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세자 곁 지키던 노송들, 이상기후 앞에 고개 떨구다
작년 폭설 이어 올여름 폭염까지
소나무들 꺾이고 가지 휘는 수난
숲 깊은 곳은 아직 손도 못댄 상태

‘사시사철 푸른 소나무’라는 말이 무색했다. 산책로 초입부터 부러진 가지가 드문드문 눈에 띄었다. 융릉 옆에 자리한 소나무 숲에 가까워지자 피해 흔적이 점점 뚜렷해졌다. 푸른 잎 대신 갈색으로 바랜 잎이 보였고, 줄기가 꺾인 채 그대로 방치돼 있었다.
9일 오전 화성시 안녕동의 융건릉에 자리한 소나무 숲.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라는 명칭이 어울리지 않게 이곳은 기후 위기의 상처를 고스란히 드러냈다. 지난해 한바탕 폭설이 내린 데 이어, 현재 폭염이 지나고 곧이어 찾아올 태풍에 융건릉 노송 관리에 대한 우려가 더욱 커지고 있다.
특히 반년 가까이 복구 작업이 지연되면서 기습적인 자연재해 발생 시 문화재 내 자연유산 관리 체계에 공백이 드러난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온다. 기후변화로 폭설과 폭염이 잦아진 상황에서 사계절 내내 잎이 달린 소나무는 특성상 기후 재해에 더 취약해 세심하고 체계적인 관리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지난해 11월 말, 융건릉 일대에 유례없는 ‘눈폭탄’이 떨어지며 시작됐다. 습기를 잔뜩 머금은 무거운 눈이 한꺼번에 쏟아지면서 소나무 600주 가량이 심한 손상을 입었고, 작은 손상까지 합하면 피해는 1천주 규모로 추산된다. 수습 여파로 한때 이곳 소나무 산책로 일부가 통제되기도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잎이 달린 채 겨울을 나는 상록수는 낙엽이 떨어지는 활엽수보다 눈과 바람에 취약하다. 실제 당시 느티나무나 전나무는 큰 피해 없이 겨울을 넘겼지만, 소나무는 줄기째 꺾이거나 가지가 휘는 피해가 속출했다. 노송이 우거진 융건릉 일대에 보다 세밀한 관리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현장을 찾은 시민들도 세계문화유산이라는 상징성과 어울리지 않는 모습에 아쉬움을 나타냈다. 수원시에서 온 홍모(60대)씨는 “역사적 가치가 있는 곳인 데다 입장료까지 받는 상황에서 관리를 더 신경 써야 하지 않나 싶다. 신속히 정비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소나무 재선충 방제 조치가 주기적으로 이뤄진 덕분에 병충해는 없었지만, 예상치 못한 폭설과 폭염, 태풍에 대응할 현장 관리 여건은 여전히 부족하다. 현재 복구 작업도 관람로 주변에 한정돼 있는 실정이다. 현장에서 만난 한 작업자는 “위험 요소가 있는 관람 구간부터 우선 가지치기를 했지만, 숲 깊은 곳은 아직 손도 못 댄 상태”라고 전했다.

융건릉을 관리하는 국가유산청 조선왕릉서부지구관리소는 관람로 주변 위험 수목에 대한 1·2차 가지치기를 마친 상태이며, 정비가 이뤄지지 않은 구간은 예산이 확보되는 대로 오는 11월 전까지 순차적으로 보완 작업을 마무리할 계획이다.
국가유산청 조선왕릉서부지구관리소 관계자는 “습설은 보통 눈과 달리 누적돼서 무겁기 때문에 피해가 컸다. 건릉 쪽 낙엽수림은 멀쩡했지만, 그 뒤편 융릉 쪽 소나무림은 피해가 심각했다”며 “현재 추가 예산 확보를 추진 중이며, 적정 시기가 되면 수목 조사를 거쳐 사업 발주에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유혜연 기자 pi@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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