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라노] 동맹이 내민 ‘청구서’

예상했습니다. 시점이 언제냐, 그게 문제였을 뿐. 올해 초 뉴스레터 ‘뭐라노’에서도 머잖아 벌어질 일이라고 했었죠.
“우리는 한국을 재건했다. 거기에 머물렀고, 그들은 군사비로 매우 적은 금액을 지불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8일(현지시간) 백악관 내각회의에서 “한국은 자국 방위비를 스스로 부담해야 한다”며 한 말입니다. 주한미군 주둔비, 즉 돈 더 내놓으라는 얘깁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대선 후보 시절에도 우리나라를 ‘머니 머신’으로 부르며 “1년에 100억 달러(약 13조7000억 원)를 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여러 차례 엄포를 놨죠. 그는 여전히 ‘100억 달러’를 거론하면서 “한국은 부유한 나라” “미국은 한국에 거의 공짜로 군사 지원” 등의 주장을 계속합니다.
바로 전날 ‘상호관세 25% 부과’ 서한을 발송한 데 이어 ‘한국 압박’을 본격적으로 시작하는 모양새. 동맹국의 손바닥이 우리 뒤통수에 근접했습니다.
특유의 ‘허풍’도 여전합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주한미군 규모를 4만5000명이라고 했는데, 사실은 2만8000명입니다. 그는 또 집권 1기 때를 회상하며 “나는 한국에 ‘당신들은 매년 100억 달러를 지불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들은 난리가 났지만, 단 한 통의 전화로 30억 달러 인상에 동의했다. 나는 만족했다”고 큰소리쳤습니다. 그러면서 “‘내년(2020년)엔 다시 협상해야 한다’고 말했는데 그다음에 부정선거(2020년 미국 대선)가 있었고 우리는 다시 얘기하지 못했다. 바이든은 그 금액을 거의 없애버렸다”고 덧붙였습니다.
그러나 2019년 11차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 협정(SMA) 협상 때 트럼프 행정부는 우리나라에 100억 달러가 아닌 50억 달러(당시 약 5조7000억 원) 인상을 요구했습니다. 전년 분담금(1조389억 원)의 5배 가 넘는 금액. 협상은 바이든 전 대통령 집권 직후인 2021년 3월 타결됐는데, 2019~2020년 1조389억 원이던 분담금을 2021년 1조1833억 원으로 올렸죠. 그리고 향후 4년간 전년 국방비 증가율만큼 매해 인상하기로 했습니다. 올해 분담금은 1조4028억 원입니다. 양국은 지난해 10월 12차 협정도 타결해 2026년 1조5192억 원, 2027~2030년은 소비자물가지수 증가율과 연동해 인상하기로 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에게 ‘팩트’나 ‘국가 간 협정’은 그리 중요해 보이지 않습니다. 최강대국 대통령 지위를 마음껏 누릴 태세입니다.

우리는 그동안 동맹국이 뒤통수 치는 상황을 충분히 예상하면서도 맞설 힘을 기르지 못했습니다. 2006년 12월 12일 전시작전통제권 환수를 두고 군 원로들을 호통치던 전직 대통령의 발언을 올해 초에 이어 한 번 더 언급해야겠습니다.
노무현 당시 대통령은 격정을 토했습니다. “미국 바짓가랑이에 매달려서 엉덩이 뒤에 숨어서 형님, 형님 백만 믿겠다. 이게 자주 국가 국민의 안보의식일 수 있겠습니까. 대한민국 군대, 지금까지 뭐 했나 이거예요. 자기 군대 작전 통제도 제대로 할 수 없는 군대를 만들어 놓고 ‘나 국방장관이오’ ‘나 참모총장이오’ 그렇게 별들 달고 거들먹거리고 말았다는 얘깁니까. 작통권 가져오면 안 된다고 줄줄이 몰려가서 성명 내고, 직무 유기 아닙니까. 부끄러운 줄 알아야지!”
여기서 멈추지 않았습니다. “남의 나라 군대를 가지고 왜 우리 안보를 위해 인계철선으로 써야 합니까. 피를 흘려도 우리가 흘려야지요. 그런 각오로 우리가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져야, 무슨 경제적인 일이나 또 그 밖에 무슨 일이 있을 때 미국이 호주머니 손 넣고 ‘그러면 우리 군대 뺍니다’ 이렇게 나올 때, 이 나라의 대통령이 미국하고 당당하게 ‘그러지 마십쇼’라든지 ‘예, 빼십쇼’라든지 할 수 있어야 말이 될 것 아니겠습니까.”
19년 전 그때의 대통령이 제시한 방향은 진보냐 보수냐를 떠나 대한민국 장래를 위해 잘못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아직도 ‘그러지 마십쇼’ ‘예, 빼십쇼’ 할 수 있는 힘을 갖지 못했습니다.
이재명 대통령은 긴급하게 이달 한미 정상회담을 추진하려 합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상호관세 25% 부과 시점으로 못 박은 ‘8월 1일’ 이전에 협상에 나서겠다는 취지입니다. 이제 여기에 방위비 문제까지 얹혔습니다. 이 대통령은 지난달 취임 12일 만에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 무대에서 이틀간 정상외교 데뷔전을 펼쳤는데요. 빠듯한 일정이었지만 “국제사회에 대한민국이 신속하게 정상화됐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순방길에 올랐다고 밝혔죠. 특히 당시 성사 가능성이 컸던 트럼프 대통령과의 회담을 두고는 “다른 국가에 비해서 더 불리한 상황에 처하지 않게 하는 게 중요한 과제”라며 양측이 만족할 만한 성과를 내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이 대통령은 평소 ‘국익 중심 실용외교’를 표방해 왔습니다. 모쪼록 최대한 실익을 챙기되, 우리 국민의 자부심도 지켜내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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