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했습니다"…서울시가 백수들의 '회사놀이'를 지원하는 이유

정세진 기자 2025. 7. 9. 1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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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직·구직 청년 등 모인 '니트 컴퍼니'…또래 청년들과 교류하며 유대감 형성
서울시 '약자와의 동행 사업' 통해 오프라인 공간 지원
박은미 니트생활자 대표 "일시적 지원으론 변화 만들기 어려워"
니트컴퍼니 사원들의 일일 업무 보고. /사진=니트 컴퍼니 제공


"우리 회사에서 어떤 업무 하세요?"
"저는 걷기요"
"저는 뜨개질이요"

9일 오후 2시. 서울 중구 퇴계로의 서울창업카페 충무로점에 20여명의 청년들이 모였다. 이들은 모두 '백수'이자, 사단법인 니트 생활자가 서울시와 중구청의 지원을 받아 운영하는 니트컴퍼니의 사원들이다. 이날은 니트 컴퍼니 21기 첫 워크숍을 하는 날이다.

이번 기수 참가자는 35명. 고립기간 3년을 넘긴 청년이 8명, 2년을 넘긴 청년 15명이 참가했다. 고립기간 1년을 넘긴 참가자가 전체의 60%다. 보건복지부 분류 기준에 따르면 이들 중 상당수는 고립·은둔 청년에 해당한다. 이곳엔 일본 드라마나 영화에 나오는 '히키코모리(은둔형 외톨이)'의 모습을 한 청년은 없다. 박은미 니트생활자 대표는 "은둔 청년이라고 써 붙이고 다니는 사람은 없다"며 "방이나 집에서 고립된 상태에 있어도 밖에서 사람을 만날 땐 알 수 없는 경우가 대다수"라고 말했다. 서울시에 따르면 서울 권역 내 고립·은둔 청년은 서울 청년인구 중 4.5%에 해당하는 약 13만명에 달한다.

박 대표는 "우리는 회사놀이를 하기 위해 모인 무업청년들"이라고 말한다. 무업청년은 니트 컴퍼니에서 취직하지 않은 청년을 부르는 말이다. 중구청이 서울시 약자와의 동행 자치구 공모사업에 지원해 니트컴퍼니에 6000만원의 예산을 지원했다. 이 예산을 활용해 니트컴퍼니 중구점은 올 연말까지 3개월 단위로 두 차례 '사원'을 모집한다.

니트컴퍼니 중구점 공동팀장 장현진씨가 9일 오후 워크숍을 진행하고 있다. /사진=정세진 기자


니트컴퍼니 중구점 팀장인 강선주씨(35)는 "니트컴퍼니 세계관을 먼저 이해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니트컴퍼니 세계관에서 프로그램 참여자들은 모두 사원이다. 모든 사원은 별명을 사용하고 실명과 나이는 공개하지 않는다. 사원은 매일 네이버 밴드에 자신이 선택한 일일업무를 보고해야 한다. 이번 기수 참가자인 무지개 사원은 양치와 세수가 일일업무다. 포케 사원은 일상을 사진으로 찍어 기록하는 것이 업무다. 운동이나 어학공부를 업무로 설정하는 사원도 많다.

모든 사원은 오전 9시에 '출근보고'를 오후 6시에는 '퇴근보고'도 해야 한다. 주 5일 근무하고 주말은 쉰다. 강 팀장은 "퇴근하지 않은 사원에게는 전화를 해서 '왜 퇴근 안 하셨냐'고 묻는다"며 "이런 확인이 사원들이 일상을 유지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장난 같아 보이지만 니트컴퍼니 회사 생활의 효과는 확실하다고 말한다. 이 회사의 신입 사원들은 대다수가 정신적으로 지쳐 있다. 무직 기간이 길어지며 자존감이 떨어진 탓이다. 이들이 작은 성취를 반복할 수 있게 돕는다. 성취를 경험한 청년들은 타인과 교류하고 싶다는 의지가 생긴다고 한다. 니트컴퍼니 내부에서 산책하기, 독서 모임 등 작은 프로젝트를 시도하면서 점차 취업을 하거나 책을 쓰거나 인스타그램에 웹툰을 연재하기도 한다.

박 대표는 "양치 업무 같은 작은 일에서 시작해 빠르면 3개월에서 2년 정도 변화의 시간이 필요하다"며 "낮과밤이 바뀌고 타인을 만나는 것을 꺼려하며 자신을 믿지 못했던 청년들이 변화하기 위해선 지속적인 관계망 형성이 필요하다"고 했다. 니트컴퍼니의 기수별 신입 사원 활동 기간은 3개월이다. 사원들은 3~4기수를 연이어 참여하기도 한다. 2021년 시작한 니트컴퍼니의 누적 사원은 현재 1600명에 이른다.

중구점 공동팀장 강선주씨가 워크숍을 진행하고 있다. /사진=정세진 기자


니트컴퍼니 중구점 공동팀장 장현진씨(34)는 "니트컴퍼니 커뮤니티안에 있다는 것 자체로 동료가 되고 호의를 가지고 대해주는 문화가 있다"며 "이 안에서 여러 모임을 하면서 마음속에 회복력 같은 게 생겼다"고 말했다.

중구점 공동팀장 강선주씨는 "서로 나이도 모르고 어떤 일을 했던 사람인지도 모르는데 니트컴퍼니 안에서 별명만 알아도 관계맺고 동료가 될 수 있다는 게 신기하고 좋았다"며 "같은 업무를 하지 않아도 회사라는 세계관 안에 있으니까 동료라는 표현이 자연스럽고 익숙하다"고 설명했다. 중구점을 운영하는 두 팀장도 처음에는 니트컴퍼니 사원이었다. 현재는 사단법인 니트 생활자의 정식 직원으로 입사해 니트컴퍼티 중구점 팀장을 맡아 운영하고 있다 .

사원들의 만족도가 높지만 니트컴퍼니는 수익을 낼 수 없는 탓에 연속성을 보장하기 어렵다. 중구청의 지원으로 매주 워크숍을 진행할 수 있는 공간도 얻었지만 올 연말이면 계약이 끝난다. 내년엔 중구청의 사업 계획에 따라 지원이 끊길 수도 있다. 지원을 받지 못하면 민간후원으로 운영해야 한다.

백 대표는 "고립·은둔 청년이 문제가 아니라 학교를 졸업하고 취직하지 못하면 속할 곳이 없어지는 구조 자체가 문제"라며 "이들이 언제라도 속해서 서로 연결될 수 있다는 공간을 마련해주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세진 기자 sejin@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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