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재원의 정치평설] 권력은 절대 공짜가 아니다!

차재원 부산가톨릭대 교수 2025. 7. 10. 1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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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재원 부산가톨릭대 교수

갈수록 점입가경이다. 국민의힘 상황 말이다. 12·3 비상계엄으로 자멸한 지난 대선까지 갈 필요도 없다. 친윤 송언석 원내대표 선출-김용태 비대위원장의 개혁안 좌초-당 3역 모두 영남 지역구 의원 선임-첫발조차 못 뗀 채 ‘철수’한 안철수 혁신위-낙선 김문수 후보의 당권 도전 몸풀기. 대선 패배 후 더 뒤로 가고 있다. 국민 평가가 그 증거다. 지난 4일 한국갤럽 여론조사에서 국힘 지지율은 기껏 22%. 민주당(46%)의 반토막도 안 된다. ‘보수 텃밭’ TK(대구 경북)도 잔뜩 토라졌다. 같은 조사에서 35% 지지에 그쳤다. 28% 민주당과 어금버금한 수준. 철옹성 지지 기반이 시나브로 무너져 내린다. 어디부터 손 대야 할까. 개혁 방안을 놓고 당내는 이미 백가쟁명이다. 그러나 누구도 과거 보수혁신의 모범 사례를 언급하지 않는다.

2003년 10월 이른바 ‘한나라당 차떼기’ 사건이 터졌다. 그 전해 대선 때 L그룹이 현금 150억 원 실은 트럭을 그대로 전달한 게 들통난 것. 궁지에 몰린 한나라당은 나름의 반격 카드를 꺼내 들었다. 2004년 3월 노무현 대통령 탄핵이었다. “기자회견 발언이 정치적 중립을 어겼다.” 이게 주요한 이유였다. 집권 초 새천년민주당을 깨고 기꺼이 소수 여당을 자처했던 열린우리당. 막을 길이 없었다. 졸지에 대통령이 쫓겨날 처지가 됐다. 그러자 그를 뽑은 국민이 가만있지 않았다. 17대 총선을 불과 한 달여 앞둔 시점. 탄핵 역풍은 거셌다. 당시 열린우리당 의석은 47석. 여론조사는 과반 훌쩍 넘은 180석까지 점쳤다. 반면 133석의 제1당 한나라당. 100석도 건지기 어렵다는 전망이 지배적이었다. 개헌저지선마저 위협받는 절체절명의 순간. 한마디로 보수의 위기였다.

여기서 한나라당 환골탈태가 시작됐다. 기치는 당내 개혁 소장파가 들었다. 대국민 반성과 지도부 총사퇴를 주장했다. 전혀 예상치 못한 사태 전개. 그래도 덕분에 분위기는 급반전됐다. 이미 공천 작업에 들어갔던 최병렬 대표가 맥없이 물러났다. 대타는 박근혜 의원. “‘박정희 딸’이라는 인지도에 기댄 안일한 선택이다.” 이런 비판을 비웃기라도 하듯 그는 거침이 없었다. 국회 앞 호화 당사와 천안 연수원을 국고로 귀속시켰다. 대신 여의도 허허벌판에 천막을 쳤다. 공천에도 거의 입을 대지 않았다. 한국 정당 역사상 처음으로 당 ‘오너’ 입김이 배제된 공천이 이뤄졌다. 총선 결과를 완전히 뒤엎진 못했다. 열린우리당이 152석으로 과반 의석. 한나라당은 121석 확보, 충분히 선방했다. 무엇보다 이때 회복한 지지는 3년 뒤 정권교체로 이어졌다. 한 걸음 더 나가 다음 대선도 승리, 보수 전성기 바탕이 됐다.

당시 혁신 성공의 키워드는 대략 3개. 소장 개혁파, 발상의 전환, 기득권 포기다. 21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 한나라당의 손자뻘인 국힘에게도 유효한 해법일 수 있다. 냉철하게 보면 현실적 적용은 매우 제한적이다. 먼저 국힘엔 과거 한나라당 혁신을 이끌었던 ‘남원정’이 없다. 남경필, 원희룡, 정병국 등 젊은 그룹이 진작 개혁을 외쳐왔던 상황. 당이 위기에 빠지자 바로 이들의 목소리가 본류가 됐다. 물론 이번 대선에도 국힘 최연소 초선 김용태 의원이 비대위원장에 올랐다. 하지만 전혀 맥을 못 췄다. 누가 봐도 대선용 간판에 불과했기 때문. 나름 그로서도 혁신을 목 놓아 외쳤다. 그뿐이었다. 그의 목소리를 담아낼 세력이 없었다. 그래도 한때 35세 당 대표를 선출하고, 이에 신진 기예가 몰려들기도 했다. 그런 참신한 개혁 목소리가 졸지에 사라졌다. 이른바 ‘이준석 사태’였다. 또 하나 한나라당을 구한 결정적 한 방은 천막당사였다. 1000억 원 넘는 재산을 포기한 ‘사즉생(死卽生)’ 결단. 국민 눈엔 신선하게 비쳤다. 비로소 민심이 돌아섰다. 이번 경우에는 황당, 그 자체다. 평생 관료만 했던 한덕수 대통령권한대행의 ‘뒷북’ 대선 출마. 그로선 발상의 전환이라고 우길지 모른다. 이젠 모두 다 안다. 내란 공범 혐의 돌파를 위한 꼼수였다는 것을. 더 가관은 ‘쌍권’ 지도부의 태도다. 당이 선출한 후보에게 그와의 ‘번외 결승전’을 강요했다. 김문수 후보가 말을 듣지 않자 새벽에 후보 교체 ‘쿠데타’까지 감행했다. 당원들의 집단지성 덕에 무위로 끝나긴 했다. 이미 선거는 ‘해보나 마나’가 된 뒤였다. 이렇게 지고도 누구 하나 책임지지 않는다. 오히려 주류 기득권은 더 강화되는 느낌이다. 지역 구도 울타리에 몸을 감춘 ‘언더 친윤’. 그들이 더 똘똘 뭉쳐 여전히 당을 좌지우지하고 있다.


이렇게 보면, 21년 전 해법의 적용을 가로막은 실체가 자연스레 떠오른다. 윤석열! 소장 개혁파 씨를 말린 이준석 사태, ‘출마 한덕수’의 등을 떠민 계엄, 그리고 주류 친윤까지. 그렇다면 그와 ‘절연’만 하면 국힘은 되살아날까. 천만의 말씀. 외부 명망가를 ‘모셔 와’ 대선 승리만 하면 된다. 이런 발상이 근본적 문제인 탓이다. 실제 2016년 ‘박근혜 탄핵’ 때도 공멸 위기에 처했던 보수. 자체 혁신은 거의 없었다. 당시 집권 세력이 키워준 ‘윤석열 신화’ 덕에 정권을 되찾았다. 이번에도 이런 요행수를 바라는 모양새다. 그렇지 않고선 요즘 상황을 설명할 길이 없다. 권력은 절대 공짜가 아니다. 국힘은 지금 그 대가를 혹독히 치르고 있다. 만사가 그렇듯, 노력 없는 성취는 내 것이 아니다. 정치는 더 말할 나위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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