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의대 입학정원 증원에 따른 의료대란 500일을 보내며

윤석열 정부에서 느닷없이 추진한 의대 입학정원 2000명 증원에 따른 의료대란이 이제 500일이 지났다. 평범한 의사인 필자도 예견할 수 있었던 부작용이 발생하고 있는데도, 수십 년 동안 의료정책을 다루었던 전문가들이나 정부 관료들이 분쟁이 일어날 것을 예견하지 못하고, 아무런 해결책도 제시하지 못하며, 또 책임지는 사람도 없이 500일이 넘도록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있는 현 상황이 무척 안타깝다. 새로 취임한 이재명 대통령께서도 가장 풀기 어려운 문제라고 실토하고 있는 것을 보며, 언제쯤 정상화될까 한숨만 나온다.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하는데 정치 초년병인 윤 대통령이 판도라의 상자를 열어젖히니 50년 가까이 누적된 우리나라 의료보험제도의 문제점들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그동안 여러 번 정부의 약속이 지켜지지 않아 정부의 신뢰가 땅에 떨어진 상태에서, 우리나라 의료를 더 망칠 것이 분명한 정책에 의료계가 반발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었다. 우리나라 의료의 문제점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국민들께서는 처음에는 밥그릇 때문이라는 정부의 발표를 곧이곧대로 믿어 지지율이 상승하였으나, 이내 이 정책이 전혀 이론적 근거나 배경이 없이 이뤄진 것이라는 것이 알려지자 지지율은 곧바로 떨어져 정권교체라는 최악의 결과로 끝났다. 아직도 대다수 국민들은 의대 입학정원이 예전대로 되돌려졌는데도 전공의들이나 학생들이 복귀하지 않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문제는 우리나라에서 필수의료의 붕괴가 시작된 지 5년이 지났지만 정부나 정치권에서는 그 심각성을 전혀 느끼지 못했다는 것이다. 물론 여기에는 의료계의 책임도 없다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의료계의 의견이 정부나 정치권에서 계속 무시되어 의료계의 불만이 쌓이다 보니 의대 입학정원 증원이라는 불쏘시개에 불이 붙자 대형 산불로 진화한 것이다. 이것을 산등성이에 자그마한 불이 난 것으로 생각하고 안이하게 대처하는 바람에 대형 산불로 번지게 된 것이다.
지금은 무슨 수를 쓰더라도 예전의 의료생태계로 돌아가기는 불가능한 상황이 되었으며 그 피해는 15년 이상 고스란히 국민들이 떠안게 되었다.
그중 가장 중요한 것이 적어도 10년 이상 의학교육이 정상화될 수 없다는 것이다. 당장 내년부터 서남의대가 폐교될 때 기준으로 하면 절반 가까운 의대들이 의대평가에서 불합격 받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수십 년에 걸쳐 세계적 수준으로 올라선 우리나라 의학교육이 한 순간의 판단 실패로 인해 중진국 수준으로 떨어지게 되었다.
예를 들면 제주대 의과대학인 경우 정원은 40명인데 무리하면 70명까지 교육이 가능하다고 한다. 그런데 이 상태가 그 사이에 해결이 되지 않으면, 150명이라는 학생이 수업을 받아야 한다. 예과는 대부분 교양과목이니 다른 학교의 교실을 빌려서 하면 어찌어찌 해 나갈 수 있을 것이나, 본과에 들어가면 대부분 실습을 해야 하니 이게 불가능하다. 특히 해부 실습의 경우는 시체 한 구당 많아야 8명이 실습할 수 있는데 해부대도 모자라고 시체도 확보가 어려워 실습이 제대로 이뤄질 수 없다. 의학교육 중에서 가장 기초가 되는 해부 실습이 이렇게 되면 다른 실습은 불문가지다. 윤석열 정부에서는 이 학생들을 교육하기 위한 시설들을 새로 짓겠다고 하였으나 약속이 이뤄진 것은 없다고 알고 있다. 이 시설들을 짓는 것은 또 다른 문제를 야기한다. 몇 년이 지나면 의대 입학정원이 예전대로 돌아가니 쓸모없는 시설이 되기 마련이다.
이 학생들이 임상실습을 돌게 되면 이들을 지도할 교수나 전공의들이 턱없이 모자라고, 또 환자도 모자라 교육이 제대로 이뤄질 수가 없다. 이들을 교육할 교수들을 추가 모집할 경우 입학정원이 예전대로 환원되면 이들은 과잉 인력이 된다.
더 난감한 것은 이들이 의사가 되었을 때에 전공의 과정을 밟을 병원이 턱없이 모자라 대부분 의사들이 전공의 교육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면 우리나라 의료의 질은 결국 중진국 수준으로 떨어질 수밖에 없다. 이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들이 입게 될 것이다.
많은 학생들이 이 파동에 군의관으로 군역을 마치는 것을 포기하고 일반병으로 입대하였다. 군의관으로 가면 39개월을 근무해야 하는데 일반병으로 가면 18개월만 근무해도 되니 그 길을 택한 것이다. 내년까지는 지금 수련받는 것을 포기한 의사들로 군의관을 충당할 수 있으나 내후년부터는 의대를 졸업하는 학생들이 급감하고, 전공의 자원도 바닥나 군의관과 공보의 자원이 모자라는 현상이 발생하게 된다.
또 한 가지 중요한 문제는 이번 의료대란을 수습하는 과정에서 전공의 역할을 대신할 간호사들을 PA라는 제도를 통해 채용하였는데, 전공의들이 병원에 들어가도 이들을 그만두게 할 수 없으니 과거처럼 훈련받을 기회가 줄어든다는 것이다. 즉 훈련이 덜 된 전문의들이 양성된다는 것이다. 지금 전공의 숫자가 줄어드는 것이나 질이 떨어지는 것은 결국 얼마 지나지 않아서 우리나라 의료수준이 떨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국민들께서는 의대 입학정원 증원이 예전 수준으로 돌아왔으니 학생들이나 전공의들이 돌아 와야 하는 것 아닌가 하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러나 학생들 입장에서는 자신들의 정당한 요구 8가지 중 단 한 가지만 채택된 것이며, 그것도 내년에 한정된 것이라 언제 바뀔지 모른다는 것이다. 결국 아무것도 수용된 것 없이 상황은 더 악화됐는데, 백기 들고 돌아갈 수는 없다는 것이다. 가장 중요한 문제는 이번 사태의 핵심인 필수의료의 붕괴를 막을 방법이 제시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