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저씨!’가 ‘Ah, just Shit!’으로… 詩는 한계 없죠

황지윤 기자 2025. 7. 10. 0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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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서 나란히 번역 시집 출간하는 오은·유희경 시인 인터뷰

등단 20년 안팎으로 한국 시단에서 단단하게 자기 세계를 구축해 온 시인 오은(43)과 유희경(45)이 이달 중하순 미국 출판사에서 각각 영역 시집을 낸다. 오은의 2016년 시집 ‘유에서 유’(문학과지성사)는 ‘From Being to Being’(블랙오션), 유희경의 2010년 첫 시집 ‘오늘 아침 단어’(문학과지성사)는 ‘Today’s Morning Vocabulary’(제퍼프레스)로 번역됐다.

오은과 유희경이 씩씩하게 미국 시단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한국 시는 2020년대 들어서야 번역 작업에 시동을 거는 모습이다. 한국문학번역원에 따르면, 2001년부터 2025년 3월까지 번역원 지원을 받은 번역 출간물(2261건) 중 시는 334건에 불과하다. 소설(1399건)보다 한참 적다. /김지호 기자

두 사람은 시 동인 ‘작란(作亂)‘의 창립 멤버이자, 각별한 벗. 짠 것도 아닌데 영역 시집 출간이라는 흔치 않은 과업을 나란히 이뤘다. 조만간 출판사 위즈덤하우스에서 ‘낮과 밤’을 소재로 짝을 이루는 산문집도 낸다. 둘을 함께 만나야 한다는 우주적 압박(?)이 조여 왔다. 지난달 말 유희경 시인이 운영하는 서울 혜화동의 시집 서점 ‘위트앤시니컬’에 자리를 마련했다. 한국어판 시집과 미출간 영역 PDF 문서를 함께 보며 2시간가량 시와 번역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번역본을 받아본 소감은.

“언어적 한계 때문에 (시 번역은) 무용한 노력이라 생각했다. 시는 리듬을 포기하면 안 된다. 그런데 최근엔 사람의 삶은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전제하에 본질적인 측면이 있다는 구체적 믿음, 즉 코어(core)에 대한 신뢰가 생겼다.”(유희경·이하 유)

“어느 술자리에서 ‘오은의 시는 좋지만 국내용’이라는 말을 들었다. 언어유희가 많아 번역하면 말맛이 다 사라지고 말 거라고. 그래서 ‘어렵겠구나’ 싶었는데, 기대 이상이다. 얼마나 머리를 썼을까. 시 ‘말맛’에선 ‘언뜻 언 듯해요!’를 ‘I see it’s icy!’로 번역했고, 시 ‘아저씨’의 마지막 행 ‘아, 저…… 씨!’를 ‘Ah, just…… Shit!’ 미쳤다 미쳤어.”(오은·이하 오)

이달 출간되는 오은과 유희경의 시집(왼쪽부터). /블랙오션·제퍼프레스

-번역가 이름이 안수현과 안수연. 비슷한 이름인데 전혀 다른 성향이라고 들었다.

“수연은 번역이 ‘팀워크’라는 생각이 강한 친구다. 한국에 두 번이나 왔다. 많은 걸 물었고, 내 오케이를 바랐다. 열정에 감동했다. ‘이 단어와 저 단어, 두 개의 옵션이 있는데 넌 어떻게 생각하느냐’ 묻기에, ‘이 영어 단어의 뉘앙스를 모르겠다’고 했더니 풀어서 설명해주는 식이었다.”(유)

“형, 영어 과외를 받았네.”(오)

“시의 내러티브를 설명하다가 가족사, 옛날 짝사랑했던 사람 이야기까지 갔다. 너무 저 안쪽까지 가는 거지. 나중엔 ‘이것까지 말하는 건 아닌 것 같은데’ 싶어서 ‘모르겠다’고 둘러댄 적도 있다(웃음).”(유)

“나는 (내 번역자) 얼굴도 모르고 어디 계신지도 몰라.”(오)

-영역 시집 출간은 드문 일이다. 전미도서비평가협회상(2024) 시 부문에서 수상하고, 미국 예술 아카데미(AAAS) 회원으로도 선출된 김혜순 시인이 일으킨 나비 효과인가.

“나비가 아니라 코끼리 효과다. 한국 시가 주목받는다면 그 중심에는 김혜순 선생님이 우뚝 서 있다고 본다.”(오)

“2023년 겨울, 하우스 퓌어 포에지(Haus für Poesie)라는 독일 베를린의 문학 기관을 찾았다. 거기 기관장이 거만하기로 소문났다. 그런데 김혜순 시인을 소개하면서 ‘우리가 그토록 사랑하고 존경하는 김혜순’이라고 하더라. 베를린을 쓸어버렸다고 들었다.”(유)

지난달 말 서울 혜화동 시집서점 '위트앤시니컬'에서 시인 오은(왼쪽)과 유희경이 자신의 시집을 들고 장난스러운 포즈를 취했다. 이번에 영어로 번역·출간된 시집. /김지호 기자

-좋은 번역이란.

“최근 국립러시아인문학대 초청으로 러시아 모스크바를 방문했다. 첫날 교수님이 한식당에 데려가서 육개장을 사줬는데 시큼했다. 발사믹 식초를 넣었더라. 현지인들은 그게 맛있는 거다. 최고의 번역은 여기 있던 것을 고스란히 옮기는 게 아니라 현지 사정에 걸맞게 옮기는 일이다. 시에서의 말놀이가 번역됐을 때 미국 사람들도 ‘투 머치(too much)’라고 생각하지 않고 웃을 수 있다면 좋은 번역이 아닐까 한다.”(오)

“김혜순 시인과 최돈미 번역가의 관계가 이상적이라고 본다. 초창기엔 둘이 고생하면서 미국·캐나다 이 동네 저 동네 북토크 하러 다녔다고 한다. 좋은 번역은 관계이자, 상호 간에 이해하려는 노력의 과정이다. 내가 이번에 수연과 약소하게나마 경험한 어떤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에게 번역은 굉장히 문학적인 일이 됐다.”(유)

◇ 한국어 원문과 영역 비교

그래픽=조선디자인랩 권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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