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작’ 그러려고 공부한 거야, 검사 된 거야? [.tx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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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에 좋아했던 책이 다른 책에 인용된 것을 보면 반갑다.
나에게는 '찬란하고 무용한 공부'에 인용된 엘레나 페란테의 '나폴리 4부작'이 그랬다.
경쟁심과 사회적 신분 상승에 대한 욕망은 레누가 계속 공부를 하게 만든 드러나지 않는 불꽃 같은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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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에 좋아했던 책이 다른 책에 인용된 것을 보면 반갑다. 나에게는 ‘찬란하고 무용한 공부’에 인용된 엘레나 페란테의 ‘나폴리 4부작’이 그랬다. ‘나폴리 4부작’은 두 친구 레누와 릴라의 우정에 관한 이야기다. 레누에게 릴라는 가장 가까운 친구지만 얼마든지 자신을 초라하게 만들 수 있는 특별한 매력의 소유자다. 레누가 자신의 인생 이야기를 조금이라도 하려면 반드시 릴라 이야기를 해야 한다. 둘 중에 공부를 더 잘한 것은 릴라였다. 그러나 릴라는 초등학교 5학년을 끝으로 중퇴해 버렸고 차분한 모범생 레누는 대학에 진학하면서 가난에서 벗어나 중산층 삶으로 이동한다. 경쟁심과 사회적 신분 상승에 대한 욕망은 레누가 계속 공부를 하게 만든 드러나지 않는 불꽃 같은 것이었다. 이를테면 레누는 ‘너는 교수가 아니라 교사가 돼라’는 말을 듣고 수치심을 느낀다. 레누에게 공부는 자신이 원하는 사회적 계급에 받아들여지기 위한 도구였다. 하루는 레누가 릴라를 파티에 데려가 ‘하찮은 가정주부’ 취급을 하며 무시한 일이 있었다. 파티가 끝나자 릴라는 화를 낸다.

“레누, 정신 바짝 차리지 않으면 앵무새를 따라 하는 앵무새가 되겠더라고 (…) 레누, 너는 ‘고작’ 니노(출세를 위해 다른 사람의 환심을 사는 데 실패하지 않는, 겉으로는 매력적이지만 속으로는 아주 느끼한 친구)처럼 말하고 싶어서 학교에서 그렇게 열심히 공부한 거야? (…) 레누, 네가 공부하는 게 훌륭한 꼭두각시가 돼서 그런 작자들 집에서 환대받기 위해서였어?”
여기 나오는 단어 ‘고작’이 ‘나폴리 4부작’을 읽던 당시 내 마음을 사로잡은 단어 중 하나였다. 박근혜 대통령이 세월호 참사 당일 머리 손질을 받았다는 것 때문에 ‘고작’이라는 단어가 더 마음에 사무쳤었을 수 있다. ‘고작’은 누군가를 이해하려고 할 때마다 피해 갈 수 없는 괴로운 단어였다. ‘고작’ 그러려고 국회의원 된 거야? ‘고작’ 그러려고 검사 된 거야? ‘고작’ 해외 학회에 가고 비싼 호텔에 묵고 고급 와인을 마시기 위해서 교수 된 거야?’ ‘고작 그것 때문에? 그게 다야?’
지위와 명성과 인기와 권력을 얻고, 사고 싶은 것을 돈 걱정 없이 사고 남보다 우월해지기 위해서가 아니라면 굳이 공부할 필요가 있을까? ‘찬란하고 무용한 공부’는 공부는 그런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공부는 이를테면 ‘고작’의 반대인 것. 다른 사람을 무시하고 지적 우월성이나 뽐내려고 하는 것 말고 다른 것, 출세를 위한 수단에 불과한 것 말고 다른 것이다. 그 다른 것이 대체 무엇일까? 책의 저자 제나 히츠가 책을 쓸 때 염두에 둔 것은 새 도감을 들고 새를 관찰하는 사람들, 겸허한 독서광들, 그냥 배움 자체가 좋아서 독서 모임을 하는 사람들이었다(이런 사람들에게 축복 있으라!).
공부는 인간이 택할 수 있는 존재 방식 중 하나다. 그 공부를 통해서 무엇을 얻을 수 있을까? 레누와 릴라 이야기로 돌아가자면, “릴라를 제외한 우리 모두는 무언가에 굴복했다. 그 굴복과 그로 인한 시험과 실패와 성공을 거치면서 우리는 초라해졌다. 오로지 릴라만이 무슨 일을 겪어도 어떤 사람을 만나도 초라해지지 않았다.” 얻는 것은 바로 이런 내적인 삶일 것이다.

정혜윤 시비에스(CBS) 피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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