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광택의 그림 에세이 붓으로 그리는 이상향] 85. 뒷 모습이 아름다운 사람

이광택 2025. 7. 11. 0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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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으면 아픈 것도 슬픈 것도 외로운 것도 끝이다. 웃는 것도 화내는 것도, 그러니 용감하게 죽겠다. 만약에 죽은 뒤 다시 환생할 수 있다면 건강한 남자로 태어나고 싶다. 태어나서 스물다섯 살 때, 스물두 살이나 스물세 살쯤 되는 아가씨와 연애를 하고 싶다. 벌벌 떨지 않고 잘할 것이다. 하지만 다시 환생했을 때도 세상엔 얼간이 같은 폭군 지도자가 있을 테고 여전히 전쟁을 할지 모른다. 그렇다면 환생은 생각해 봐서 그만둘 수도 있다."

무릇 한국인이라면 어린이부터 성인 할 것 없이 모두 알고 있는, 아름다운 사람 권정생 동화작가가 2005년 5월 1일에 남긴 유언장의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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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전하게 살고싶다던 꿈, 구석에서 이룬 하무뭇한 생의 한 철
온전하게 산다는 것.
그것은 내가 주인공이 되어
내 정신으로 깨어 있다는
말이다. 참으로 고요하고
깨끗한 것, 억지로 이루어지는 것이 없으며 무엇 하나
거슬리는 것이 없는 것.
바로 그것이 권정생 선생의
‘온전한 삶’
▲ 이광택 작 ‘상춘 모임’

“죽으면 아픈 것도 슬픈 것도 외로운 것도 끝이다. 웃는 것도 화내는 것도, 그러니 용감하게 죽겠다. 만약에 죽은 뒤 다시 환생할 수 있다면 건강한 남자로 태어나고 싶다. 태어나서 스물다섯 살 때, 스물두 살이나 스물세 살쯤 되는 아가씨와 연애를 하고 싶다. 벌벌 떨지 않고 잘할 것이다. 하지만 다시 환생했을 때도 세상엔 얼간이 같은 폭군 지도자가 있을 테고 여전히 전쟁을 할지 모른다. 그렇다면 환생은 생각해 봐서 그만둘 수도 있다.”

무릇 한국인이라면 어린이부터 성인 할 것 없이 모두 알고 있는, 아름다운 사람 권정생 동화작가가 2005년 5월 1일에 남긴 유언장의 부분이다.

무서운 전쟁을 겪고, 지독한 가난에 시달리고, 죽을 만큼 아팠음에도 아무도 미워하지 않았음은 물론, 도리어 세상 모든 것을 소중하고 귀하게 여긴 사람. 영혼이 가을 계곡물처럼 맑디 맑았던 사람이 바로 권정생 작가였다.

문명의 찬란한 깃발 아래 무참히 파괴되는 자연. 끝없이 질주하는 과학기술의 뒤편으로 드리워지는 인간성 피폐의 그림자. 자본의 시대, 그 엄청난 생산의 잉여를 주체하지 못하고 폭발 직전에 이른 물질적 욕구 그리고 소비문화. 정보만 남고 진리는 사라지고 있는 듯한 학문….

▲ ▲ 이광택 작 ‘권정생 선생이 사용한 호롱’

세상이 이렇게 엉킨 실타래처럼 혼란스럽고 오염된 하천을 바라볼 때처럼 울울해서일까. 갑자기 슬걱슬걱 맷돌 돌 듯 시간이 천천히 흐르던 어린 시절이 그립다. 사위 꼭꼭 조여드는 칠흑의 밤과 우멍한 뒷산 밑으로 조닥조닥 붙은 마을 집들의 창으로 밀감 빛 흐린 등불이 아렴풋하게 새어 나오던 그 시절이. 왜, 길도 옛길이 정감이 가고, 친구도 옛 친구가 좋으며, 선생님도 어릴 적 선생님이 더 애틋하게 그리울 때가 있지 않은가.

그래서일까. 물질문명이라는 거인 앞에서 측은하도록 심한 낯가림을 한 채 경북 안동의 빌뱅이 언덕에서 ‘생(生)의 한 철’을 잘 놀다 간 권정생 선생이 더욱 그리워지는 것이다. 마을 청년들의 도움을 받으며 지은 방 한 칸과 부엌이 대롱 달린, 생애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던 오두막 흙집. 집을 짓고 3년 동안이나 전기도 안 들어왔던 그 집에서 선생은 지상 최대의 행복을 누렸다.

얼마 전 우리 가곡(‘마중’, 노래 이해원)을 듣다가 ‘하무뭇하다’라는 사랑스러운 우리말을 알게 되었다. ‘마음이 넉넉하여 푸근하다’는 뜻이다. 물론 아팠고(폐결핵) 외로움이 커서 동화를 썼겠지만, 개망초 흰 꽃 무리 꽃 사래 치면 흐벅지게 웃고, 마음을 정갈하게 씻으면 꽃사슴하고도 ‘하무뭇하게’ 말 섞는 존재가 아동문학가가 아니던가. 모르긴 해도 “왜 이리 구석진 숲정이(마을 부근의 수풀이 있는 곳)에 들어와 사느냐?”고 누군가가 묻는다면 권선생의 대답은 간단했을 것 같다.

“온전하게 살고 싶어서지요!”

온전하게 산다는 것. 그것은 내가 주인공이 되어 내 정신으로 깨어 있다는 말이다. 참으로 고요하고 깨끗한 것, 억지로 이루어지는 것이 없으며 무엇 하나 거슬리는 것이 없는 것. 바로 그것이 권정생 선생의 ‘온전한 삶’이 아니었겠는가. 선생에게 땅 위의 모든 날은 좋은 날이요, 축복 받은 날이었다.

2007년, 세상을 떠나면서 권정생 선생은 정호경 신부에게 편지를 쓴다.

“제 예금 통장 다 정리되면 나머지는 북측 굶주리는 아이들에게 보내 주세요. 제발 그만 싸우고, 그만 미워하고 따뜻하게 통일이 되어 함께 살도록 해 주십시오.”

허름한 집에서 낡은 옷을 입고 소박한 음식을 먹으며 살았는데, 선생의 예금 통장에는 무려 10억 원이나 되는 큰돈이 들어 있었다고 한다.

일주일 전, 나의 둘째형님이 세상을 떠났다. 697번의 헌혈. 그리고 한국 의료계의 발전을 위해 시신을 기증했다. 아직 형님을 잃은 슬픔이 가시지 않았으나, 떠나는 뒷모습이 아름다워서일까. 한편 나의 마음은 저녁 밥상을 받은 아이처럼 하무뭇하다! 서양화가

#이광택 #에세이 #이상향 #권정생 #아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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