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수사관에서 사진작가로…‘모성애의 이끼’ 담은 갤러리 JI, 삶을 품다
작품에 제목 대신 해석 남긴 철학…이끼 사진에 담긴 모성애와 무상무아의 정신

대구 봉산문화거리, 봉산문화회관 맞은편 골목에 자리한 '갤러리 제이아이(JI)'는 단순한 전시 공간을 넘어선 특별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JI 갤러리는 검찰에서 37년을 보낸 최봉영 관장(76)이 지난 4월 봉산동 132-15번지에 99㎡(30평) 2층 규모로 개관했다.
그는 갤러리 오픈 후 첫 전시회로 자신이 5년 동안 찍은 14점의 이름 없는 '이끼' 사진들을 '아픔다운 이끼 삭'이란 주제로 오전 11시부터 오후 5시까지 전시하고 있다.

△위암 극복 후 시작된 새로운 인생.
최봉영 관장은 15년 전 검찰에서 재직 당시 위암 판정을 받았지만, 이를 극복하고 작가와 갤러리 관장으로 새로운 삶을 살고 있다.
위암 판정으로 삶의 끝에 섰을 때 경험한 절망을 미래 사회의 기둥인 아이들에게는 겪게 하고 싶지 않다는 마음에 나눔과 환원에 큰 의미 부여했다.

△청년 작가 지원과 무상무아의 철학.
최 관장의 '어차피 떠나야 할 인생이라면, 조금이라도 환원하고 나누는 것이 중요하다'라는 철학은 갤러리 운영 전반에 스며있다.
최 관장은 젊은 작가가 전시 공간이 필요하다면 언제든 갤러리의 문을 열어, 그들이 중견 작가로 성장할 수 있는 작은 발판이 되어주고 싶다고 전했다.
그는 자신도, 갤러리도, 좋은 작품도 시대에 따라 변화한다며 '무상무아(無常無我)'의 철학을 강조했다.

△이끼와의 만남, 모성애를 담다.
최 관장의 사진작가로서의 여정은 5년 전 시작되었다. 카메라 작동법조차 모른 채 무작정 촬영을 시작했던 그는 처음 1년간 석양과 산, 바다 등 넓은 풍경 사진을 찍으러 다녔다.
그러던 중 밀양 위양지에서 햇살에 반짝이는 이끼를 발견하고 마음을 빼앗겼다. 습하고 응달진 곳에서 자라는 이끼, 여름이면 풀에 가려 잘 보이지도 않는 그 작은 생명체에서 최 관장은 깊은 감정을 느꼈다.
이끼의 꽃말도 찾아보니 '모성애'였다. 조용히 자연을 덮으며 보듬는 이끼는 어머니 같았고, 그 감정을 사진에 담기 시작했다.
10cm 단초점 렌즈로 이끼의 디테일을 담는 데 집중한 결과, 지난 4월 제43회 대한민국사진대전에서 특선을 수상하는 성과를 거뒀다.
현재까지 약 1만 장 이상의 이끼 사진을 촬영했으며, 이 과정을 통해 프로와 아마추어의 차이를 체감하고 그 차이를 좁히는 것이 곧 도전의 즐거움이라고 말한다.
△작가의 열정, 인생의 제2 원동력.
사진작가의 다음 목표도 뚜렷하다. 그는 국내 대회를 넘어 국제 여러 대회에 출품을 시작했다.
올해 제161회 애든버러 국제 사진전에 작품을 출품했지만 고배를 마셨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오는 10월에는 일본 아사히 국제사진 살롱에도 도전할 예정이다.
최 관장은 "삶이 힘들지만, 젊을 때부터 자신만의 취미를 만들고, 그걸 실현하는 게 중요하다"라고 설명한다.
자신은 사진 촬영이란 취미를 갖는 것이 많이 늦었지만, 이를 통해 사회에 의미 있는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에 감사했다.
그가 퇴직한 친구들을 만나면 몇몇은 "하루에 몇 번씩 집에서 아내가 차려주는 밥을 먹으며 눈치를 보는 상황을 한탄한다"라라며 "작은미를 가져보는 것이 어떠냐"라고 충고한다.
자신은 사진 촬영이란 작은 취미를 지속한 결과, 사진 대회 입상과 갤러리 운영까지 결과를 이룰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작은 취미로 아내와 자녀들과의 관계가 더 화목해졌다고 설명했다.

△제목 없는 작품들, 자유로운 해석을 위해….
갤러리에는 대한민국 사진대전 당선작 등 이끼 작품 14점이 걸려있다. 소중한 지인이 방문했을 때 제목을 '합창'으로 대신 정해준 1점을 제외한 다른 사진들은 제목조차 없다.
그는 작품에 제목을 넣는 순간, 사고가 고정되고 함몰된다며 작품 제목도 관객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고 전했다.

△자연을 품은 이끼처럼, 사람을 품는 공간
JI갤러리는 단순한 전시장 이상의 의미가 있다.
평생을 성실하게 살아온 한 인생이 또 다른 인생을 시작하는 무대이자, 젊은 예술가를 위한 발판이며, 기부와 나눔을 실천하는 플랫폼이다.
자연을 품은 이끼처럼, 사람을 품고 삶을 품는 공간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JI갤러리와 최봉영 관장의 작품과 삶은 오늘도 깊이를 더해가고 있다.
삶의 끝 막을 의미 있게 채워나가는 그의 모습에서 진정한 인생의 가치와 나눔의 철학의 의미를 엿볼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