실트론은 SK㈜에 인수된 이듬해인 2018년 매출액이 전년 대비 44.3%나 뛰었다.

이후에도 승승장구한 실트론의 기업 가치는 현재 5조원대로 평가받고 있다. SK그룹이 2017년 1조원대에 인수했을 당시보다 약 5배 상승한 수치로, 최 회장은 조 단위의 매각 차익을 거둘 수 있는 상황이다.

SK실트론 연구원들이 반도체 소재인 실리콘 웨이퍼를 살펴보고 있다. SK실트론 제공



대법원 판결에 공정위는 난감

대법원은 이번 판결에서 소극적인 사업 기회 제공에 대해서는 인정했다. 대법원은 “계열회사가 특수관계인 등에게 사업 기회를 직접 제공하는 방법 이외에도, 유망한 사업 기회를 스스로 포기해 특수관계인 등이 이를 이용할 수 있도록 하거나 특수관계인 등의 사업 기회 취득을 묵인하는 등의 소극적 방법으로도 가능하다”고 밝혔다. 향후 소극적 사업 기회에 대해서도 제재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준 셈이다.

그러나 대법원은 공정위가 증거를 어디까지 확보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모호한 기준을 제시했다. 대법원은 “사업 기회 제공에 해당하려면 소수지분 취득 기회를 갖는 회사가 그 기회를 포기하는 것이 적극적·직접적으로 사업 기회를 제공하는 것과 같이 평가될 수 있는지 구체적으로 심사해야 한다”고 했다. SK㈜가 SK실트론 잔여지분을 사지 않고 최 회장이 인수한 것이 이익을 적극적·직접적으로 제공하는 것과 같게 평가할 수 없다는 취지의 판단이다.

이 같은 판결에 공정위는 난감해하는 상황이다. 대법원이 제시한 기준대로 소극적인 사업 제공이 이익을 적극적·직접적으로 제공한 것과 같아지려면 구체적으로 어느 수준이고, 얼마나 직접적인 증거가 있어야 하는지 뚜렷하지 않기 때문이다. 경제개혁연대는 “대법원이 요구하는 판단 기준에 부합하려면, 사실상 SK㈜가 지분을 전부 인수하기로 한 후에 일부를 최 회장에게 넘겨주는 수준에 이르렀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 사건의 여파는 대주주와 회사의 이익이 충돌하는 상황에서의 의사결정 절차에도 미칠 전망이다. 상법은 회사와 이사 사이의 이익이 충돌하는 사안에 대해 가장 중립적 기관인 이사회를 열어 회사의 사업 기회 이용 여부와 이사에 대한 제공 여부를 회사에 최선의 이익이 되는 관점에서 결정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4년째 숙제 미뤄둔 공정위

공정위가 제재의 근거로 제시한 점도 이사회를 열지 않고, 최 회장이 실트론 주식 취득 입찰에 참여한 이후에서야 사외이사들로 구성된 ‘거버넌스 위원회’에 사후적으로 보고한 것이었다. 그러나 대법원이 SK 측의 손을 들어주면서 이런 사업 기회를 포기하는 과정에서의 절차적 정당성 문제는 묻히게 됐다.

사업 기회 제공에 대해 제재가 불확실해진 만큼 기댈 수 있는 대안은 주주대표 소송밖에 없다. 상법 제397조 제1항은 “이사는 이사회의 승인 없이 현재 또는 장래에 회사의 이익이 될 수 있는 (…) 회사의 사업기회를 자기 또는 제3자의 이익을 위하여 이용해서는 아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사와 회사 간의 이익충돌을 이사회의 승인을 통해 사전에 규제함으로써 회사 경영의 투명성을 높일 목적으로 도입된 조항이다. 그러나 상법상 1% 이상 지분을 가진 주주만 회사에 대한 이사의 책임을 추궁할 수 있는 만큼 여전히 문턱은 높다.

이번 사건에서 제도적 허점도 드러났다. 공정위 제재 당시 소극적 사업 기회 제공에 대한 첫 제재만큼이나 주목을 받았던 것은 과징금 규모였다. 수천억원에 달하는 시세 차익을 거뒀는데도 최 회장에게 부과한 과징금은 8억원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이는 매출액이 없어 사업 기회 제공에 따른 이익을 산정할 수 없는 개인에게는 정액 과징금인 20억원 내에서만 부과할 수 있는 제도적 한계 영향이 컸다.

공정위가 사업 기회 제공에 대한 제재 근거는 마련해뒀으면서 정작 사업 기회를 받은 개인에 대한 효과적인 제재 수단은 마련하지 않은 것이다. 공정위는 2021년 12월 제재 당시에도 이 같은 점을 인정, 제도 개선을 공언했지만 4년째 결과물은 나오지 않았다. 공정위는 최근 관련 연구용역을 진행했지만, 유의미한 결과를 도출하는 것에 난항을 겪는 것으로 전해졌다.

박상영 기자 sypar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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