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 계엄 이후… 당신의 '그날들'은 어떤 모습이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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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 한 권을 읽고 단 한 문장이라도 가슴에 닿으면 '성공'이라고 합니다.
그의 기록에 따르면 번역서 두 권을 주문하는 김에 귤을 사고, 이디스 워튼의 '이선 프롬'을 읽기 시작한 날입니다.
낮 동안 쓴 원고지 5매를 한 번 더 보면서 다듬었을 그날 밤, "오후 열시 이십삼분/ 계엄."
"남의 삶을 조금도 아낄 줄 모르는 사람들이 그 삶을 다 무너뜨릴 막강한 힘을 가졌"을 때 평범한 일상이 어떻게 망가질 수 있는지 보여주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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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정은 에세이 '작은 일기'
편집자주
시집 한 권을 읽고 단 한 문장이라도 가슴에 닿으면 '성공'이라고 합니다. 흔하지 않지만 드물지도 않은 그 기분 좋은 성공을 나누려 씁니다. '생각을 여는 글귀'에서는 문학 기자의 마음을 울린 글귀를 격주로 소개합니다.

지금으로선 이름도 붙이지 못할 이 기간의 불안과 울분을 어떻게 기록해야 할까.
감히.
혼란이 어느 정도 가시고 나니 이 말만 입속에 줄곧 서 있다. 감히.
황정은 작가의 에세이집 '작은 일기'는 2024년 12월 3일로부터 시작됩니다. 그의 기록에 따르면 번역서 두 권을 주문하는 김에 귤을 사고, 이디스 워튼의 '이선 프롬'을 읽기 시작한 날입니다. 낮 동안 쓴 원고지 5매를 한 번 더 보면서 다듬었을 그날 밤, "오후 열시 이십삼분/ 계엄."
다음 날부터 그는 거리로 나갑니다. 쓰기와 읽기에 집중하지 못한 채 매일 지치고 자주 무력해지면서도.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심판의 마지막 변론기일이 열린 지난 2월 25일, 국회 대리인단 장순욱 변호사의 최후 변론이 무척 아름다웠노라 적는 그는 천생 작가입니다.
"피청구인은 자유민주주의를 무너뜨리는 언동을 하면서 자유민주주의의 수호를 말했습니다. 헌법을 파괴하는 순간에도 헌법 수호를 말했습니다. 이것은 아름다운 헌법의 말, 헌법의 풍경을 오염시킨 것입니다."(청구인 변론의 일부) 말의 오염을 견디기 어려웠다는 황 작가는 "정확한 말이 건네는 위안을 받았다"고 씁니다.
혼탁한 시국에도 슬픔이 더 커서 괜찮다고도 했습니다. "분노하는 마음으로는 미운 이들과 동행하기가 어렵지만 슬픔으로는 함께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탄핵심판 선고일이 발표된 4월 1일, 그는 "이제 뭐가 되든 써야지"라고 다짐합니다.
그로부터 사흘 후 윤 전 대통령은 파면됐고, 책은 5월 1일의 기록으로 끝맺습니다. "남의 삶을 조금도 아낄 줄 모르는 사람들이 그 삶을 다 무너뜨릴 막강한 힘을 가졌"을 때 평범한 일상이 어떻게 망가질 수 있는지 보여주면서요. 한 개인의 '작은 일기'인 동시에 우리 모두의 기록일 것입니다.

권영은 기자 you@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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