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의 시간[유희경의 시:선(詩:選)]

2025. 7. 9. 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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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시작 오 분 전.

작가, 연출, 배우, 스태프들이 한데 모여 서먹한 가운데 인사를 나눈 상견례를 시작으로 두 달 가까이, 연극이 만들어져 가는 전 과정을 지켜보았다.

암전이 있은 뒤, 극장 내 모든 것은 전혀 다른 시간, 다른 공간, 다른 공기, 그리고 다른 차원 속에 편입된다.

배우가 무대 한 귀퉁이에 서서 이 이야기의 마지막을 암시할 때 다시 서서히 암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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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어나고, 사라지고/ 들이켜고, 내뱉고/ 넘어지고, 달리고/ 걷고, 눕고, 엎드리고, 무릎 꿇고/ 그리고,/ 우리는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모든 것을 함께한다/ 그리고,/ 우리는 영영 오지 않을/ 다음의 삶을/ 계속 찾아 헤매고/ 그리고,/ 계속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안다

- 심보선 ‘그리고’(시집 ‘네가 봄에 써야지 속으로 생각했던’)

연극 시작 오 분 전. 객석은 크고 작은 소리로 가득해진다. 극의 내용을 암시하는 음악이 흐르는 중에 소곤대는 소리, 헛기침 소리, 숨죽여 웃는 소리. 설렘과 기대가 뒤섞인 조바심이 만들어내는 이 간지러움은 암전 직전 절정에 이른다. 나는 연극의 모든 과정에서 이 순간을 가장 사랑한다.

작가, 연출, 배우, 스태프들이 한데 모여 서먹한 가운데 인사를 나눈 상견례를 시작으로 두 달 가까이, 연극이 만들어져 가는 전 과정을 지켜보았다. 그사이 모든 수고는 어쩌면 바로 이 순간을 위한 것일지도 모른다. 암전, 어쩌면 단절. 내가 영위하는 일상과의 일시적인 작별. 암전이 있은 뒤, 극장 내 모든 것은 전혀 다른 시간, 다른 공간, 다른 공기, 그리고 다른 차원 속에 편입된다. 일종의 ‘다시-태어남’이다. 무대 위의 배우도, 객석의 관객과 연출과 작가도 오퍼실에 앉아 있는 스태프들도 새로운 생을 살아‘본’다. 몰입이 가져다준 웃음을 터뜨리고 눈물을 흘리면서. 감정의 정화, 이른바 ‘카타르시스’를 향해 나아간다. 나는 내가 쓴 글이 원고 위 활자를 벗고 대신 몸을 얻고 마음을 얻는 과정을 재확인하면서 가만히 놀란다. 내가 쓴 시와 달리 저것은 누구의 것도 아니다. 동시에 모두의 것이다. 그간의 마음고생이 기꺼이 녹아내리는 순간.

이윽고 연극은 막바지에 이른다. 배우가 무대 한 귀퉁이에 서서 이 이야기의 마지막을 암시할 때 다시 서서히 암전. 무대와 객석에는 또 잠시 침묵이 흐른다. 이제 우리는 우리의 삶, 공연을 보기 전 ‘나 자신’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리고’의 시간이다. 객석이 밝아진다. 박수가 터져 나온다.

시인·서점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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