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의 밥상]어수리 잔대 잡나물

경남일보 2025. 7. 9. 20:26
음성재생 설정 이동 통신망에서 음성 재생 시 데이터 요금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글자 수 10,000자 초과 시 일부만 음성으로 제공합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밤새 별을 보고 자란 나물들, 아삭아삭 잡담 같은 별맛난다
강원도 동해 태백에 들어서는 길, 공기가 다르다. 달다고 해야 할까. 신선하다. 맑다. 산으로 둘러싸여 있어 그럴 것이다. 매연이란 범접할 수 없는 곳이란 느낌이다. 강원도에 사는 사람들 수명은 수도권에 사는 사람보다 두 배는 갈 거라는 생각까지 들 정도다.

죽도록 맑은 공기를 마시고 산다는 건, 그만큼 몸이 깨끗하고 좋아진다는 거고, 몸속도 깔끔하다는 거다. 병원균이 움틀 틈을 주지 않는 거다. 그러니 사람들 표정은 얼마나 맑고 순수한가. 감자바우라는 별명이 붙기는 했지만, 그네들 마음만은 무디고 엉성하고 텁텁하지만, 순수하고 순진함은 따라갈 사람이 없을 거다. 지역마다 사람들을 부르는 특징이 있지만, 강원도는 그렇다. 나도 초등학교 1학년까지는 원주에서 살아 강원도 사람들의 특징을 어느 정도는 가지고 있다. 유년기를 보낸 곳이니 말이다.

태백 장터, 5월이 한참 무르익어 아까시나무꽃이 하얗게 치마폭을 벌리고 있는데, 산나물만큼은 아직 봄이다. 아무래도 강원도 산은 기온이 낮으니 이제 봄나물이 올라오고 있는 거다. 장터에서 파는 나물들은 다른 지방에서는 보기 힘든 것들이 많을 거라 내심 서너 가지는 구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니나 다를까. 어수리나물, 잔대 나물이 몇 집에서 보인다.

어수리야 임금이 좋아했다는 나물이라서 '거느릴 어(御)'가 들어가니 오죽 맛있고 고급 나물이냐 말이다. 나물에 임금을 뜻하는 말은 오직 어수리나물에만 들어가 있다고 여겨진다. 아무리 나물 이름을 찾아봐도 '어(御)'를 딴말은 없어 보이기 때문이기에 말이다.

골동품이건, 뭐건 왕이나 임금이 소유했다거나 먹었다거나 썼다는 것들은 모두가 비싸다. 귀하다. 왕은 하나였으니까. 최고였으니까. 그래서 아프리카 조각도 왕이 사용한 것이나 소유한 것들은 보통의 물건보다 말도 못 하게 비싸다.

어쨌건, 어수리나물은 비싸다. 물어보니 한 근에 만원이란다. 나물 만원이면 데치기 어려울 정도로 많은데, 양이 어느 정도냐 하면 양재기에 물을 끓이고 데치기 딱 좋은 양인 거다. 그러나 나물치고는 아주 비싼 거다. 돌미나리나 쑥이나 다른 봄나물들을 만 원 주고 샀다면 아마도 서너 배는 더 많았을 것이다.

어수리나물 옆에 잎도 잔잔하니 뭐냐고 물어보니 잔대란다. 잔대는 산삼 버금가는 뿌리식물인데, 이 순도 단맛과 아울러 약효는 기막힐 거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가 없다. 산에서 조사하다 잔대 한 뿌리 캐서 씹어 먹으면 기운이 순식간에 벌떡 솟아났으니 말이다. 이런 잔대도 한 근에 만 원이다. 얼마나 많은 잔대 순을 끊어와야 이 정도가 될까 싶다. 이렇게 물어가며, 양이 많다 적다 주인과의 오고 가는 말속에 옆에서 한마디 거드는 장사치가 있다.

"아무래도 나물은 잡나물이 최고지!"

그 말에 고개를 돌렸다. 잡나물이라니? 이 나물 저 나물 섞여 있는 나물을 말하는 것일 텐데, 혹시 아나. 잡나물이라는 풀 나물이 있는 건지. 물어보니 이 나물 저 나물 맛난 나물들을 마구잡이로 따 구분해 놓지 않은 나물이다. 오호. 보니 어수리, 잔대, 취 등 봄나물이라는 봄나물은 다 있는 것 같다. 이게 정말 자연산 강원도 나물이라는 생각에 또 물어봤다. 한 근에 얼마냐고. 이것도 만원이다. 어수리와 잔대에 잡나물이 한 가득이다.


물을 끓이는 동안 나물에 뭔가 나뭇잎이나 솔잎이 들어가지 않았을까 가리려다 그만두었다. 워낙 깔끔하게 땄다. 가릴 것이 없다. 줄기가 도톰하니 봄나물치고는 두껍기는 하지만, 연두색이 보증하니 이삼 분만 데쳐도 부드럽기 그지없을 것 같다. 어수리를 데치고 찬물로 두어 번 씻어주고, 그 사이 잔대를 데치고. 찬물로 씻고 가리는 동안 잡나물을 데치고. 순서대로 데치고 씻고 헹구니 양이 제법이다.

한 번에 다 무쳤다간 맛 죽는다고 하여, 한번 먹을 양만 남기고 물을 적당히 머금은 나물을 봉지에 담아 냉동실로 직행시켰다. 그래야 귀한 임금 나물도 잔대도 생각났을 때 꺼내 녹여 무쳐 먹을 수 있을 테니까 말이다. 어수리나 잔대 맛을 모르는 것은 아니나 곰곰 생각하다 그저 잡나물처럼 모두 한꺼번에 무치는 게 낫다 싶었다.

뭐든지 '잡'이라는 게 들어가면 맛나지 않냐 말이다. 잡채, 잡탕밥, 잡버섯 탕 등 '잡'이란 게 섞이고 바닥이고 순수하지 않다는 의미가 저변에 깔려 있지만, 요리에서 '잡'이란 맛의 종합세트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제상에 올렸던 음식으로 끓인 거지 탕도 잡탕 아닌가. 회 썰어 먹고 끓인 매운탕도 잡고기 탕이고. 굳이 잡채나 잡탕밥을 꺼내지 않아도 말이다. '잡'이 들어가는 음식은 이 맛 저 맛이 교묘하게 어우러져 깊은 맛을 내기에 말이다. 미국이 왜 세계 1위 국가인가? 나는 그 이유를 인브리딩이 잘 된 인종종합국가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서로가 융합하고 섞여 더 좋은 상황을 만들기 때문이다. 순수 혈통이라면 어떤가. 유전적 장애가 있는 이들이 얼마나 많은가. 순수라는 것만 찾다가 그리된 거 아닌가. 어쨌건 나물도 섞이고 어우러져야 맛이 좋아진다. 제 나름의 맛들이 잘 어우러져 기막힌 맛을 선사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가 코딩과 조합을 좋아한다. 섞여야 발전이 있고, 섞여야 기회가 생기는 법이다.

된장은 조금만 넣고, 멸치육수도 아주 조금, 참기름과 들깻가루 조금 넣고 조물조물 무쳤다. 이 나물 저 나물이 입안에서 고소함을 덧대며 아우성친다. 딱 이 맛인지를 맛보다가는 저 맛도 느껴진다. 그게 여러 번 씹힘이라는 과정을 겪으며 고소한 맛으로 춤춘다. 이게 조화다. 이게 섞임의 맛이다. 잡나물이라는 게 진정 맛난 나물이라는 장사치의 말에 엄지척이 올라가지 않을 수 없다.

내가 쓴 '별이 키우는 것들'이라는 시다. 산에는 밤이면 나물들은 귀를 쫑긋 세우고 별들이 무슨 말들을 하는지 들으려 애쓴다. 별이 지고 새벽이 오면 나물들이 아직 들릴 것 같은 별들의 말을 모으려 귀를 쫑긋 세우고 있는 걸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맑은 밤, 별들이 하는 말을 모아 나물은 속으로 맛이란 영양분을 쟁여놓는 거다. 봄나물이 맛난 이유가 거기에 있다. 봄나물을 씹을 때 아삭거리는 소리가 들릴 거다. 그게 밤새 별들이 나물들에 하고 싶은 말이었다는 것을. 그 소리가 무슨 말인지는 그걸 먹는 사람이 해석해야 하는 일이고. 아마도 좋은 말일 거다. 희망적인 말일 거다. 왜냐면 봄나물의 그 싱싱함과 상큼함에 이미 감동하고 있었기에 말이다.

방동사니, 짚신나물, 며느리밥풀꽃, 꼭두서니, 여뀌, 금강초롱, 청미래덩굴, 뚱딴지, 구절초, 인동덩굴, 어수리, 잔대, 취,…… 별이 키우는 풀들 그리고 나무들 노각나무, 함박꽃나무, 국수나무, 잣나무, 쪽동백, 때죽나무, 누리장나무, 오동나무,…… 별이 키우는 사랑, 그리고 너와 나
 
 
 

Copyright © 경남일보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