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 전 언론사 풍경 담은 ‘동아일보 사보’ [한국근대문학관 컬렉션·(7)]

박경호 2025. 7. 9. 1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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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문화재단 공동기획>1930년대 기자들 면면 엿볼 귀중한 자료

1920년 창간 14년 동안 440곳으로 사세 확장
당시 조직 구성과 직원 사진·나이 학력 기재
신년사·근무기·회식 사진·관혼상제 등 실려

동아일보 사보 창간호 1면. 2025.7.3 /박경호기자 pkhh@kyeongin.com

한국근대문학관이 소장한 1930년대 ‘동아일보 사보(社報·사내 소식지)’는 당대 언론사의 운영 상황이나 기자들의 면면을 살필 수 있는 귀중한 자료다. 현재 온라인에서 손쉽게 볼 수 있는 같은 시기의 발행 신문에선 찾을 수 없는 언론사의 속사정이 고스란히 담겼다.

한국근대문학관은 1933년 10월15일 발행된 동아일보 사보 창간호를 비롯해 제2호(1934년 2월1일 발행), 제3호(1934년 9월1일 발행), 제4호(1935년 3월15일 발행) 등 4점을 보유하고 있다. 창간호를 보면 사보 편집·발행인은 당시 동아일보 사장 송진우(1890~1945)였다. 국배판(210㎜×297㎜)보다 약간 작은 판형에 8면으로 발행됐다. 사보의 제호는 동아일보의 기존 제호 디자인을 유지하면서 ‘사보’라는 글자가 더 붙어 세로 길이가 늘어난 모양이다.

동아일보가 1933년 사보를 창간한 이유는 무엇일까. 당시 사장 겸 편집국장을 맡고 있던 송진우가 사보 창간호에 실은 창간사를 보면, 1920년 4월1일 동아일보 창간 이래 14년 동안 440여 곳의 지국·분국으로 사세를 확장하면서 늘어난 본사와 지·분국 직원 간 소통을 위한 ‘고지판’(告知板)인 동시에 ‘토의장’(討議場)이자 ‘담화실’(談話室) 역할을 바랐다.

사보 창간호 2면에는 동아일보 지·분국이 창간 해인 1920년부터 1933년까지 얼마나 늘었는지 한반도 지도 그림으로 보여주기도 했다. 해당 시기 지국은 33개소에서 256개소로, 분국은 87개소에서 158개소로 증가했다. 그림을 보면 현 북한의 서북 지방까지도 활발히 진출했음을 알 수 있다. 사보에는 사장의 신년사, 기자들이 쓴 근무기, 지·분국 소식, 회식 현장 사진, 직원들의 동정이나 관혼상제, 사가(社歌) 악보 등이 실렸다.

동아일보 사보 창간호에 실린 ‘본사사원명록’(6~7면). 2025.7.3 /박경호기자 pkhh@kyeongin.com


특히 창간호에는 ‘1933년 10월 현재 본사 사원명록’이 게재됐는데, 당시 동아일보 조직 구성과 직원들의 사진, 나이, 학력 등을 확인할 수 있다. 1933년 동아일보 편집국은 현재의 종합일간지 조직 구성과 유사하다. 편집국장 아래 편집국차장(설의식), 정치부(부장 김장환), 경제부(부장 고재욱), 사회부(부장 현진건), 지방부(부장 박찬희), 조사부(부장 이여성), 학예부(부장 서항석) 등으로 구성돼 있었다.

기자 수는 정치부 4명, 경제부 기자 3명, 사회부 9명, 지방부 2명, 학예부 2명 등이다. 신문사 편집국에서 사건·사고 등을 취재하는 사회부 기자 수가 가장 많은 건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도쿄지국, 평양지국, 인천지국의 지국장들도 사원명록에 포함돼 있다. 이때 기자들의 학력을 보면 상당수 도쿄, 베이징, 미국 등지에서 대학을 나온 엘리트 지식인이었다. 사장 송진우가 44세였고, 부장을 포함한 대다수 기자는 20~30대 청년이기도 했다.

직원들의 소식을 재미있게 전하는 ‘인사만초’(人事漫草)란 코너도 눈에 띈다. 한 꼭지를 소개하자면, ‘노총각 김장환 군은 재원(才媛) 김명순 양과 10월7일 본사 3층 홀에서 성대한 결혼식을 거행. 우리 회사의 몽달당(黨) 중 후임은 누구?’라는 글이 있다. 노총각 직원의 결혼 소식을 전하면서 ‘몽달귀신’을 빗댄 ‘몽달당’ 중 누가 다음으로 결혼할 것인지 너스레를 떠는 내용이다.

동아일보 사보는 언제 몇 호로 종간됐는지 아직 알려지지 않았다. 일제 당국의 정간 처분과 속간을 반복하던 동아일보는 1940년 8월10일 강제로 폐간됐다가 1945년 12월 복간된다. 1930년대 동아일보 사보는 희소성과 함께 언론사 연구 등 학술적 가치 또한 클 것으로 판단된다.



/박경호 기자 pkhh@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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