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천, 지수 정규양 선생 불천위 제사 봉행…학덕·충의 정신 기려

임진왜란 당시 영천성 수복의 주역인 호수 정세아 의병장의 5세손이자 영일 정씨 가문의 큰 학자인 지수 정규양(1667-1732) 선생의 불천위 제사가 지난 9일(음력 6월 15일) 영천시 화북면 횡계리 보현산 자락에 위치한 옥간정(경북문화재 제270호)에서 봉행됐다.
이날 제사에는 전국 각지에서 모인 후손 20여 명이 참석해 선생의 높은 학덕과 충의 정신을 기렸다.
불천위(不遷位)는 국가에 큰 공훈을 세웠거나 도덕적으로 존경받는 인물의 신주를 사당에 영구히 모시고 제사를 지내는 제도다. 영천 지역에서는 영일 정씨 가문에서만 임진왜란 의병장 호수 정세아, 학자인 훈수 정만양과 지수 정규양 형제, 그리고 이들의 제자인 형조참의 매산 정중기와 승지 명고 정간 등 총 5분의 불천위를 배출해 그 가문의 위상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지수 선생은 1728년 영조 폐위와 밀풍군 이탄 옹립을 꾀한 이인좌의 난이 발발하자, 의병장으로 추대돼 창의하는 등 위기 상황에서도 흔들림 없는 충의를 실천했다. 선생의 서거 소식에 영의정 조현명은 "선생의 존망에 영남의 성쇠가 달렸는데 참으로 애석하도다"라며 깊은 애도를 표했다고 전해진다.
지수 선생과 훈수 선생 형제의 우애는 당대에 이미 정평이 나 있었다. 두 형제는 평생을 함께하며 시 한 편을 지어도 한 구절씩 나누어 완성할 정도로 깊은 유대를 보였으며, 공동으로 '훈지집' 62권 33책을 저술하는 등 당대 유례없는 학문적 업적을 남겼다. 전 부산교육대학교 이진성 교수는 이들의 돈독한 형제애를 "두 형제의 미담"이라며 초등학교 교과서에 실려야 한다고 역설하기도 했다.
지수 정규양 선생은 임종 두어 달 전, 신라 마지막 왕인 경순왕을 모시는 경주 동천전 건립에 기문을 쓰는 등 생의 마지막까지 학자의 기품을 잃지 않았다. 정규양 선생의 후손들은 형 정만양 선생이 유언으로 남긴 '충효공검(忠孝恭儉: 충성으로 임금을 섬기고, 효도로 어버이를 섬기며, 공경으로 마음을 다스리고, 검소로써 덕을 기른다)'의 가훈을 대대로 이어받아 실천하며, 빛나는 형제애의 가풍을 계승하고 있다. 이번 불천위 제사는 영일 정씨 가문의 유구한 역사와 정신을 되새기는 중요한 자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