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서의 글로벌 아이] 머스크의 제3당 창당, 게임체인저 될까

미국은 양당제 국가다. 공화당과 민주당이 정권을 번갈아 주고받으며 거대한 기득권 체제를 구축해 왔다. 그러나 그 견고한 구조에 균열을 내려는 시도는 있어 왔다. 이제, 그 도전의 깃발을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가 들었다. 머스크는 ‘제3당’을 만들어 양당 구도를 깨겠다고 선언했다. 그가 미국 정치 지형을 바꿀 수 있을지는 두고봐야 하겠지만 적어도 변화에 대한 갈망을 자극한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양당 구도, 어떻게 견고해졌나
미국은 건국 초기부터 양당제가 자리 잡은 국가였다.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은 당파 정치를 경계했지만 정치권은, 지금과 같은 체계적인 정당은 아니었지만, 연방당(Federalist Party)과 민주공화당(Democratic-Republican Party)이라는 두 세력으로 나뉘며 양당제의 시작을 알렸다.
연방당은 1787년 필라델피아 헌법 제정 회의 전후로 본격적인 정치적 목소리를 냈다. 알렉산더 해밀턴을 중심으로 한 연방당은 연방정부의 권한 강화를 지지했고, 상공업 기반의 엘리트 중심 정치를 추구했다. 이에 맞서 토머스 제퍼슨과 제임스 매디슨은 민주공화당을 만들어 농업 중심의 분권형 국가를 이상으로 내세웠다. 이는 단순한 정치 노선 차이가 아니라, 신생 미국이 어떤 국가가 될 것인지에 대한 방향성 경쟁이었다.
19세기 초 연방당이 급격히 몰락하면서 사실상 민주공화당 일당 체제가 됐다. 하지만 내부 갈등이 격화됐다. 1828년, 앤드루 잭슨을 중심으로 한 세력이 민주당(Democratic Party)을 창당했다. 잭슨은 ‘민중의 대통령’을 자처하며 백인 남성의 참정권 확대, 서부 개척, 연방권력 축소 등을 내세워 대중의 지지를 받았다.
이에 반대하는 이들은 휘그당(Whig Party)을 구성했다. 휘그당은 상업과 산업 발전, 보호무역을 지지하고, 연방정부의 역할을 강조했다. 그러나 내부 분열과 노예제 문제로 1850년대 들어 급속히 해체되었다. 그 공백을 채운 것이 바로 공화당(Republican Party)이었다.
노예제를 반대하는 공화당은 1854년 창당됐다. 이로써 민주·공화 양당 구도가 시작됐다. 공화당의 첫 번째 대통령인 아브라함 링컨은 노예 해방과 남북전쟁 승리로 당의 정체성을 확립했다. 이후 공화당은 산업화와 자본주의, 북부 중심의 도시 엘리트를 대변하는 세력으로 성장했다.
이후 오늘날까지 민주당과 공화당은 미국 정치의 양축으로 자리해왔다. 그 과정에서 양당의 정체성과 이념은 수차례 바뀌었다. 예컨대 20세기 초까지만 해도 민주당은 남부의 보수주의자들을 대변했고, 공화당은 상대적으로 자유주의적 색채가 강했다. 그러나 1930년대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의 뉴딜 정책을 계기로 민주당은 점차 진보 성향으로 바뀌었다. 반면 공화당은 1960~70년대 남부 백인 보수층을 흡수하며 ‘작은 정부’와 자유시장 경제를 강조하는 정당으로 변모했다.
▲제3당은 왜 실패하는가
미국 정치는 공화·민주 두 거대 정당이 번갈아 가며 정권을 주도해온 일종의 ‘정치 독과점’ 체제다. 그렇다고 제3당이 없었던 건 아니다.
1891년 급격한 산업화와 경제 불평등에 맞서기 위해 인민당(Populist Party)이 결성됐다. 가난한 농민과 도시 노동자들 사이에서 큰 지지를 얻었다. 그러나 민주당이 인민당의 주요 공약을 수용하면서 결국 민주당에 흡수됐다. 포퓰리즘이라는 용어는 바로 이 인민당에서 유래했다.
1912년 전직 대통령 시어도어 루스벨트는 공화당과 결별하고 진보당(Progressive Party)을 창당해 대선에 뛰어들었다. 결과는 좋았다. 득표율 27.4%를 기록했다. 제3당 후보 사상 가장 높은 득표율이었다. 하지만 2위라서 당선되지 못했다. 이후 진보당은 해체됐다.
1968년 조지 월리스는 극우 성향의 미국독립당(American Independent Party)을 만들어 대선에 출마, 남부 백인의 표심을 업고 남부 5개 주에서 승리했다.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1992년 대선에선 텍사스 부호 로스 페로가 무소속으로 나와 선풍을 일으켰다. 페로는 1995년 개혁당(Reform Party)을 만들어 이듬해 대선에 출마했다. 하지만 8% 득표에 그쳤고, 개혁당은 사라졌다.
제3당이 실패하는 가장 큰 원인은 ‘승자 독식’ 제도에 있다. 1등만이 모든 것을 가져가는 것이다. 실제로 로스 페로는 1992년 대선에서 18.9%의 득표를 얻었으나, 승자독식제 때문에 선거인단은 한 명도 확보하지 못했다.
게다가 기득권 양당이 구축한 벽이 너무 높다. 공화·민주 양당은 선거법을 자신들에 유리하도록 만들었다. 모든 주의 주법은 양대 정당에 유리하게 편향돼 있다. 후보등록 요건, 정당 인증 기준, 방송토론 참여 기준도 양당 중심으로 설계돼있다. 이는 제3 정당의 출현을 어렵게 만들어 놓았다.
또 다른 요인은 자금이다. 미국에서 선거는 돈과 직결된다. 양당은 정치자금 조달 체계와 로비 네트워크를 갖추고 있다. 그 앞에서 제3당은 무력해진다.
▲양당제에 던진 머스크의 돌멩이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가 그 철벽을 부수겠다고 나섰다. 그는 아메리카당(America Party·미국당) 창당을 전격 발표했다. 주된 표적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다. 머스크는 킹메이커에서 반란군으로 변신했다.
그동안 수많은 제3당 실험이 반짝하다 사라졌지만 이번에는 다르다는 평가가 나온다. 세계 최고 부자 머스크는 자본과 글로벌 미디어 플랫폼을 손에 쥔 인물이다. 영향력도 강력하다. 그래서 머스크의 신당은 파괴력이 있다는 분석이다.
일단 신당의 목표는 내년 중간선거에서 상원 2~3석, 하원 8~10석 확보다. 숫자만 놓고 보면 미미하지만, 양당이 초박빙 구도를 이어가고 있는 의회 구조를 고려하면 ‘캐스팅보트’로 기능할 수 있다. 정치 분석가 다피드 타운리는 뉴스위크와의 인터뷰에서 “미국 정치에서 제3당은 일반적으로 수명이 짧지만, 머스크의 신당은 예외일 수 있다”며 “적어도 단기적으로는 공화당의 표를 분산시켜 민주당에 유리한 의회 지형을 만들 수 있다”고 내다봤다.
제3당은 불만과 좌절의 해소 통로이자, 제도권 정당을 견제하는 수단이다. 머스크의 아메리카당도 이 연장선에 있다. 머스크가 기존 정치판을 흔들 가능성은 있겠지만, 기존 제3당들이 겪은 구조적 벽을 넘어 자리를 잡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뉴욕타임스(NYT)는 “전국적인 신당 창당은 화성에 사람을 보내는 것보다 더 어려울 수 있다”고 봤다.
머스크의 창당이 또 하나의 실패로 남을지 모른다. 그러나 제3당의 출현은 미국 민주주의가 여전히 살아 있다는 증거다. 중요한 건 누군가가 기존 질서에 도전장을 던졌다는 사실이다. 민주주의는 늘 그 도전을 통해 다시 살아난다. 논설위원
박영서 기자 pys@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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