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장’에서 ‘파종’으로

기호일보 2025. 7. 10. 1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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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 서류를 정리하다가 손가락을 베인 적이 있었습니다.

세상이 자신을 매장시킨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걸 파종으로 바꾸는 것은 우리 자신이다.

살다 보면 누구나 겪을 수 있는 '매장'당한 느낌을 '파종'으로 해석해 내는 것이 바로 지혜입니다.

매장의 끝은 파멸이지만 파종은 새로운 세계를 펼치기 위한 첫 단추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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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영 전 인하대학교 프런티어학부 겸임교수
최원영 전 인하대학교 프런티어학부 겸임교수

종이 서류를 정리하다가 손가락을 베인 적이 있었습니다. 따끔거리는 상처가 덧나지 않도록 연고를 발랐어도 그것이 아물 때까지는 불편을 감수해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그 경험이 종이를 다룰 때마다 더 조심하는 태도로 이어졌습니다.

작은 상처든 큰 상처든 상처는 삶을 한 번 더 돌아보게 하고 일상을 대하는 태도까지 변화시킵니다. 이 변화는 곧 성장을 뜻합니다. 이렇게 생각을 이어 가다 보면 내가 연고를 발라 상처를 치료했다고 여겼지만 사실은 그 상처가 나를 치료하고 성장시켰음을 깨닫게 됩니다.

류시화 시인은 「좋은지 나쁜지 누가 아는가」에서 '매장'과 '파종'이란 단어로 이런 깨달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매장'과 '파종'은 차이가 있다고 믿는다. 생의 한때에는 캄캄한 암흑 속에 '매장'됐다고 느낄 때가 있다. (⋯) 그러나 사실 그때 우리는 어둠의 층에 매장된 것이 아니라 '파종'된 것이다. 청각과 후각을 키우고 저 밑바닥으로 뿌리를 내려 계절이 됐을 때 꽃을 피우고 삶에 열릴 수 있도록 말이다.

세상이 자신을 매장시킨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걸 파종으로 바꾸는 것은 우리 자신이다. 매장이 아닌 파종을 받아들인다면 불행은 이야기의 끝이 아니다."

살다 보면 누구나 겪을 수 있는 '매장'당한 느낌을 '파종'으로 해석해 내는 것이 바로 지혜입니다. 매장의 끝은 파멸이지만 파종은 새로운 세계를 펼치기 위한 첫 단추이기 때문입니다. 고통의 순간들을 매장으로 여기느냐, 아니면 파종으로 여기느냐는 것은 온전히 '나' 자신만이 결정할 수 있습니다.

「무지개 원리」(차동엽)에서 저자는 고급 포도와 값비싼 소나무가 어떤 환경에서 성장했는지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습니다.

"프랑스의 어느 마을에서는 좋은 포도주를 생산하기 위해 포도나무를 심을 때 일부러 좋은 땅에 심지 않는다고 한다. 좋은 땅에 심으면 쉽게 자라서 탐스러운 포도가 열리긴 하지만 뿌리를 깊이 내리지 않아서 땅거죽의 오염된 물을 흡수하기 때문에 품질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그러나 척박한 땅에 심으면 빨리 자라지는 못해도 땅속 깊이 뿌리를 내려 좋은 물을 흡수하기 때문에 오염되지 않고 품질이 뛰어난 포도를 얻는다."

"소위 말하는 '잘생긴 소나무'들이 자란 땅을 파 보면 배수가 어렵고 토양이 매우 거칠다. 말하자면 아주 열악한 환경에서 자란 경우가 많다. 살아남기 어려운 곳에서 자란 소나무가 명품이 되는 것이다. 쉽게 이루는 일보다 힘들게 이루는 일이 더 가치가 있음이다. 반대나 저항이 없으면 발전할 가능성도 없다. 공기에 저항이 없으면 독수리가 비상할 수 없다. 물에 저항이 없으면 배가 뜰 수 없다. 중력이 없으면 걸을 수 없다."

사람은 자신이 살아가는 땅과 닮아간다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가 우리를 힘들게 하는 것들을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느냐가 곧 '땅'입니다. '매장'으로 바라보면 불행한 삶을 살게 되지만 '파종'으로 바라보면 도약의 계기가 되는 것입니다. 참으로 다행스러운 점은 이 결정을 '내'가 한다는 것입니다. 이 말은 오늘의 이 역경이 최고의 '나'로 부활시킬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고통은 시선을 '외부'에서 자신의 '내면'으로 돌리게 합니다. '너'에게서 '나'로 시선을 돌리는 순간 민낯의 나를 볼 수 있고, 그때 나의 문제를 발견하게 되며 이로 인해 문제의 해법을 찾아내게 됩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나날이 성장하고 성숙해지는 것입니다.

이런 이유로 상처와 고통은 병세를 악화시키는 게 아니라 오히려 우리를 치료해 주고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매장'에서 '파종'으로의 생각의 변화, 이것이 고통을 극복할 수 있는 명약인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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