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의 눈으로 분단의 비극을 바라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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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으로 걸어서 갈 수 있음에도 찾아갈 수 없는 이들이 있었다.
빨갱이라 호적이 없어 학교도 3년 늦게 들어간 산은 흑인 혼혈 친구 수한과 친해진다.
수한은 혼혈아로 고아원에서 생활하고 있다.
수한이 사는 고아원에서 생활하게 된 산은 동생 대복과 함께 스웨덴으로 입양을 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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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단 사회 속 그림자 드러내

고향으로 걸어서 갈 수 있음에도 찾아갈 수 없는 이들이 있었다. 꿈이 있음에도 포기해야만 하는 이들이 있었다.
가족이 월북하거나 공산주의에 투신했다면 받게 된 ‘연좌제’는 한국 사회의 그늘로 이어져 왔다. 시대가 낳은 역사적 아픔과 상처를 아이의 눈으로 다룬 횡성 출신 원유순 작가의 장편소설 ‘강산의 가얏고’가 나왔다. 연좌제부터 양공주, 해외 입양까지 분단으로부터 발생한 사회의 그림자를 드러낸다.
시작부터 강렬하다. 경상도에서 전라도로 시집온 ‘장정이’는 마을 사람들에게 흠씬 두들겨 맞는다. 남편이 북으로 향했기에 정이는 ‘빨갱이’가 됐다.
갓난배기 아들 경호를 데리고 어떻게든 살아야 했던 정이는 원래 살던 곳을 피해 무조건 위로 올라간다.
동두천에 정착하게 된 정이는 이름을 바꾸고 미국 군인들에게 노래를 하며 살아간다.
‘빨갱이의 낙인’을 지우기 위해 뇌물을 써서 아들 경호의 이름과 본관을 바꾸고 미군 조지와 살아가는 정이의 모습은 고단하고 무겁다. 이러한 모습이 아들 ‘산’(경호)의 입장에서 펼쳐진다. 산은 아버지가 켰다는 가야금을 어머니와 함께 배우면서 음악적 재능을 찾는다.
한 장 한 장 넘길 때마다 목이 콱 막힌다. 빨갱이라 호적이 없어 학교도 3년 늦게 들어간 산은 흑인 혼혈 친구 수한과 친해진다. 수한은 혼혈아로 고아원에서 생활하고 있다. 둘 다 나이가 많아 동갑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이들은 우정을 공유하며 자란다.
이들은 핸드볼부에서 함께 운동하며 행복한 나날을 보내기도 했다. 그러나 정이는 아들의 운동을 반대해 뇌물로 양담배를 선생님께 전하고, 이는 오히려 산에게 낙인으로 작용했다.
미군을 통해 주어진 신분을 벗어나고자 했던 연좌제의 그늘이 무겁게 다가온다. ‘양공주’라는 꼬리표는 늘 산과 정이를 괴롭혔다. 사랑을 말하며 돌아간 조지는 편지 한 통조차 없다.
산이는 조지의 아이를 임신한 어머니가 아버지를 그리워하며 결혼기념일에 가야금을 켜는 것을 보게 된다. 어머니와 함께 가야금을 켠 후 산은 묻는다. “아부지도 우리를 그리워할까?” “그것도 모르겠다. 생각해 보면 빨갱이 사상이 참 무서운 거다. 사상 따라 북으로 갔으니까 잘 살겠지. 그런 서방을 이리 가슴에 품고 사는 내가 미친 거다.”
정이의 자조섞인 대답은 분단의 비극과 이로 인한 후유증을 여실히 드러낸다. ‘빨갱이’라는 이유로 정이를 끊임없이 쫓는 이들도 있다. 조지의 아이를 낳은 직후에도 찾아온 경찰에 정이는 ‘연좌’를 끊어내기 위해 죽음을 택한다.
수한이 사는 고아원에서 생활하게 된 산은 동생 대복과 함께 스웨덴으로 입양을 가게 된다. 사이가 소원해졌던 산과 수한은 작별의 순간에서 서로를 부둥켜안는다. 산은 아버지의 가야금을 수한에게 남긴다.
그럼에도 산과 수한의 우정에서 희망이 슬며시 보인다. 이념 아래에 억압받고 무언가를 포기해야만 했던 이들을 향한 위로가 있다. 돌고 돌아 세상의 중심은 ‘나’에게로 다가온다. 산이 ‘어머니와 아버지, 그리고 나였던 가야금’을 수한에게 맡기는 순간이 더욱 뭉클하게 다가오는 이유다. 작가가 10년도 훌쩍 전에 초고를 썼지만, 세상에 내보이기까지 오랜 시간 망설였던 이야기이기도 하다.
원유순 작가는 “누군가 마음 한구석에 세상이 내 자리를 허락하지 않는다고 느낀다면, 산이의 이야기가 아주 작게나마 위로가 되었으면 좋겠다”며 “우리는 태어날 세상을 선택할 수 없지만, 그 속에서 어떻게 살아갈지는, 우리가 만들어 갈 수 있다”고 말했다.
이채윤 기자 cylee@kado.net
#빨갱이 #가야금 #아버지 #어머니 #연좌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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