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에 답하다] 지도부 튼튼한 민주당… 국민의힘은 툭하면 비대위
더불어민주당, 강력한 단일 리더십 구축으로 정권 탈환
국민의힘, 비대위 체제 남발… 당 지도부 수시로 흔들려
지도체제 문제 아닌 국민 신뢰 회복의 문제임을 알아야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 거대 양당이 다음달 초·중순 전당대회를 각각 앞두고 있다. 새 지도부 선출을 둘러싼 분위기 차이는 대선 승패 만큼이나 극명하다.
불과 3년 만에 정권을 탈환한 민주당은 8·2 임시전국당원대회를 열어 이재명 대통령이 맡았던 전임 당대표직 잔여임기를 소화할 첫 여당 대표를 뽑는다. 지난 제21대 대선 국면 단합력을 과시한 데 이어, 누가 새 정부 개혁과제를 ‘더 일찍 해치울지’ 친명(친이재명) 주자로서 집행력에 관심이 쏠린다. 지도체제, 경선 룰 논쟁은 뒷전이 됐다.
반면 계엄·탄핵의 강을 건너지 못한 채 소수야당으로 전락한 국민의힘은 전대 일정표 확정 시기부터 여당보다 한참 늦었다. 친윤(친윤석열) 주류 측 지도부가 집단지도체제로 전환을 검토한다는 설도 떠올랐다. 특정 비주류 주자 등판 여부에 맞춰 당대표 권한을 약화시키는 당헌 개정도 예상된다. 이에 송언석 비상대책위원장 겸 원내대표는 ‘현재 단계에서 아니다’란 입장을 내놓고 있다. 경선 룰도 결정권을 쥔 주류와 그렇지 못한 비주류의 기싸움 속에서 불투명한 상황이다.
전임 정권 패인으로 꼽히던 ‘당정일체’는 지금의 당·정·대, 당권주자들의 사기 진작 구호가 돼 있다. 민주당은 2022년 대선 패배에도 ‘이재명 리더십’을 세웠고, ‘여의도 대통령’급 권한을 집중한 끝에 대권을 잡았다. 집권 후로도 당헌상 ‘강한 당대표’를 유지한 채 리더십 일체화를 꾀하고 있다. 집권기 윤심(尹心)과 어긋난 당대표가 초유의 징계, 최고위원 총사퇴 등으로 축출되기를 반복했던 국민의힘은 제1야당이 되자 ‘당권 분할’로 곁눈질하고 있다. 지도체제 변경이 성패의 열쇠가 될 수 있을지 여부가 관심사인 이유다.
◇민주당, ‘약체 당대표’ 내려놓은지 13년
거대양당은 반세기 가까이 ‘1인 지배’에 가까운 총재 제도를 채택했으나 2002년 나란히 ‘제왕적 총재’를 폐지하고 대통령의 당직 겸임도 철폐했다. 최고위원 선거만 치른 뒤 합의제로 운영하는 ‘순수’ 집단지도체제를 시도한 경험도 갖고 있다. 현재는 당대표를 최고위원과 분리 선출해 강한 권한을 부여하는 ‘단일성’ 집단지도체제를 공히 채택 중이다. 독재권력 비판이 주된 기조였던 민주당은 2022년 7월 당헌 개정에서 당대표가 최고위원들과의 합의 없이 국회의원 공천관리위 구성을 의결할 수 있게 하는 등 ‘강한 당대표’ 면모에선 앞서가고 있다.
민주당은 2001년 11월 김대중 당시 대통령이 10·25 재보궐선거 패배 책임을 지고 새천년민주당 총재직을 사퇴한 뒤, 이듬해 대통령이 여당 총재를 겸직하던 총재제 폐지와 집단지도체제가 도입돼 내홍을 수습한 바 있다. 새천년민주당은 2002년 4·27 전대부터 ‘총재의 후보군 통제’ 없이, 득표순으로 대표최고위원과 최고위원들을 선출해 당무를 합의제로 운영했다. 노무현 정부의 여당이었던 열린우리당도 집단지도체제를 채택했지만, 여권 분열 속에 2008년 야당이 된 통합민주당은 7·6 전대를 앞두고 당대표를 1인1표로 분리선출하는 단일지도체제로 전환했다.
그러나 2010년 7·28 재보선 참패로 10·3 전대를 치른 민주당은 ‘순수집단지도체제’ 회귀 실험에 들어갔다. 정세균계·손학규계·정동영계로 분분했던 당시 ‘계파 균형’이 주된 명분이었다. 비주류였던 손학규 대표최고위원을 선출한 민주당은 2011년 12월 문재인 상임대표의 ‘혁신과 통합’(혁통) 등과 야권통합을 이뤘다. 민주통합당은 2012년 1월 첫 전대부터 대표·최고위원 분리선출을 당헌에 명문화한 가운데 치렀다. 단일성 체제로의 전환 배경엔 의결 지연·책임소재 불분명·계파갈등 등 피로감이 있었다. 이때 친노(친노무현)계 한명숙 대표가 24.5% 득표율로 선출됐다.
4월 총선 참패로 다시 치른 6월 전대에선 이해찬 대표(득표율 24.3%)가 김한길 후보를 0.5%포인트 차로 꺾고 선출됐으며 18대 대선 경선 문재인 후보 과반득표로 이어져 친노계가 기반을 굳혔다. 그해 두차례 경선에선 당대표 후보 모두가 최고위원 후보로 동시에 등록해 표심이 나뉘었지만, 이후론 후보군을 완전 분리해 치렀다. 2013년 5월 김한길 대표 선출, 2015년 2월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 선출, 2016년 8월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 선출 당시 득표율은 50% 안팎으로 뛰었다. 집권기인 2018년 8월 전대, 2020년 8월 전대에서도 지도체제의 단일성이 강화됐다.
20대 대선에서 이재명 후보가 윤석열 전 대통령에게 석패한 2022년, 8월 전대 직전엔 ‘당대표는 당을 대표하고 당무를 통할한다’는 당헌 조항을 신설하는 등 당대표 권한과 책임성을 강화했다. 공천관리위 구성도 최고위 ‘의결’이 아닌 ‘심의’ 대상으로 낮추고 당대표가 결정했다. 이른바 ‘비명(비이재명)횡사’ 공천 논란도 감수했다. 2024년 8월 전대를 앞두고 당권·대권 분리(대선 1년 전 대표 사퇴) 조항을 ‘특별하고 상당한 사유’를 전제로 적용 예외로 둘 수 있는 당헌 개정이 이뤄졌다. 당대표 연속 선출로 이재명 리더십에 ‘올인’한 민주당은 계엄·탄핵 사태를 기회로 6개월 뒤 대권까지 잡았다.

◇‘봉숭아 학당’ 오명 쓴 보수정당, 구심점 상실
‘중앙당 사무처 공개채용 26년 당료 출신’ 함경우 국민의힘 전 조직부총장은 최근 SNS를 통해 당 지도체제 변천사를 설명했다. 이에 따르면 김영삼 정부 마지막 해이던 1997년까지 여당은 ‘제왕적 총재 체제’ 아래 정치사무기관에 가까웠다. 전대에서 대통령이 ‘총재’로 추대되고, 총재가 ‘대표’로 지명한 인사를 전대 또는 전국위원회에서 대표로 선출했다. 이땐 대표보다 총재와 직접 소통할 수 있는 ‘사무총장’의 권한이 막강했단 게 주된 평가다. 1997년 대선에서 이회창 신한국당 후보가 여권분열 속 석패한 뒤 보수정당 지도체제가 요동쳤다.
1997년 11월 신한국당과 민주당 조순계 합류로 한나라당이 창당되면서 초대 지도부는 집단지도체제를 거쳤다. 조순 초대 총재와 일부 요직이 합의·추대되고, 최고위원 등은 대의원 투표 경선으로 선출됐다. 각 계파 주요 인사들은 부총재로 자리했다. 1998년 8월 및 2000년 5월 전대에선 총재와 최고위원 분리선출로, 두차례 모두 이회창 총재가 중심인 단일성 지도체제가 구축됐다. 반면 2002년 5월 전대에선 ‘권력분산’ 여론이 강해지자 대권·당권 분리가 도입되고, 총재·부총재 제도가 폐지되며 최고위원 간 호선(互選)으로 대표최고위원을 정하는 ‘순수 집단지도체제’가 시행됐다.
함경우 전 부총장은 “(2002년) 이회창은 대선후보가 됐고, 전대에서 (대의원 투표) 1등을 한 서청원은 대표최고위원이 됐다. 당시 이회창이 견제한 강재섭(최고위원)이 만약 1등했으면, 호선을 통해 대표최고위원이 못 되게 할 계획이었다”고 풀이했다. 한나라당은 연달아 집권에 실패한 뒤 치른 2003년 6월 전대(최병렬 당대표 선출), 2004년 3월 전대(박근혜 당대표 선출)에선 ‘노무현 대통령에 맞설 강력한 야당 대표가 필요하다’는 여론이 힘을 얻었다. ‘당대표’ 명칭을 쓰는 단일지도체제로 환원됐고, 최고위원 선거는 당무 집행 역할에 역점을 둔 상임운영위원 선거로 전환됐다.
하지만 사상 첫 대통령(노무현) 탄핵소추로 ‘역풍’을 맞은 한나라당은 2004년 4월 총선에서 패배하고, 7월 전대를 다시 치렀다. ‘강력한 특정인이 아닌 다수 지도자가 당을 민주적으로 운영해야 한다’는 요구가 떠오르며 10년간 집단지도체제 시대가 열렸다. 2004년 7월, 2006년 7월, 2008년 7월, 2010년 7월, 2011년 7월, 2012년 5월, 2014년 7월 총 7차례의 전대에선 최고위원 선거 최다득표자가 대표최고위원, 2~5등이 최고위원을 맡았다. 이 기간 보수정당은 19대 총선 의석 과반, 이명박·박근혜 정부 탄생 등 성과를 거뒀다. 함 전 부총장은 이때의 당을 “맑고 건강했다”고 회고했다.
그러나 2016년 4월 새누리당은 김무성 대표최고위원과 친박(親박근혜)계 주류 최고위원 등과의 충돌, 공천 파동으로 20대 총선 참패를 겪었다. ‘봉숭아 학당’ 비아냥 끝에 2016년 8월 전대부터 ‘단일성 집단지도체제’를 도입해 친박계 이정현 대표 체제를 꾸렸지만, ‘국정농단 사태’와 비박계 대거 반란표로 대통령이 첫 파면됐다. 이후 2017년 7월(홍준표), 2019년 2월(황교안), 2021년 6월(이준석), 2023년 3월(김기현), 2024년 7월(한동훈)까지 전대에서 강한 당대표를 뽑았지만 조기 퇴출됐다. 야당 시절엔 전국선거 참패로, 국민의힘 집권 후엔 대통령의 압력으로 무너졌다.
◇10년간 비대위 자제한 민주, 국힘은 툭하면 비대위
양당의 지도체제 변천사를 두고는 “민심을 받들면 성공했고 꼼수를 받들면 망했다”는 말이 나온다. 비상지도부인 ‘비대위’ 출범 횟수도 양당 안정의 척도로 거론된다. 최근 10년간 민주당은 다섯손가락 내 꼽을 수 있다. 문재인 대표 사퇴 후 꾸려져 2016년 총선 1당을 만든 김종인 비대위, 2021년 4·7 재보선 참패 후 5월 전대를 준비한 윤호중 비대위, 2022년 3·9 대선 패배 후 꾸려진 윤호중·박지현 공동비대위, 석달 뒤 출범한 우상호 비대위 등이다. 반면 보수정당은 국민의힘 당명 아래 꾸린 비대위만 9번째(위원장 교체 포함)다.
첫 김종인(2020년 5월) 비대위 이외엔 주호영(2022년 8월)·정진석(2022년 9월)·한동훈(2023년 12월)·황우여(2024년 5월)·권영세(2024년 12월)·김용태(올해 5월)·송언석(올해 6월) 순으로 윤석열 정권 혼란상과 겹친다. 옛 새누리당도 2016년 6월 ‘김희옥 비대위’를 띄웠고, 12월 탄핵 정국에선 ‘인명진 비대위’를 출범시켜 궐위 대선을 치렀다. 자유한국당 홍준표 대표 체제가 2018년 6월 지방선거 대패로 물러난 뒤엔 ‘김병준 비대위’가 당을 수습했다. 홍성걸 국민대 행정학과 교수는 야당 상황에 대해 “지도체제가 문제가 아니라 국민 신뢰의 회복을 따져야 한다”고 말했다.
한기호 기자 hkh89@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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