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쿠폰 더 받아도 쓸 곳 없어”…‘농촌 민생회복’은 어디에

윤슬기 기자 2025. 7. 10. 1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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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감소지역 전북 순창 동계면 직접 가보니
농협 제외하니 읍으로 나가야 쿠폰 쓸만해
소상공인 보호 효과도 그닥…고령 주민들만 불편
전북 순창 동계면의 각 지역 어르신들이 지갑 속에 박혀 쓰지 않는 순창사랑카드를 꺼내 보여주며 ‘있으나 마나한 지역화페’라고 꼬집었다. 이들은 소비쿠폰 사용처에 농협이 또 제외된 것이 ‘농촌의 현실을 모르는 정부의 탁상공론’이라며 비판했다.

21일부터 지급되는 ‘민생회복 소비쿠폰’을 놓고 전국이 들썩이고 있다. 개인별로 다른 지급액과 사용처 등을 알아보느라 분주하다. 하지만 상권이 열악한 농촌의 분위기는 다르다. 소비쿠폰 사용처가 확정된 다음날인 8일, 농촌 민심을 듣고자 전북 순창 동계면을 찾았다. 인구감소지역이라 소비쿠폰을 5만원 추가로 지급받는데도 이곳에서 만난 어르신들에게선 부푼 기대감보다 실망감이 엿보였다. 

“소비쿠폰은 내수 활성화 측면에서 좋은 제도인데 도시민 관점에서 세부사항을 결정하니 농촌은 또 소외당했다.”

귀주마을에서 만난 양시윤씨(69)는 소비쿠폰 이야기를 꺼내자마자 ‘탁상공론’의 전형이라며 역정을 냈다. 농협 외 마땅한 사용처가 없는 면(面) 단위 농촌의 현실을 정부가 지속적으로 외면하고 있다는 것이다. 

양씨는 “면 단위 농협 하나로마트의 지역사랑상품권 사용을 허용해달라는 요청을 몇년간 지속했는데 계속 묵살되더니 소비쿠폰까지 외면당했다”면서 “직접 와서 실상을 봐야만 농촌에서 농협을 제외하고 ‘민생회복’을 강조하는 정책이 얼마나 말이 안되는 얘기인지 알 것”이라고 지적했다.

지역사랑상품권 사용처로 일부 면 단위 농협 하나로마트가 허용됐다는 소식에 전북 순창 동계농협 하나로마트에서 장을 본 정순옥씨(오른쪽)가 순창사랑카드를 꺼냈지만 ‘사용불가’라는 답변을 받았다.

실제로 동계면에 와 보면 양씨의 말을 이해할 수 있다. 동계면의 유일한 상점가는 면사무소 근처다. 하지만 이곳도 가게라고 해봐야 손에 꼽을 정도다. 그나마 농협 하나로마트와 주유소, 영농자재백화점이 있어 주민들이 일상생활을 유지할 수 있다. 이마저 없었으면 주민들은 모두 순창읍으로 장을 보러 가야하는데 읍으로 가는 버스는 하루에 4번, 심지어 면으로 돌아오는 버스는 3번만 운행한다. 그러다보니 고령의 어르신들은 버스타고 읍내에 가는 대신 전동차로 20분가량이 걸리더라도 면사무소 근처로 장을 보러 온다. 읍에 나가 쇼핑하는 건 그나마 운전이 자유로운 젊은층뿐이다. 

결국 인구감소지역의 농촌, 특히 그곳에 사는 노인들은 전국민이 모두 누리는 소비쿠폰마저도 가장 불편하게 사용해야 하는 실정이다. 정순옥씨(72·수정리)는 “세금으로 다 나눠주는 소비쿠폰까지도 누군 편하게 쓰고 누군 불편하게 써야한다는게 씁쓸하고 면 단위 시골에 살아 소외당하는 것 같다"고 푸념했다. 

쿠폰이 허공에 날아갈지도 모른다는 불안도 제기됐다. 양진엽씨(76·구미리)는 “순창사랑카드 안에 잔액이 몇만원 남았는데도 마땅한 사용처가 없어 안쓴지 2년이 넘었다”면서 “이번 소비쿠폰은 사용 기한도 있다는데 읍내 나갈 일 없는 노인들은 여차하다 (쿠폰을) 날릴 수도 있을 것 같다”고 걱정했다.

물론 정부도 열악한 농촌의 현실을 감안해 최근 민간의 동종 매장 이 없는 면 지역 내 농협 하나로마트·농자재판매소에선 쿠폰을 쓸 수 있게 했다. 하지만 구멍가게 수준이라도 관련 가게가 단 한개만 있어도 농협은 제외된다. 동계면도 지역 내 슈퍼 2곳이 등록되어 있어 농협 하나로마트가 예외적용을 받지 못했다. 

정작 소상공인은 고개를 갸우뚱했다. 동계면의 한 슈퍼 대표는 “크고 작은 가게가 많은 지역과 달리 이렇게 작은 농촌에선 하나로마트와 작은 슈퍼는 고객층이 달라 딱히 경쟁관계가 아니다”면서 “소비쿠폰을 농협에서 못쓰게 한들 어차피 다 읍으로 나가서 사용할텐데 우리한테 큰 도움이 될 것 같지도 않다”고 말했다. 오히려 그는 “지역사랑상품권도 농협에서 못 쓰면서 사용처가 별로 없다보니 상품권를 사용하는 주민수만 확 줄었다”고 덧붙였다.

농협을 허용해야 지역 내 소비가 활성화될 것이란 주장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관전리에 사는 김규식씨(76)는 “소상공인 자체가 거의 없는 면 단위 농협을 왜 제한하는지 이해가 안된다”면서 “농협에서 소비쿠폰을 써야 사람들이 장보러 나와 외식도 하고 주변 가게에서 이것저것 하나라도 더 살텐데 인근 읍이나 시로 나가서 돈 쓰게 만드는게 무슨 지역경제 활성화냐”고 되물었다.

현장에서 만난 지역민들은 지금이라도 사용처를 현실에 맞게 추가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소비쿠폰 사용기한이 11월30일까지인 만큼 아직 시간이 있다는 생각에서다.

임채문씨(76·어치리)는 “영농비 부담이 커 소비쿠폰으로 비료를 구매하고 싶었는데 지역에서 농협말곤 비료를 파는 곳이 없다”면서 “지역에 농약상만 있어서 손해 볼 업체도 없는데 농협에서 비료를 쿠폰으로 살 수 있게 허용해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쿠폰 사용처로 일부 지역의 농협 주유소도 허용해달라는 의견도 나왔다. 관전리에 사는 한경수씨(67)는 “소비쿠폰을 쓰려면 수십㎞ 떨어진 읍내에 가야하는데 관내에 농협 주유소밖에 없어 기름값은 쿠폰으로 못쓸 판”이라면서 “대중교통 환경이 열악해 운전이 필수인 농촌 특성을 반영해 지역 내 다른 주유소가 없는 곳에 한해 농협 주유소를 쿠폰 사용처로 인정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순창=윤슬기 기자 sgyoon@nongm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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