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아리] 죽음의 중지, 그럼에도 두려운 미래
AI가 노화 정복할 미래에는 흔해질 풍경
고용·연금 문제 해소 없이 완전할 수 없어
편집자주
매주 수요일과 금요일 선보이는 칼럼 '메아리'는 <한국일보> 논설위원과 편집국 데스크들의 울림 큰 생각을 담았습니다.

1941년생. 올해 84세인 미국 진보 진영의 거두 버니 샌더스. 조 바이든 전 대통령보다 한 살 많은 고령의 그는 그러나 트럼프의 집권 2기 이후 '반 과두정(Fight Oligarchy)' 운동을 누구보다 공격적으로 전개하며 노익장을 과시하고 있다. 부자 과세를 주창하며 기득권을 향한 날선 연설을 쏟아내는 그를 보기 위해 지난 4월 로스엔젤레스 집회엔 3만6,000여 명의 청중이 몰려들었다. 뉴욕타임스는 이런 샌더스를 "그저 머리가 (전보다) 조금 더 벗겨졌을 뿐, (대선 도전 때와) 이미지는 변함없다"고 평했다. '정치는 살아있는 생물'이라는 말이 가장 잘 어울릴 만큼 생명력으로 펄떡이는 미 정계에서 2025년 샌더스의 백발은 어느 청년보다 젊게 반짝이고 있다.
그가 노쇠한 다른 정치인들 사이에서 돋보이는 이유는 무엇보다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코르테즈같은 젊은 정치인과의 협업이다. 2018년 당선 후 줄곧 뉴욕주 연방의원 자리를 지켜온 오카시오코르테즈. 그는 샌더스와 함께 최근 뉴욕시장 유력 후보로 떠오른 조란 맘다니의 멘토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나이를 잊은 샌더스가 물려주는 정치 역량이 어느새 중견이 된 오카시오코르테즈를 넘어 30대 신예 맘다니로 흘러들어가는 것이다. 87세가 되는 2028년 대선에도 출마를 선언한 샌더스. 그가 제2, 제3의 맘다니를 완성하고 끝내 오랜 대망을 이루는 세상을 볼 수 있을까.
빠르게 인간의 한계를 줄여가는 과학발전 속도를 감안하자면, 올해보다 '조금 더 벗겨진 머리'만큼만 늙은 샌더스의 활약을 2028년에도 목격하는 게 불가능하다고 할 수는 없다. 인공지능(AI)과 나노 및 바이오기술의 융합으로 최근 대형제약사들은 신약개발 목표를 '항노화'까지 끌어올리는 추세다. 암 등 질병을 넘어 노화마저 치료의 대상으로 겨누고 있다는 뜻이다. 최근 펴낸 '마침내 특이점이 시작된다'에서 자신이 20년 전 예견했던 특이점(인공지능이 인간의 능력을 뛰어넘는 시점)의 시야권에 도달했다고 밝힌 레이 커즈와일. 구글 AI 엔지니어링을 책임졌던 그는 책에서 나노봇의 인체 내 치료가 이뤄질 2030년대 사실상 인류는 불멸의 입구에 접어든다고 내다본다. 이 수준에 도달하면 나이가 들수록 오히려 여명이 늘어나는 이른바 '수명 탈출'이 이론적으로 가능하다는 분석이다. 물론 미래학자들 가운데 대표적인 AI 낙관주의자의 전망임을 헤아려야겠지만, 2020년 AI 덕분으로 불과 63일 만에 코로나19 백신 임상을 출발시킨 과학의 저력을 굳이 저평가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만약 특이점을 넘어선 AI가 이러한 낙관대로 노화에 급제동을 걸고, 덕분에 고령에도 존재감을 떨치는 수많은 '샌더스'들이 활약한다면, 그래서 끝내 죽음을 극복하는 내일이 가까워 온다면 세상의 무게는 홀가분해질까. 포르투갈 작가 주제 사라마구가 소설 '죽음의 중지'에서 그려낸 죽음이 멈춰선 세계는 안타깝게도 지상 낙원은커녕 아수라장에 가깝다. 누군가 죽어야 자리가 비는 각종 시설의 과밀, 연금 수급 문제와 지옥처럼 경쟁해야 할 일자리 부족 등. 행여나 인류가 노화를 정복해 신의 영역으로 접어든다 한들, 정작 인간의 영역에서 풀어야 할 난제가 발목을 잡는다면 끝내 행복해질 수 없다고 말하는 우울한 우화와 다름없다. AI가 가져다줄 늙지 않는 내일이 선물처럼 펼쳐진다 한들, 지금의 고용안정 및 정년 연장에 대한 고민과 바닥을 드러내는 연금 재정 문제를 해소할 묘책이 선행하지 않는다면 그 미래는 역시나 두려울 뿐이다. 그래서 아무리 과학이 발전한다 해도 정치의 역할은 강조하고 또 강조해도 부족하지 않다.
양홍주 논설위원 yangho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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