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청년공감스토리 으뜸상 수상작] 나도 청년인데, 엄마가 된 청년입니다

이서후 기자 2025. 7. 10. 1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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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도민일보가 주최하고 BNK경남은행이 후원한 'BNK경남은행과 함께하는 청년스토리 공감의 장'이 올해로 세 번째를 맞았습니다. 시상식만 하고 실제 청년들의 이야기를 독자들에게 소개할 기회가 없었던 게 아쉬웠는데, 올해는 으뜸상이라도 소개하려 합니다. 무너지고, 넘어지고, 힘들어하면서도 저마다 자리에서 자신만의 길을 찾아 앞으로 나아가는 경남 청년의 이야기를 건네는 것만으로도 감동과 위로를 주기에 충분하기 때문입니다. 

1. 91년생, 둘째 엄마, 아직도 액팅간호사입니다

나는 1991년생이다. 지금은 병원에서 간호사로 일한 지 10년이 넘었고, 집에서는 두 아이의 엄마로 살아간다. 언뜻 보면 직장도 있고, 가정도 있는 '성공한 삶'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그 사이엔 아무도 알아채지 못한 단절과 고립, 그리고 견디는 시간이 있다.

나는 여전히 '청년'이라고 생각한다. 여전히 새로운 기술을 배우려 애쓰고, 병원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책임감을 느끼며, 아이 둘을 키우는 와중에도 무언가 나만의 커리어를 만들어가고 싶어 한다. 그런데 아이를 낳은 이후부터, 사람들은 나를 더 이상 청년으로 보지 않았다. 대신 "엄마"라는 이름 하나로 나를 설명했고, 내 삶의 고충이나 진급의 좌절은 "그래도 아이는 잘 크잖아요"라는 말로 가볍게 덮였다.

그 한마디가 나를 가장 깊게 찔렀다. 잘 크는 아이만큼이나, 내 커리어도 함께 자라고 싶었다. 내 자아도 돌봄이 필요했고, 그걸 위한 시간과 공간도 간절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게 흘러가지 않았다. 승진 직전 첫 아이를 임신했고, 복귀 후 둘째를 가지며 또 휴직하게 됐다. 두 번의 육아휴직은 내 커리어에 조용한 이탈선을 그었다. 회사는 나를 기다려주지 않았고, 내 자리는 자연스럽게 사라졌다. 그 사이 나와 같은 출발점에 있었던 사람들은 모두 차지간호사가 되었고, 내가 신규로 교육했던 친구들이 이제는 나보다 높은 자리에서 업무를 이끈다. 나는 여전히 액팅이다.

복직 후 '이제 다시 시작'이라는 마음으로 출근했지만, 그 마음은 현실 앞에서 너무 쉽게 무너졌다. 나의 위치는 예전과 같지 않았고, 나를 향한 시선도 달라져 있었다.

2. 선배인데 실무에선 후배의 지시에 따릅니다

병원 조직, 특히 간호사의 세계는 보이지 않는 위계와 체계가 또렷하다. 공식적인 호칭이나 겉모습으로는 평등해 보여도, 실제 간호사 업무는 '차지'와 '액팅'의 구분이 모든 행동과 의사결정의 기준이 된다. 차지간호사는 지휘하고 조정하는 사람이다. 근무표를 조율하고, 문제가 생기면 판단과 책임을 진다. 액팅은 그 지시에 따라 움직이는 실무자다. 흔히 말하는 '현장 투입'의 위치다. 나는 지금도 액팅간호사다.

그런데 문제는 단순히 역할의 문제가 아니다. 내가 신규 시절 가르쳤던 후배가 지금은 나에게 업무 지시를 내리고, 나는 그걸 받아들이며 움직여야 한다는 데서 온다. "선배님~"이라고 불러주지만, 실질적으로는 내가 그들의 요청을 따라야 한다. 그들은 나를 실무자로만 인식했고, 누구 하나 대놓고 무시하진 않지만, 누구도 내 판단을 먼저 듣고 싶어 하지도 않는다. 내가 후배보다 실무 경험도 많고 위기 대처도 빠르다는 걸 스스로는 알지만, 회사는 실력을 넘어 '지금 권한을 가진 사람'의 말이 곧 기준이 되는 세계다. 그리고 나는 그 권한이 없다.

/서동진 기자 sdj1976@idomin.com

3. 복직은 했지만, 나는 조직에서 지워져 있었다

첫째 출산 후 복직하던 날, 병원의 공기가 낯설었다. 내가 이곳에서 쌓아왔던 역할과 감각마저 지워져 있다는 것이 가장 힘들었다. 예전엔 내가 주도하던 인계 자리에서도 나는 한 발짝 뒤로 물러서야 했고, 내가 익숙하게 처리하던 업무들은 후배들이 이미 자기 방식대로 해내고 있었다. 내가 낯설어진 건 병원이 바뀐 탓만은 아니었다. 그 안에서 내가 '중심에서 밀려난 사람'으로 여겨지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둘째를 낳고 두 번째 복직했을 땐 더욱 뚜렷했다. "이제 이런 방식으로 해요", "요즘은 이걸 잘 안 써요"라는 말이 무심히 이어졌고, 나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내가 알고 있던 업무 지식은 유효하지 않은 과거가 되어 있었고, 내가 있던 시절의 방식은 '한때 그랬던 일'이 되어 있었다. 마치 조직의 기억에서 내가 삭제된 듯한 감각이었다.

누구는 말한다. "그건 어쩔 수 없는 거잖아요. 휴직을 했으니까." 하지만 나는 묻고 싶다. 왜 그 '어쩔 수 없음'은 늘 여성의 몫이어야 하고, 왜 복직자는 항상 기억에서, 판단에서, 리더십에서 뒤로 밀려나 있어야만 하는지.

4. 나는 지금도 청년 간호사입니다

그래도 나는 유니폼을 입는다. 출근 준비를 하고, 아이 둘의 아침을 챙긴 후에도, 그 누구보다 정확하게 내 근무를 수행한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인계 전날에는 환자 상태를 미리 파악하고, 신규간호사에게는 조용히 팁을 전해준다. 환자에게는 늘 웃는 얼굴로 다가가고, 응급상황에는 가장 먼저 반응한다.

내가 차지가 아니라서, 그런 일들은 당연한 일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그건 경력이 만든 능력이고, 삶이 만든 감각이다. 나는 환자를 지키는 또 다른 리더라는 자부심으로 일하고 있다. '청년'이라는 단어가 꼭 번듯한 명함을 가진 사람에게만 해당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청년은 오늘을 버티고, 내일을 바꾸고 싶은 마음을 가진 사람이다. 그리고 나는 분명히, 지금도 그런 마음으로 하루를 살아간다.

5. 엄마이자 간호사로, 그리고 청년으로 살아간다는 것

사람들은 '청년'이라고 하면 스펙 쌓고, 외국어 공부하는 20대들을 떠올린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에도, 유치원 알림장을 확인하며 눈물 삼키는 30대의 엄마 간호사도 있다. 진급은 밀렸고, 실무는 반복되지만, 여전히 책임감으로 환자 앞에 서는 워킹맘들도 있다. 누군가의 리더는 아니지만, 누군가의 손을 따뜻하게 잡아주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도 분명한 청년이다.

나는 엄마가 되었다고 청년이 끝났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아이를 키우면서도 내 자리 하나를 지켜내기 위해 애쓰는 지금이, 내 인생에서 가장 치열하게 청년으로 사는 시간일지도 모른다. 이 글을 읽는 누군가가 나처럼 회사 안에서 경계에 선 사람이라면, 나처럼 아이와 일 사이에서 조용히 무너지고 다시 일어서는 사람이라면, 꼭 말해주고 싶다.

"당신도 청년입니다. 그리고, 지금도 충분히 잘하고 있습니다."

경남도민일보가 주최하고 BNK경남은행이 후원한 'BNK경남은행과 함께하는 청년스토리 공감의 장'에서 으뜸상을 받은 윤수연 씨가 소감 발표를 하고 있다. /김구연 기자

두 번째 육아 휴직을 끝내고 직장 생활에 복귀하면서 고립된 시간을 보냈다. 취직해서 결혼해서 아이를 낳고, 진급을 위해 하루하루 살아가고 또 해야 하는 육아를 하면서도 우물 안 개구리처럼 있는 것은 아닌지 불안했다. 출산하지 않은 청년들이 부러울 때도 있었다. 내가 선택한 삶이지만, 출산과 육아로 포기해야 하는 것들이 생겼기 때문이다.

이번에 청년스토리 공감의 장에서 발표하려 2주 동안 준비하면서 새롭고 긍정적인 스트레스, 긴장감을 가질 수 있었다. 완벽주의 성향 때문에 발표가 긴장되고 떨렸다. 발표장에 와보니 주변에서 만나보지 못한 이들을 만나보고 그들이 발표하는 모습을 보니 항상 앞을 보고 나아가려는 마음은 누구나 똑같다고 느꼈다. 또 나만 도태된 것 같다는 생각을 하지만, 지금 이 순간도 앞으로 나아가려는 준비단계라고 여기려 한다. 육아와 일을 하면서 발표 준비를 할 때 긴장도 하고, 발표자 중에서 가장 연장자일 것 같아 자존감이 낮은 상태로 발표했는데, 심사위원과 많은 분이 공감해 줬다고 하니 감사드린다.

이번 공모에 응모한 경남 청년들은 모두 조용히 무너지고 다시 일어서려고 반복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오늘을 버티고 내일은 더 변화하며 살아가고 싶은 마음을 쭉 유지하면서, 힘내길 바란다.

/윤수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