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가 정신을 묻다 (7) 김영기 ㈜휴롬 회장

전강용 2025. 7. 10. 0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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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졸업장 마다하고 제조업체 창업

주방용품 눈 돌려 ‘저속 착즙기’ 개발

기술력 바탕으로 글로벌 건강기업 우뚝

대한민국 최고 특허기술상 수상 영예도

기업인 사명은 복지제도·인프라 갖춰

지역인재 일하고 싶은 직장 만드는 것

그에겐 대학 졸업장이 없다. 가난 때문에 공부할 기회를 놓친 건 아니었다. 그는 선택의 기로에서 안정적인 삶보다 도전의 삶을 택했다. 1970년대 연세대 전기공학과에 들어갔다. 대학 졸업장만 있으면 대기업을 골라 갈 수 있는 시절이었다. 하지만 그는 샐러리맨 직장 생활엔 뜻이 없었다. 군대를 다녀온 뒤 창업을 결심했다. 스물다섯 살이던 1974년 고향인 김해에 TV부품 제조업체를 설립했다. 종업원 대여섯 명의 가내 수공업 수준이었다. 공장은 잘 돌아갔다. 많은 어려움을 겪으면서 ‘대기업에 납품할 게 아니라 세상에 없던 제품을 직접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주방용품 제조 쪽으로도 눈을 돌렸다. 특히 ‘건강이 중요한 시대가 올 것’이라고 내다보고 ‘건강에 도움 주는 제품을 만들겠다’고 결심한 그는 1996년 세계 최초로 저속 착즙 방식의 녹즙기를 개발했다. 그게 적중했다.

대학 졸업장도 마다한 채 창업의 길로 뛰어든 청년, 바로 ‘글로벌 착즙기 1위’ 휴롬을 창업한 김영기(76) 회장이다.
8일 김해 휴롬 공장에서 ‘글로벌 착즙기 1위’ 휴롬을 창업한 김영기 회장이 신제품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전강용 기자/

8일 김해 휴롬 공장에서 ‘글로벌 착즙기 1위’ 휴롬을 창업한 김영기 회장이 신제품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전강용 기자/

◇착즙 분야 글로벌 건강 기업

-어떤 계기로 청년 시절에 창업의 길을 택했는지.

“어려서부터 손재주가 있어 만들기를 좋아했어요. 물건이나 농기계가 고장 나면 손쉽게 고쳤습니다. 대학에 가서도 발명하고 만드는 일에 관심을 쏟았어요. 대학 졸업장을 포기하고 창업의 길로 들어섰습니다. 창업 후 방수 휴지걸이, 마늘다지기, 가스검지기 등 여러 아이디어 제품들을 발명했지만 사업화가 어려웠어요. 시행착오를 겪으며, 편리한 게 능사가 아니라는 교훈을 얻었죠.”

-‘휴롬’은 착즙 분야 세계 최고의 기술력과 글로벌 건강 기업으로 이름을 알렸죠.

“휴롬(Hurom)은 ‘사람(Human)’과 ‘이로움’의 합성어로 ‘사람에게 이로움을 준다’는 의미예요. ‘사람을 이롭게 하는 기술과 건강한 식생활 문화 조성을 통해 인류 건강에 이바지한다’라는 기업 철학을 바탕으로 하고 있습니다. 휴롬의 착즙기는 과일이나 채소를 ‘가는 방식’이 아닌 ‘눌러 짜내는 방식’입니다. 믹서기는 고속 회전이라 단시간에 최대량의 공기 접촉이 생겨 영양소를 파괴하는 단점이 있어요. 그래서 즙을 짜는 방식이 정답이라고 확신했죠. 연구에 연구를 거듭하기를 수백 번, 마침내 1996년 세상에 없던 ‘저속 착즙 방식’의 녹즙기를 개발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한때 글로벌 가전기업 ‘테팔’이 거액을 제시하며 착즙기 특허권 양도를 제안했어요. 돈 때문에 고생했던 시절이 떠올랐죠. 하지만 세계 시장에 한국 기업의 브랜드로 1등 하는 제품을 만들고 싶었어요. 테팔의 제안을 과감히 거절했습니다.”

◇특허기술상 대상 ‘세종대왕상’ 수상

인터뷰 질문에 답변만 하던 김 회장이 갑자기 질문을 던졌다. “코끼리가 왜 호랑이나 사자보다도 오래 사는지 압니까?”라고. 김 회장은 잠시 뜸을 들이더니 건강 강좌에 맞먹는 설명으로 답을 알려준다.

“육식동물인 사자나 호랑이는 길어야 10년을 살지만, 초식동물인 코끼리는 풀만 뜯어먹고도 70년 이상 장수합니다. 채소와 과일에는 파이토케미컬, 효소, 항산화 영양소 등 우리 몸에 필요한 수천 가지 기능성 영양소가 있어요. 그걸 많이 먹도록 도와주는 게 휴롬입니다. 열에 약한 영양소까지 모두 섭취할 수 있는 착즙기를 개발했죠. 원물 그대로 먹어도 좋지만 착즙해서 먹으면 훨씬 효과적입니다. 살아있는 채소와 과일을 골고루 많이 먹는 것, 이것이 사람이 하루라도 더 건강하게 살 수 있는 방법입니다.”

-경영을 하면서 최우선으로 강조하는 것은.

“직원들에게 ‘제품을 파는 게 아니라 건강을 파는 것’이라고 강조합니다. ‘건강’이라는 가치는 휴롬 제품 개발의 DNA이자 오랜 경영 철학입니다. 그리고 고객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것이죠. 고객이 기업에 원하는 답변은 ‘어떤 이유로 어렵다’가 아니라 ‘무조건 되게 하는 것’입니다. 휴롬 초창기 TV광고에 당시 최고 모델인 ‘산소 같은 여자’ 이영애 씨가 나와 화제가 됐어요. 지방의 중소기업이 홍보 모델을 제안했을 때 이영애 씨가 왜 흔쾌히 수락했을까요? 알고 보니 ‘휴롬 착즙기’를 사용하며 만족한 고객의 한 사람이었던 겁니다. 고객이 원하는 제품을 만드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실감했어요.”

-지난 2023년 대한민국 특허기술상 대상인 ‘세종대왕상’을 수상했죠.

“수십 년의 노하우가 집적된 휴롬의 기술력을 인정해준 게 가장 기뻤습니다. ‘회장 김영기’가 아닌 ‘연구원 김영기’라는 이름으로 받았기에 제겐 더욱 값진 상입니다. 그동안 휴롬의 연구 개발로 국내외 출원된 특허는 138건에 이릅니다. 휴롬 직원 수는 총 310여 명이며, 김해 주촌에 있는 본사에 210여 명이 근무하고 있습니다. 김해에서는 전 세계 88개국에 판매하고 있는 착즙기와 녹즙기를 직접 생산하고 있죠. 휴롬은 현재 전 세계 착즙기 누적 판매량 1200만 대, 누적 매출 2조1800억 원을 돌파했습니다. 지난해 매출액은 1338억 원이고, 중장기적으로 연매출 1조를 달성하겠다는 목표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휴롬은 다양한 사회공헌활동도 펼치고 있죠.

“김해는 제가 나고 자란 고향입니다. 휴롬 창립 이래 김해에서만 업력이 50년 넘었어요.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김해시, 김해시종합사회복지관과 위기가구 지원 MOU를 맺고 1억5000만 원을 기부하는 등 매년 소외계층 나눔 활동을 해오고 있습니다. 또한 어릴 때 식습관이 평생을 간다는 생각으로 어린이 식습관을 개선하기 위해 초록우산과 MOU를 체결하고 서울시 어린이병원에서 어린이 대상 채소놀이터를 운영하고 있어요. 김해지역 어린이집을 대상으로도 영양 교육과 함께 착즙기와 주스키트를 지원하고 있고요.”

◇전 직원 종합건강검진 시행

-직원의 건강과 복지에 신경 써서 종합검진·가족 진료 지원을 하고 있는데.

“직원이 건강해야 고객에게도 건강한 가치를 전달할 수 있다는 생각에 전 직원 종합건강검진을 매년 시행하고 있어요. 올해부터는 직원뿐 아니라 가족까지 건강관리를 받을 수 있는 ‘온가족 헬스케어 서비스’도 진행하고 있고요. 회사가 직원에게 해줄 수 있는 복지 사례를 더욱 많이 만들고 싶습니다.”

-청년 일자리 창출을 위해 해야 할 일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중국에서는 많은 청년들이 새로운 아이디어와 기술로 도전적인 창업을 꿈꾸고 있어요. 반면에 우리나라는 의대 진학에 집중되거나 대기업 등 안정적인 취업을 택하는 경우가 대다수입니다. 정부와 기업, 교육계는 청년들이 도전적인 미래를 꿈꿀 수 있는 환경 조성에 힘써야 합니다. 또한 기업은 우수 인재들이 다른 지역으로 이탈하지 않고, 일하고 싶은 직장으로 키워야 하고요. 동시에 젊은 층이 원하는 복지제도와 인프라를 갖추는 것이 기업인의 사명이라고 생각합니다.”

자신이 개발한 제품으로 매일 아침 채소·과일 주스를 마셔 오면서 ‘건강은 확실히 챙겼다’는 김영기 회장. 대학 졸업장이 없어도 아쉽지 않단다. “발명가로서, 연구원으로서 대한민국 최고 특허기술상인 세종대왕상을 받았으니 그거면 됐잖아요.” /심강보 프리랜서 작가/

☞ 김영기 회장은?

▷1949년 김해 출생 ▷부산 경남고 졸업 ▷1974년 ㈜개성공업사 설립(TV부품 제조) ▷1979년 ㈜판정정밀 설립(전자부품·주방가구 제조) ▷1996년 ㈜동아산업 설립 ▷1996년 전기녹즙기 발명특허 등록 ▷2008년 휴롬원액기 개발 ▷2011년 ㈜휴롬으로 상호 변경 ▷2015년 기업인 명예의전당 헌정 ▷2023년 대한민국 특허기술상 대상 ‘세종대왕상’ 수상 ▷2024 대한민국 일·생활균형 우수기업 선정

※이 기사는 경상남도 지역신문발전지원사업 보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전강용 기자 jky@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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