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의 내란, 한 번은 울었고 한 번은 웃었다 [새로 나온 책]

시사IN 편집국 2025. 7. 9. 0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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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IN〉 기자들이 직접 선정한 이 주의 신간. 출판사 보도 자료에 의존하지 않고 기자들이 꽂힌 한 문장.

두 번의 계엄령 사이에서

김명인 지음, 돌베개 펴냄

“스물한 살의 내란 때에 나는 울었고, 예순여섯 살의 내란 때에 나는 웃었다.”

문학비평가인 저자는 20대 초반인 1980년 ‘무림사건’ 주동자로 투옥됐다. 교내 반정부 시위가 공안 사건이 되었다. 계엄법·반공법 위반죄였다. 2020년 재심에서 무죄판결을 받았는데, 변호를 맡은 이명춘 변호사가 ‘무림사건’에 대한 보고서를 쓰길 권했다. 저자는 자전적 기록과 사회사적 기록을 결합해 40년 동안 한국 사회의 변화를 개인 생애의 굴곡 안에서 재해석하기로 했다. 집필하면서 그는 성년 이후 40년 생애가 ‘낭만적 우울로 채색된 어두운 풍경’이라고 느꼈다. 그런데 집필 막바지에 12·3 내란을 맞이하며 달라졌다. 20대 초반에 겪은 계엄령에서 시작된 우울이 2024년 계엄령에 맞선 젊은 시민들의 놀라운 투쟁을 지켜보며 씻은 듯 사라졌다고 말한다.

 

팔레스타인

조 사코 지음, 함규진 옮김, 휴머니스트 펴냄

“돌을 던져서 군인들을 해치우기 어렵다는 건 알고 있죠. 하지만 우리 속에 뭔가 응어리가 있어요. 우리는 그 응어리를 그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거죠.”

미국의 언론인이자 만화가 조 사코가 1991~1992년 이스라엘 점령하 팔레스타인의 웨스트뱅크와 가자지구를 방문해 보고 들은 이야기를 바탕으로 그려낸 작품이다. 이번에 개정판이 출간되었다. 만화 저널리즘의 선구적 작품으로 일컬어진다. 팔레스타인·이스라엘 분쟁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저자는 사실적이고도 담담한 묘사로 팔레스타인에서의 삶과 죽음의 장면들을 포착했다. 익살스러운 그림 속에서 전쟁과 폭력에 대한 예리한 통찰이 번득인다. 억압 속에서도 꺾이지 않는 인간의 의지에 주목한다. 슬프게도 작가가 목격한 팔레스타인의 ‘응어리’는 여전히 해소되지 않았다. 외면하지 않고 직시하는 것이야말로 이 책의 첫째가는 미덕이다.

 

전쟁과 디자인

마쓰다 유키마사 지음, 조지혜 옮김, 교유서가 펴냄

“전쟁에 지성을 구해봐야 소용이 없다.”

1917년 러시아혁명 당시 공산주의 진영은 붉은색을 상징으로 사용했다. 그리고 100년이 더 지난 2022년 2월, 러시아는 우크라이나를 침공했다. ‘푸틴 전쟁’은 흰색·파란색·붉은색의 러시아 국기와 파란색·노란색의 우크라이나 국기가 서로 얽혀 어지럽게 펄럭이는 장면을 ‘프로파간다’로 이용했다. 한편, 아시아의 불교 사원에서 사용되는 기호인 ‘만(卍)’자를 뒤집어 기울인 듯한 하켄크로이츠는 네오 나치를 대표하는 상징이었다. 히틀러는 하켄크로이츠를 45도 기울여 붉은 바탕 가운데의 흰 원 속에 검은색으로 배치함으로써 단순한 기호를 나치의 문장(紋章)이자 브랜드로 만드는 데 성공했다. 우리에게 익숙한 기호와 상징 이면에 담긴 역사적·사회적 맥락을 살피다 보면, “디자인에는 죄가 없지만, 그만한 힘이 있다”라는 저자의 말을 이해하게 된다.

 

이다의 도시관찰일기

이다 지음, 반비 펴냄

“관찰하면 관심이 생긴다. 관심이 생기면 이해하고 싶어진다. 그렇게 내가 존재하는 이 세상을 조금씩 알아가고 싶다.”

자연을 관찰하던 일러스트레이터 이다가 이번에는 도시를 걷는다. 삭막하다고 여겼던 공간이 그의 시선 아래에서는 의외로 웃기고, 귀여우며, 무엇보다 살아 있다. 분노의 온도가 제각각인 경고문, 낯선 이의 쉼을 허락하는 이타적 화분 등 무심코 지나쳤던 것들이 표정을 드러낸다. 책의 마지막에는 ‘도시에서 관찰할 수 있는 것들’이 적혀 있다. 7월에는 배롱나무꽃이 피고, 매미 허물이 나무껍질에 붙는다고 한다. 아직 그게 어떤 모습인지 모르지만, 이달엔 꼭 찾아볼 생각이다. 사람이 변하려면 환경을 바꾸라고들 한다. 하지만 환경을 바꿀 수 없다면? 시선을 바꾸는 것만으로도 도시는 다시 사랑스러워진다. 이 책은 조용하고 유쾌한 실천을 건넨다.

 

안녕이라 그랬어

김애란 지음, 문학동네 펴냄

“우리가 정말 상실한 건 결국 좋은 이웃이 될 수 있고, 또 될지 몰랐던 우리 자신이었다는 뼈아픈 자각 때문이었다.”

〈바깥은 여름〉 이후 8년 만이다. ‘한국인’임을 기쁘게 하는 김애란 소설가가 단편소설집을 냈다. 이번 책에서는 인물들이 누군가의 공간을 방문하며 이야기가 펼쳐진다. 주인공들은 집주인의 미적 품격을 느끼게 하는 공간에 초대되거나, ‘생애 처음 누리는 사치’로 해외의 단독주택에 체류한다. 부동산 가격 폭등으로 전셋집을 옮겨야 하는 ‘나’가 어린 나이에 자가를 가진 이웃집을 방문하고, 회사를 관둔 이가 모든 돈을 전부 털어 연 책방에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타인의 공간을 방문하는 일은 과연 타인을 이해하는 길이 될 수 있을까. 단편 일곱 편으로 ‘안녕’을 묻는 작가는 이전보다 조금 더 서늘하고 비정하다. 인간다움을 포기하고 또 포기하지 않으려는 여러 인간상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그의 역량이 견고하게 드러난다.

 

헬터 스켈터

빈센트 부글리오시 외 지음, 김현우 옮김, 글항아리 펴냄

“다중 살인, 피해자들은 부유한 백인, 믿을 수 없을 만큼 야만적.”

일본에서 ‘좌파’를 몰락시킨 사건은 1970년대 초반 연합적군(連合赤軍)이 일으킨 ‘동지(同志)들에 대한 집단 폭행 살인 및 아사마 산장 농성’이었다. 미국에선 ‘카운터컬처(counterculture:지배문화에 대한 반대)’ 히피 집단인 ‘맨슨 패밀리’가 1969년 로만 폴란스키 감독의 자택을 습격해서 유명 여배우 샤론 테이트 등을 살해한 사건이 ‘좌파’에 대한 불신과 혐오를 부추겼다. 담당 검사(빈센트 부글리오시)가 쓴 이 책은 사건 발생에서 수사, 법정 공방, 최종 판결까지를 시간순으로 꼼꼼하게 서술한 일종의 연대기다. 범죄물이라기보다 당대 최전성기를 누렸던 미국 사회를 성찰하겠다는 채비를 갖추면 더욱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 ‘헬터 스켈터’는 인종 전쟁을 선동해 사회를 전복하려 했던 맨슨 집단의 구호다.

시사IN 편집국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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