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가부 폐지’를 지나 ‘성평등가족부’를 기다리며 [이경자 칼럼]


이경자 | 소설가
요즘, 어떤 여성들은 허리를 가늘게 하려고 자신의 갈비뼈 두대를 부러뜨린단 도시괴담 같은 얘기가 떠돈다고 들었다. 순간 마음의 눈이 화들짝 떠졌다.
“없어도 되는 갈비뼈 한대로 여자를 만들었잖아!”
이런 말이 저절로 나왔다.
오래전, 천연색 그림으로 그려진 창세기 이야기에서 아담과 하와의 내력은 내 정신에 화인처럼 박힌 사건 중 하나이다. 어릴 때부터 성당에서 놀았고 열살이나 되어서 영세까지 받았지만 성경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고 읽어내지도 못하긴 했다. 그저 전지전능하신 하느님의 식구가 된 것에 엄청난 위안과 자부심을 가지고 신자로 살았다. 하지만 창세기의 내용은 두고두고 충격적 잔상으로 남았다.
하느님은 낙원인 에덴동산에 당신의 모습을 닮은 사람 하나를 만들어 살게끔 했다. 그 사람은 하느님을 닮은 남자였다. 어느 날, 아담이라 이름 붙인 그 남자 사람이 심심해하는 것 같아 그의 몸에서 갈비뼈 하나를 빼서 여자 사람을 만들어 하와라고 이름 지었다. 하와 여자의 본분은 아담이 심심하지 않게 해주는 것이었다. 남자 아담에게 즐거움을 주는 여자 하와.
아담과 하와는 즐겁게 살았을 것이다. 그런데 하느님은 그들에게 금기 하나를 주었다. 에덴동산에 있는 과일 중에 어떤 나무의 과일은 따 먹지 말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어느 날, 하와가 금기의 나무에서 놀고 있을 때, 뱀의 몸으로 변한 마귀가 하와에게 과일을 따 먹으라고 꼬드겼다.
뱀의 꼬임에 넘어간 하와. 열매를 따 먹고 아담에게도 먹으라고 했다. 하느님의 금기를 어기고 싶지 않아 망설였던 아담. 그러나 결국 하와의 강요에 넘어갔다.
이 사건으로 실망한 하느님. 아담과 하와를 낙원에서 추방했다. 남자 아담에겐 노동의 고통을 벌로 주고 하와에겐 출산의 고통을 벌로 주었다.
결국, 태생 자체가 보잘것없던 하와가 아담을 죄에 빠뜨렸고 낙원에서 쫓겨나는 처지로까지 만들었다. 하와는 더 이상 나빠질 수 없을 만큼 나쁜, 그러니까 일종의 마귀다.
나는 성장기에 기독교 신앙을 가지지 않은 할머니로부터, 그 밖의 어른들로부터 ‘여자가 요물이다!’란 말을 아주 많이 듣고 자랐다. 여자로 태어난 건 창피하고, 또 요물이므로 잠재적 죄인이라는 것. 남성의 잘못 뒤엔 모두 여자가 있다고 믿게 하는 ‘가스라이팅’이 일상화된 것이었다. 고위직에 앉아 권력과 돈을 주무르는 남성들 중에 더러 범죄 혐의로 문제가 될 때마다 ‘그건 모르는 일이다. 집사람이 한 일이다’라고 말하는 경우도 꽤 보았다. 결국 아내, 집사람, 여자, 하와의 잘못이라는 것이다.
요물 여자가 요물로부터 해방되기 위해선 효녀, 열녀가 되어야 했다. 죽어가는 남편을 자신의 허벅지 살을 베어 먹여서 살려낸 이야기. 목숨을 걸고 약초를 구해 시아버지를 살려낸 며느리. 아직도 이런 살신성인의 삶을 기리는 열녀비나 아담한 사당이 마을의 자랑거리로 남아 있다.
기독교가 우리나라에 들어오기 전엔 어땠을까? 하와가 없었으므로 남성과 여성이 평등하게 살았을까? 어떤 역사학자나 인류학자들의 말로는 우리나라에선 남자와 여자가 평등하던 시대가 꽤 있었다고 한다. 좋은 시대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1960년대 이전, 그러니까 우리나라가 산업화 시대로 훌쩍 이행하기 이전, 하늘만 믿고 땅에 농작물을 심고 바다에 그물을 던져 먹고살던 시절엔 어땠을까? 내가 중학생일 때 가사 선생님은 수업 시간에 여학생인 우리를 두고 ‘처녀성’의 존재 가치에 대해 역설하셨다. 처녀성을 잃지 않도록 몸과 마음을 단속해야 한다는 것. 삼강오륜도 배웠다. 하늘에는 태양이 하나. 모든 곳에는 우두머리인, 가장이 존재한다. 가장은 아들 중의 맏아들이다. 그래서 시집간 여자가 아들을 낳지 못하면 그 가문의 죄인. 딸은, 열을 낳아도 자식이 없는 것. 아들을 낳을 시앗(첩)을 스스로 찾는 아내의 참담한 열패감은 동정조차 받지 못했다. 그뿐만 아니라 여자로 태어난 죄로 출가외인이 되어, 자신을 낳고 길러주신 부모님과 함께 살 수 없다. 남편의 집으로 가서 그 집 태양인 아들을 낳아야만 비로소 남편의 집에 뿌리를 내리게 되고 죽어서도 그 집 귀신이 되어 제삿밥을 얻어먹을 자격을 얻는다.
반세기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이런 가정이 드물지 않았다. 지금은 아들보다 딸이 낫다고 한다. 임신했을 때, 자궁 속의 태아가 아들인지 딸인지 검사해서 딸이면 미리 죽이던 일은, 과장하자면 거의 신화시대 이야기 같다. 그동안 가족법이 몇 차례에 걸쳐서 바뀌어 상속마저 아들과 딸이 평등하게 받는다.
더군다나 자식들의 종합교과서인 어머니와 아버지의 생활 속에 ‘차별’이 아주 줄어들었다. 삶의 교과서 내용이 달라진 것이다. 딸만 하나 낳고도 더 이상 자식을 낳지 않으니 가부장 태양으로서의 아들은 이미 존재 의미가 사라졌다고 할 수 있다. 가정 내 교과서가 달라지듯 성장기의 학교생활 교과서도 달라졌다. 또 직장에서도 제도적, 가시적 차별은 많이 줄어들었다.
이렇듯 여성들이 억울하다고 느끼거나 그렇게 살아온 현실에서 많은 부문이 개선됐다. 여자가 할 수 없는 건 정자 생산과 징병제도에서 ‘보호 혹은 소외’된 것뿐.
그러니 여자는 창세기 이래의 차별로부터 해방되었을까? 남녀차별이 풍속이 되었던 과거에는 ‘존중·보호와 더불어 멸시’를 받았다면, 비교적 평등해진 오늘은 ‘경계와 혐오’를 받는 것 같다.
경계와 혐오는 차별 양상의 문명적 전환일까? 여성들은 새로운 기술문명의 양태로 성폭력의 위협에 신경증을 앓는다. 녹음될까? 녹화되는 건 아닐까? 친절한 식음료 대접에 약물이 섞인 건 아닐까? 새로운 잠재적 공포감 속에서 긴장하는 여성들. 이 모든 변화에 불편함을 느끼는 남성들. 전쟁에 나가는 건 목숨을 내건 일. 징병제도에 대한 새로운 대안 없이 양성차별이 사라졌다고 만세를 부를 수 있을까? 남성의 억울함이 소멸되는 길은 평화로운 세상이 되는 것뿐!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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