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TT 탈출 작전 [삶과 문화]

넷플릭스를 해지한 적이 있다. 정확히는 새벽 3시, 또 다른 자동재생에 넘어가서 아무 의미 없는 요리 프로그램을 보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한 순간이었다. "Gordon Ramsay의 지옥 같은 키친"이라니. 나는 요리도 안 하는데 왜 고든 램지가 소리를 지르는 걸 보고 있지? 이건 아니다 싶어서 해지했다.
해지 과정은 생각보다 친절했다. "정말 떠나실 건가요? " 같은 멘트와 함께 마지막까지 나를 붙잡으려 애쓰는 넷플릭스를 보며 묘한 죄책감이 들었다. 마치 헤어지자고 하는데 상대방이 "한 번만 더 기회를 달라"고 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 해지하면서도 미안했다.
하지만 미안함도 잠시 해지 후 72시간이 지나자 불안이 밀려왔다. 회사 점심시간에 동료가 "어 너 '오징어 게임 3' 봤어? 완전 충격적이던데!"라고 물었을 때, 나는 "아... 넷플릭스 잠깐 끊어서..."라고 대답하며 뭔가 세상에서 소외당한 기분을 느꼈다. 동료는 "아 그래? 진짜 놓치면 안 되는데..."라고 하고 바로 다른 사람과 오징어 게임 3의 충격적인 결말 얘기를 시작했다. 나는 그 순간 커피만 홀짝이고 있었다.
그날 저녁, 하는 수 없이 나는 다시 넷플릭스에 가입했다. "돌아오신 걸 환영합니다!"라는 메시지가 떴을 때, 마치 쓰레기통을 뒤져서 버린 편지를 다시 주워온 기분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넷플릭스만이 아니었다. 티빙은 "무료체험 1개월!"이라는 팝업에 낚여서 가입했는데, 1개월 후 자동결제되는 걸 까먹고 있었다. 웨이브는 어떻게 가입했는지도 기억이 안 난다. 아마 인터넷 설치할 때 묶음으로 들어온 것 같은데, 해지하려고 고객센터에 전화했더니 "고객님, 지금 해지하시면 인터넷 요금이 올라갑니다"라고 해서 그냥 두고 있다.
디즈니플러스는 가장 웃긴 케이스다. 해지하려고 들어갔는데 메인 화면에 "지금 시청! 데드풀과 울버린"이라는 배너가 떴다. 아, 그래 이미 디즈니플러스에 올라왔구나. 그런데 막상 보려고 하니까 시간이 없고... 그래서 "다음에 보지 뭐"라고 생각했는데 벌써 8개월째다. 아직도 안 봤다.
쿠팡플레이는 진짜 미스터리다. 쿠팡 로켓배송 때문에 쿠팡와우에 가입했는데, 어느 순간 쿠팡플레이도 같이 딸려왔다. 해지하려고 찾아봤는데 쿠팡와우랑 묶여있어서 따로 해지가 안 된다. 그래서 그냥 두고 있는데, 가끔 쿠팡플레이에서 "새로운 콘텐츠가 업데이트되었습니다"라고 알림이 온다. 뭔지도 모르겠고, 볼 생각도 없지만 알림은 받고 있다.
아! 그러고 보니 애플TV+는 정말 심각하다. 아이폰 살 때 1년 무료로 준 건데, 1년 후에 자동결제됐다. 그것도 달러로. 환율까지 계산하니까 한 달에 만 원이 넘게 나간다. 세브런스 보려고 가입했는데 아직도 세브런스 시즌 1 에피소드 3에서 멈춰있다. 그런데 더 웃긴 건 요즘 기묘한 이야기 시즌 5가 곧 나온다고 넷플릭스에서 광고하는데, 언제 보나 싶다.
이런 저런 이유로 해지에 실패한 나는 매달 카드명세서를 확인할 때마다 경악한다. 넷플릭스 1만7,000원, 티빙 1만3,900원, 웨이브 1만3,900원, 디즈니플러스 1만2,900원, 쿠팡플레이... 이건 쿠팡와우에 포함인가? 애플TV+ 9.99달러. 합계 약 8만 원. 한 달 헬스장비보다 비싸다. 그런데 나는 헬스장은 매일 가는데 OTT는 한 달에 한 번 켤까 말까다.
진짜 웃긴 건 내 넷플릭스 "이어보기" 목록이다. 《미나리》 43분, 《기생충》 1시간 12분, 《오징어 게임》 시즌1 에피소드2 23분, 그리고 새로 추가된 《오징어 게임 시즌 3》 7분. 전부 중간에 끈 것들이다. 오징어 게임 3은 진짜 충격적이라는 얘기를 들어서 시작했는데 7분 만에 배달음식이 와서 껐다. 그 다음엔 볼거리가 훨씬 많고 간소한 유튜브를 봤다.
가끔 해지 버튼을 찾아보긴 한다. 진짜로 해지하려는 게 아니라 그냥 어디 있나 궁금해서. 근데 해지 버튼이 점점 찾기 어려워지고 있다. 넷플릭스는 계정 설정 → 멤버십 및 결제 → 멤버십 취소 이렇게 3단계나 들어가야 한다. 티빙은 더 심하다. 설정 → 이용권 관리 → 자동결제 해지 → "정말 해지하시겠습니까?" → "마지막 기회입니다" → "친구들과 함께 보세요" → 그냥 나갔다.
결국 나는 깨달았다. 이건 콘텐츠를 보기 위한 구독이 아니라 "언제든 볼 수 있다"는 안정감을 사는 거라고. 마치 비상약처럼. 실제로 먹지도 않으면서 집에 타이레놀을 비축해두는 것처럼, 나는 실제로 보지도 않으면서 OTT를 비축해두고 있다.
어제 친구가 "너 뭐 재밌는 드라마 추천해줘"라고 했을 때, 나는 당당하게 "넷플릭스, 티빙, 웨이브, 디즈니플러스 다 있으니까 뭐든 찾아서 보면 돼"라고 대답했다. 마치 내가 드라마 전문가인 것처럼. 사실 나는 최근 3개월간 드라마 대신 유튜브에서 "우주의 신비" 영상만 봤는데도.
그래서 나는 오늘도 8만 원어치 가능성을 결제한다. 언젠가 시간이 생기면 몰아볼 거라는 착각, 갑자기 드라마가 보고 싶어질지도 모른다는 희망, 해지했다가 다시 가입하는 번거로움을 피하고 싶다는 게으름. 그 모든 걸 합쳐서 8만 원이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이것도 나름 합리적이다. 8만 원으로 나는 "뒤처지지 않는 사람"이라는 정체성을 유지하고 있으니까. 비싸긴 하지만, 트렌드에서 소외된 사람이 되는 것보다는 낫다. 아무것도 보지 않아도 나는 여전히 최신 플랫폼에 로그인 중이다. 사실 요즘 세상에서는 그게 가장 중요한 거 아닌가?

이소호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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