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경란의얇은소설] 나를 위해 기꺼이 나서줄 사람
위기의 순간 도울 사람 누구인가
내 곁의 가족·지인에 대한 태도
다시 한 번 뒤돌아볼 시간 필요
에이모 토울스 ‘아스타 루에고’(‘테이블 포 투’에 수록, 김승욱 옮김, 현대문학)

제리가 먼저 방으로 돌아와 잘 준비하는데, 전화가 걸려온다. 스미티의 아내 제니퍼에게. 목소리만으로도 고집스럽고 무슨 일에도 쉽게 밀려나지 않을 것 같은 느낌의 사람. 제리는 바뀐 휴대전화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녀의 강력한 지시처럼 느껴지는 일을 거절할 수 없어 도로 바로 내려갔다. 제니퍼 말에 의하면 금주한 지 일 년도 넘은, 술만 마시면 “거짓말쟁이 지니”가 되는 스미티를 “다시 병 속에 집어넣기” 위해서. 그 일이 쉽게 끝날 리가 없다.
소설에 전면에 등장하지 않으면서도 전화나 혹은 기억을 통해서도 플롯을 움직이는 보조 인물이 있는데 여기서는 제니퍼가 그렇다. 그런데 제리는 왜 오늘 우연히 만나 알게 된 남자의 아내가 시키고 부탁하는 일을 거절하지 못하는 걸까. 심지어 다음날 자신의 비행기까지 놓치면서. 통제력을 잃어버린 스미티가 탑승 통로로 들어가는 걸 확인하고, 그 비행기가 시야에서 사라지는 것까지 지켜보기가 스미티의 아내 제니퍼가 “나는 당신을 믿어요”라며 부탁한 일이었다.
이제 혼자 남아 집으로 돌아갈 표를 다시 알아보며 제리는 깨닫는다. 사람은 누구나 결점이 있다고. 스미티의 장점과 결점에 대해서, 자신의 결점에 대해서도. 그리고 스미티의 아내 제니퍼 생각을 한다. 천 킬로미터 넘게 떨어진 거리에서도 남편을 위해 “물불을 가리지” 않듯 나서주던 사람. 제리는 질문한다. “내게 아무리 많은 결점이 있어도 언젠가 반드시 다가올 그때가 되면” 나를 위해 기꺼이 나서줄 사람이 있는지, 그 사람이 누구였으면 하는지. 이 지점에서 독자도 그 같은 생각에 잠기게 되지 않을까. 내 곁의 가족과 지인들에 대해 내가 취하고 있는 태도를 돌아보면서.
‘아스타 루에고’는 스페인어로 다음에 다시 보자는 뜻인데, 그들은 간밤에 바에서 일행과 그 말을 주고받았고 탑승하기 전에 스미티가 머뭇거리며 제리에게 한 인사이기도 했다. 제리는 ‘아스타 눈카’, 다시 보지 말아요라고 속으로 말했지만 집에 도착해 수정하게 될지 모른다. 아스타 루에고라고. 자신이 사람을 대하는 진정성 없는 태도와 결점을 돌아보게 한 사람이었으니까.
농담해도 된다면 나의 많은 결점 중엔 좋은 신간을 얼른 소개하고 싶은 욕심에 기다려야 할 때를 놓친다는 것도 있다. 이 작품이 수록된 ‘테이블 포 투’에는 단편을 좋아하거나 스토리텔링 구조에 관심 많은 독자를 위한 여섯 편과 긴 이야기를 좋아할 독자를 위해선 장편 분량 같은 중편도 수록돼 있다. 진지함, 유머, 흥미가 “삶의 진폭”처럼 녹아 있어 누가 읽어도 만족할 것 같은. 그러니까 이 책은 이달 말 본격적인 휴가 기간에 소개했어야 했다.
조경란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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