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을 우러른 해시계 ‘앙부일구’…선조들의 시간과 계절을 읽다
‘앙부일구, 풍요를 담는 그릇’ 가보니
농기구·농업 관련 유물 80점 한자리에
2021년 독일서 환수한 앙부일구 ‘이채’
하늘을 우러르는 가마솥 모양 해시계
조선의 과학기술, 농사에 접목 돋보여
사계절 농경 풍경 펼쳐진 미디어아트
별 그림자 만들기 등 체험거리도 다채

기후위기가 일상이 된 시대. 과거 농사의 중심이던 ‘절기’는 점점 낯선 개념이 되고 있다. 예측할 수 없는 날씨에 계절감마저 흐릿해진 요즘, 절기를 중요하게 생각했던 선조들의 모습은 자연과 더불어 사는 삶에 대해 다시금 돌아보게 한다. 경기 수원 국립농업박물관에서 열리는 기획전 ‘앙부일구, 풍요를 담는 그릇’에서 조상들이 살았던 시간과 계절을 따라가봤다.

앙부일구는 1434년 세종 때 백성들이 시간을 쉽게 알 수 있도록 만든 해시계다. 반구형의 오목한 시계판 중심에는 그림자를 만드는 ‘영침’이 있고, 시계판을 받치는 다리가 아래에 붙어 있다. 그 모양이 마치 하늘을 우러러보는 가마솥을 닮았다 하여 우러를 앙(仰), 솥 부(釜), 해 일(日), 그림자 구(晷)에서 따와 ‘앙부일구(仰釜日晷·하늘을 우러르는 가마솥 모양의 해시계)’라 부른다. 이번 기획전에는 국립농업박물관이 소장한 앙부일구를 비롯해 관련 유물 80여점이 전시된다. 특히 2021년 독일 부퍼탈 시계박물관에서 환수한 앙부일구가 시선을 사로잡는다.
이윤희 국립농업박물관 전시기획팀 학예사는 “오늘날 우리가 영위하는 농업은 짧은 기간 쉽게 이뤄진 게 아니라 조상의 경험이 오랫동안 축적된 결과라는 점을 전시를 통해 알려주고 싶다”며 “앙부일구를 포함해 여러 농기구와 농업 관련 유물을 한자리에서 볼 기회”라고 소개했다.

전시는 ‘하늘을 바라보다’ ‘하늘에 물어보다’ ‘하늘을 읽다’의 3부로 구성됐다. 먼저 선조들이 풍년을 기원하며 하늘의 변화를 자세히 살핀 과정을 보여준다. 가장 먼저 관람객을 맞이하는 것은 ‘팔곡성’이다. 벼·기장·보리·밀·콩·팥·조·삼씨 여덟가지 곡물을 상징하는 별자리로, 이 별들이 반짝이면 해당 곡물이 잘 익는다고 믿었다. 전시장에 서면 천장에서 곡물 이름이 빛의 형태로 내려온다. 관람객이 그 빛 아래 손을 대면 손바닥 위에 곡물 이름이 빛난다. 과거 별빛으로 풍년을 점쳤던 농경사회의 상상력이 디지털 기술과 만나 되살아나는 순간이다.

모양부터 소재까지 다양한 형태의 앙부일구도 만나볼 수 있다. 전시실 중앙에는 화강암에 새긴 평면형 해시계인 ‘석각해시계’가 자리한다. 이 해시계는 시각을 글자가 아닌 십이지로 표현해 글자를 모르는 백성들도 쉽게 시간을 읽을 수 있도록 고안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 학예사는 “세종 때는 당시 시대 상황에 맞는 과학기술을 농사에 접목하려는 노력이 있었기에 굶는 사람이 없었다는 말이 전해올 정도”라며 “이번 전시는 농업과학의 체계성과 실용성에 대한 깊은 통찰을 만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관람객의 반응이 가장 뜨거운 전시는 입체적인 앙부일구 구조물과 영상이 어우러진 미디어아트다. 벽면에는 앙부일구가 설치돼 있고, 그 주변으로는 사계절의 변화가 영상으로 펼쳐져 색다른 몰입감을 선사한다. 앙부일구의 영침이 움직일 때마다 계절이 바뀌고, 그에 따라 농사짓는 모습이 자연스럽게 펼쳐진다. 이밖에도 농사 풍경을 담은 ‘빈풍칠월도’, 청룡이 그려진 농기, 사계절 농기구 등을 관람할 수 있다. 별 그림자 만들기, 생일별 절기 알아보기 같은 체험형 전시도 마련돼 남녀노소 누구나 즐길 수 있다.

친구들과 전시장을 찾은 김정애씨(70·경기 화성)는 “아무리 기술 문명이 발달해도 자연을 읽는 조상들의 지혜에는 못 미치는 것 같다”며 “초등학생인 손주와 함께 다시 오고 싶다”고 말했다.
조선 정조가 직접 지어 반포한 농정 문서인 ‘어제권농정구농서윤음(御製勸農政求農書綸音)’에는 “농업은 천시(天時)에 의존하지만 지리적 이점을 잘 활용해야 하며, 아무리 좋은 땅이라도 사람이 해야 할 일을 제대로 해야 한다”는 구절이 담겨 있다. 농업은 하늘에 의존하는 천수답 같은 것이라 생각하기 쉽지만 그 안에서 풍년을 만드는 건 앙부일구와 같은 과학기술과 인간의 노력이었다. 하늘을 따르되 하늘에만 기대지 않았던 조선의 농업은 지금 우리에게도 깊은 울림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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