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와 현실]잔혹하거나 자비롭거나

장문석 서울대 서양사학과 교수 2025. 7. 9. 2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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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은 세월의 삭풍을 견디고 오늘날에도 영감을 불러일으킨다. <군주론>에서 마키아벨리는 군주를 켄타우로스에 빗댄다. 켄타우로스란 신화 속 괴수로 상반신은 사람이고 하반신은 말이다. 군주도 인간과 짐승의 모습을 겸비한 존재라는 말일까? 군주는 지지자들뿐만 아니라 적대자들에게도 둘러싸인 채 자기 의지를 관철하려고 싸우는 존재다. 그런데 싸움에는 법에 의한 방법과 힘에 의한 방법이 있는바, 법은 인간의 것이고 힘은 짐승의 것이다. 군주가 켄타우로스에 비유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켄타우로스로서 군주는 어떤 때는 잔혹한 방법을, 다른 때는 자비로운 방법을 구사한다. 그러나 잔혹함과 자비로움을 분간하는 일은 의외로 쉽지 않다. 예컨대 체사레 보르자는 잔혹한 군주였지만, 잔혹함으로 로마냐에 평화를 가져왔다. 반면 피렌체는 잔혹하다는 평판을 피하려고 피스토이아를 방치해 이 도시의 파괴를 몰고 왔다. 그렇다면 잔혹한 쪽은 보르자인가, 피렌체인가? 결과적으로 보르자는 잔혹함으로 나라를 이롭게 했으므로 실은 자비로운 군주였지 않은가? 이를 형용모순의 수사법으로 자비로운 잔혹함 또는 잔혹한 자비로움이라고 표현할 수 있다.

마키아벨리는 잔혹함이 공공과 일반의 이해관계에 부합할 때에는 잔혹함을 옹호한다. 그는 어쭙잖게 자비로운 군주가 나라와 사회를 어지럽히는 것보다는 소수를 본보기로 처형하는 잔혹한 군주가 소수의 사적 이익에는 해롭지만 다수의 공적 이익에는 이롭다는 점에서 오히려 자비롭다는 역설을 제시한다. 이로부터 잔혹함이 정당화되는 하나의 조건이 도출된다. 잔혹함은 오직 공적이고 보편적인 것을 실현하는 수단으로 사용돼야 한다는 것이다.

게다가 잔혹함은 잔을 넘쳐서도 안 된다. 마키아벨리는 필요하다면 잔혹한 방법도 마다하지 않는 것이 정치라고 생각했지만, 그 잔혹함은 신중하게 통제된 방식으로 사용되어야 한다고 보았다. 군주가 잔혹하기만 하면 결국 사람들이 그에게서 등 돌리게 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잔혹한 방법을 조금씩 계속해서 쓰는 것이야말로 하책이고, 상책은 ‘단번에 몰아서’ 사용하는 것이다.

그런 사례를 다시 보르자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는 로마냐를 장악하고 심복인 레미로 데 오르코에게 통치를 맡겼다. 그러나 오르코는 난폭한 인물이어서 시민들의 원성을 샀다. 이에 보르자는 시민들의 마음을 달래면서도 이 지역을 완전히 장악하기 위해 잘 계산된 냉혹한 계획을 꾸몄다. 심복을 두 동강 내 나무 형틀과 피 묻은 칼과 함께 광장에 전시한 것이다. 시민들은 오르코가 응분의 처벌을 받은 데 만족하면서도 보르자의 잔혹함에 경악했다.

마키아벨리는 잔혹함이 국가 전체를 이롭게 할 때에 확실하되 신중한 방식으로 사용될 수 있다는 규칙을 제시하지만, 이보다 더 근본적인 원칙이 있음을 암시한다. 잔혹함 자체는 결코 덕이라고 할 수 없다는 것이다. 부하와 동료 시민을 속이거나 죽이는 행위를 어떻게 덕이라고 할 수 있겠느냐고 마키아벨리는 반문한다. 그렇듯 자비도 신의도 없는 방법은 권력을 가져다줄 수는 있겠지만 영광을 가져다줄 수는 없다는 것이다. 이게 핵심이 다.

정치의 목적은 권력을 획득하고 이를 통해 사익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공익을 실현해 국민의 신뢰를 받고 영광을 얻는 것이다. 힘과 법, 강제와 동의, 잔혹함과 자비로움도 그런 목적을 실현하기 위한 수단일 뿐이다. 수단은 그 자체가 좋거나 나쁜 것이 아니라 목적에 부합할 때는 좋은 것으로, 그렇지 않을 때는 나쁜 것으로 판정될 것이다. 이처럼 목적과 수단은 분리될 수 없다. 그렇다면 ‘좋은 정치’의 목적을 실현할 최적의 수단을 찾는 지도자에게 국민의 칭송과 불멸의 영광이 돌아갈 것이다. 그러니까 이렇게 해석할 수 있다. 권력의 기술자로 잘못 알려진 마키아벨리에게 권력은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영광을 위한 수단이라고.

장문석 서울대 서양사학과 교수

장문석 서울대 서양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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