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시멀리스트의 여행, 이걸로 공부하면 능률이 오를지도

김나영 2025. 7. 11. 0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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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 무게가 걱정되었지만, 끝끝내 뉴욕에서 구매한 공책 4권을 짊어지고 왔다.
Made in USA, 클래식 컴포지션 노트.

뉴욕을 여행한다는 건 내가 좋아했던 영화와 수많은 미드의 어느 장면들을 눈앞의 현실로 마주하는 것과 같았다. 나이를 한두 살 먹어 가며 새로움을 맞닥뜨렸을 때 느끼는 놀라움과 기쁨의 역치가 높아지고 있다는 걸 체감하는, 그래서 한편으론 조금 서글픈 요즘인데 뉴욕만큼은 예외였다. 다양한 매체들로 오랫동안 나의 머릿속에 아로새겨진 여러 장면 덕분일 거다. 기억의 바닷속 어딘가에 점점이 번져 있던 섬과도 같은 이미지들이 뉴욕에 도착한 순간 파바밧! 연결되며 생생해지는 느낌이었달까. 기억들이 뉴런이라면 뉴욕은 시냅스였다.

뉴욕을 여행하는 동안에 활동량에 비해 쉬이 피로해지곤 했는데, 이 역시 같은 맥락일 것으로 생각한다(아니 그렇게 믿고 싶다). 피곤함에 나이 탓을 하는 나를 보곤 디자이너인 친구가 이런 말을 해 줬다. "뉴욕은 시각적 자극이 너무 많잖아. 나도 여기에서 지내기 시작한 후론 이상하리만치 금방 피곤해져." 그만큼 뉴욕은 나의 세밀한 감각 세포들을 일깨워 준 자극적인 도시였다. 그랬기에 나는 더더욱 인상적인 뉴욕만의 장면들을 찾아다니고, 사소한 디테일에 몰입하며 매료되었다. 사물도 예외는 아니었다. 저번 에피소드에서 다뤘던 뉴욕 고유의 테이크아웃 컵인 '안소라 컵'이 그랬고, 이번 에피소드의 주제인 '컴포지션 노트'도 마찬가지였다.

뉴욕의 전유물은 아니지만 아주 미국적인 것이라 할 수 있는 컴포지션 노트는 실제 미국 학생들이 주로 사용하는 공책이다. 겉표지의 흑백 마블 패턴과 그 한가운데 자리한 빈칸, 그리고 왼편의 제본 부분을 검게 테이핑한 듯한 마감 처리가 주요한 특징인 평범한 노트. 마치 짠 것처럼 영화나 드라마 속 주인공들은 공부할 때 늘 이 노트를 사용하곤 했다. 그만큼 아주 보편적인 일상의 물건인 것이다. 나에게만큼은 'Made in USA' 클래식(품질을 보장한다는 느낌은 결코 아니지만)으로서 특별함이 있는 이 노트를 찾아다니다 문득 궁금해졌다. 표지의 클래식한 마블 디자인은 누가 만들었고, 어떻게 시작되었을까?

정확하게 규정된 정보를 찾기는 어렵지만, 그 기원을 좇자면 10세기 중국과 12세기 일본까지 거슬러 가 봐야 한다. 마블링 기법이 널리 쓰이기 시작한 게 이 무렵이기 때문이다. 전통적인 마블링 문양은 다양한 색소를 섞은 용액에 종이를 담그는 방식이었다. 이러한 기법은 수세기 동안 이어지며 책 표지 장식 등으로 활용되었고, 또 다른 방식으로 발전했다. 마블링 무늬의 현대적인 노트는 19세기 중반 프랑스와 독일에서 등장한 후, 19세기 말과 20세기 초 미국으로 전해졌다. 특히, 독일에서 만들어진 마블링 패턴은 '애게이트(Agate) 패턴'이라 이름 붙여졌는데, 이것이 오늘날의 컴포지션 노트의 표지 디자인에 큰 영감을 준 대표적인 무늬로 알려져 있다. 컴포지션 노트의 마블 패턴 디자인은 저작권 등록도 되지 않아서 현대에 와서는 노트뿐만 아니라 다양한 분야로 확장되어 활용되고 있다.

뉴욕을 여행하며 틈이 날 때마다 컴포지션 노트를 찾아다니곤 했는데, 타겟(Target)과 같은 일반적인 마트나 월그린(Walgreens) 등의 드럭스토어에서 대부분 모두 발견할 수 있었다. 하지만 내가 찾는 오리지널의 느낌과는 무언가 달랐다. 패턴은 비슷하지만 판매하는 장소의 로고가 못생기게 박혀 있거나, 어딘가 1% 모자랐다. 시대를 초월한 멋진 디자인에 오점을 남기다니, 선뜻 손이 가질 않을 수밖에. 결국에는 보다 못한 친구가 아마존 검색으로 원하는 디자인을 찾아 주었고, '문구 덕후'인 친구 남편이 주문까지 해 주어 한국으로 데려오게 되었다. 원하는 디자인을 찾기 위한 나의 별난 고집을 이해를 넘어 커다랗게 공감해 주며(함께 다닌 마트와 드럭스토어, 문구점만 해도 족히 5곳은 넘었으니) 도움을 준 두 사람에게 지면을 빌려 고마움을 전한다.

사람마다 그런 게 있지 않나? 특정 노트에 공부하면 괜히 더 집중이 잘 될 것 같고, 반드시 어떤 필기구를 써야만 시험에 합격할 것 같고 그런 거. 하향 곡선을 타고 있는 나의 영어 실력에 다시금 불을 붙여 보고자 마음먹은 나는 이 노트를 가져야만 했고, 이제 내 것이 되었으니 정말로 공부에 집중해 볼 때다. 더 이상의 핑계는 없다.

P.S. 뉴욕에서 보내는 마지막 날 밤. 호텔의 TV를 켜자, <빅뱅이론>의 '쉘든'이 컴포지션 노트에 일기를 쓰는 장면이 나왔다. 수고와 노력이 보상을 받는 것 같은 이 순간, 이 기분. 겪어 보지 않고는 모른다.

*김나영 작가의 맥시멀리스트 여행
여행이 일의 한 부분이던 시절, 다채로운 도시들을 탐험하며 부지런히 작은 물건들을 사 모았다. 같은 종류만 고집하며 모았으면 나름의 컬렉션이 되었을 텐데 말이다. 후회를 거듭하면서도 여전히 홀딱 반한 물건들을 수집하는, 사물 한정 금사빠의 사는(Buy) 이야기.

글·사진 김나영 에디터 강화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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