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성 평가 면제받은 신약 올해 1개뿐… 더딘 신약 도입, 美 관세 빌미 되나
"신약 신속도입 목적 제도들조차
진행 더디고 적용 대상 기준 모호"
업계 "기업 경쟁력에 영향 미칠라"
환자 "한국시장 혹시 외면받을라"

담관암 치료제 '페마자이레'는 지난달부터 건강보험을 적용받기 시작했다. 담관암 중에서 가장 예후가 나쁜 환자에게 쓰는 약인데, 국내 기업 한독이 미국에서 들여온 지 2년이 지나서야 보험 대상이 됐다. 제약업계와 환자단체는 그나마 보험 적용의 최대 관문인 경제성 평가를 건너뛴 덕에 결정이 난 거라고 했다. 경제성 평가를 했다면 더 오래 걸렸거나 아예 보험을 못 받았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경제성 평가 면제는 도입 비용에 비해 도입에 따른 긍정적 영향이 충분히 크지 않은 중증 또는 희소질환 약을 신속하게 공급하기 위해 2015년 도입된 제도다. 그런데 10일 업계와 한국글로벌의약산업협회(KRPIA)에 따르면 올해(6월 기준) 이 제도로 보험이 결정된 약은 페마자이레뿐이다. 2021년 3개, 2022년 5개, 2023년 8개로 조금씩 늘었지만, 지난해 5개로 줄더니 올해는 상반기가 지났는데 단 1개다.
신약 도입 속도를 높이기 위한 다른 제도들도 있다. 우선 보험 재정을 쓴 다음 제약사가 그중 일부를 내게 하는 위험분담제가 있지만 2022, 2023년 적용 대상 신약이 각 1개씩에 그치다 지난해 6개로 늘었는데 올 들어선 2개에 머물고 있다. 신약 도입 허가 단계부터 보험 적용을 위한 평가와 협상을 병행하는 제도도 있는데, 이를 통해 보험 결정이 난 약은 1개뿐이다.

기술 발달로 혁신적인 신약이 속속 등장하는데, 이들을 들여오고 보험 적용을 결정하는 과정이 여전히 더디다는 지적이 계속되고 있다. 속도를 높이려고 만든 제도조차 진행이 늦거나 대상 기준이 모호하다는 게 업계와 의료계의 공통된 목소리다. KRPIA 관계자는 "여러 심사가 누적되고, 확보가 어려운 데이터를 요구하는 경우도 많아 절차가 계속 지연되는 듯하다"고 귀띔했다.
KPRIA가 한국에 진출한 48개 다국적 제약사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현재 혁신신약 21개(대상 질환 확대 포함)가 국내 출시를 기다리고 있다. 대부분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제시한 혁신성 조건을 만족하고, 미국이나 유럽에서는 2년 이상 먼저 환자에게 쓰이고 있는 약들이다. 희소암 치료제 '웰리렉'은 다른 약이 없는데도 2년 넘게 보험을 못 받았다. '컬럼비', '엡킨리', '임델트라', '파드셉' 같은 항암제는 의미 있는 효과가 학계에 보고됐지만 국내 환자들에겐 너무 비싸다. '가텍스', '탁자이로', '레블로질', '레주록' 같은 희소질환 신약도 신속 도입 대상이 안 되고 있다.
업계에서는 의정갈등 영향이 크다는 분석이 나온다. 신약의 실사용 데이터를 토대로 평가를 강화해야 신약 도입이나 보험 적용이 가능한데, 의료공백 장기화로 데이터 확보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글로벌 제약사 관계자는 "지난해부터 신약 심사 통과가 더 어려워졌다"며 "기업들이 까다로운 한국 시장을 후순위로 미루려는 움직임도 감지된다"고 귀띔했다.

미국제약협회는 지난달 말 미 무역대표부(USTR)에 한국의 신약 보험 접근 기간이 평균 23개월로 너무 길어 미국 기업들이 부담을 떠안는다는 의견을 냈다. 앞서 USTR 역시 국가별 무역 장벽 보고서에서 한국 보험 정책의 투명성이 부족하다고 평가했다. 업계는 더딘 신약 도입 속도가 미국에 의약품 관세 부과의 빌미를 줘서 우리 기업들의 가격경쟁력을 떨어뜨릴까 우려한다. 또 환자들은 해외 제약사들이 절차가 더디다는 핑계로 한국 시장을 외면할까 걱정한다.
이에 신약 도입 제도 개편이 절실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정진향 한국희귀난치성질환연합회 사무총장은 "이미 시행 중인 제도라도 속도감 있게 실행하고, 행정 중심적인 측면부터 전반적으로 개선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형기 서울대병원 임상약리학교실 교수는 "건강보험 재정과 함께 논의돼야 하는 만큼 명확한 로드맵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재명 기자 nowlight@hankookilbo.com
Copyright © 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속보] 특검 "尹, 수용실서 나가길 거부... 15일 오후 2시까지 인치 공문" | 한국일보
- 강선우 후보, "집 비데 수리 지시? 보좌관 조언 구한 것"···갑질 논란 부인 | 한국일보
- 배우 강서하, 암 투병 끝 사망… 향년 31세 | 한국일보
- "가둔 후 1000회 성매매 강요"... 36년 차 형사도 놀란 가해자들 정체 | 한국일보
- 코요태 신지, 속마음 고백 "멤버들까지 미움받을까 걱정" ('유퀴즈') | 한국일보
- 하객만 1,200명… 신부 김지민, 선배 김대희 손 잡고 입장한 이유 | 한국일보
- [단독] '베트남전 참전용사' 전투수당 받게 되나... 법원 조정 회부 | 한국일보
- 어르신들 구하는 중에 車 폭발… "눈 마주쳤는데 못 구해" 자책 | 한국일보
- '보좌진 갑질 논란'에 두 번 고개 숙인 강선우 "제 부덕의 소치" 사과 | 한국일보
- 2인자 '무한 경쟁' 시작했나... 당·정부·대통령실 주요 직 꿰찬 친명계 | 한국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