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용적 시장주의, 단기성과의 유혹을 넘어서”

새롭게 출범한 이재명 정부는 국정철학으로 ‘실용적 시장주의’를 내세우고 있다. 이는 대선 과정과 취임사에서 일관되게 강조된 키워드로, 국민 통합과 경제 회복을 위한 현실적 해법으로 제시된 바 있다. 실용적 시장주의란 이념에 치우치지 않고 실질적 문제 해결에 집중하면서도, 시장의 자율성과 기능을 존중하는 정책 기조를 뜻한다. 이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통제하고 관리하는 정부가 아니라, 지원하고 격려하는 정부가 되겠다”고 선언하며, 민간의 창의적 활동을 극대화하기 위해 규제 시스템을 네거티브 방식으로 전환하겠다고 약속했다. 동시에 “규칙을 어겨 이익을 얻고, 규칙을 지켜 피해를 보는 일이 없도록 하겠다”며 시장 질서를 훼손하는 행위에 대해서는 엄정히 대응하겠다는 원칙도 분명히 했다.

실용적 시장주의는 우리 경제의 방향을 설정하는 데 매우 적절한 기조이지만, 이를 실제 정책으로 구현하는 일은 결코 간단하지 않다. 실용주의의 취지는 진영 논리를 넘어서 국민 이익과 객관적 성과를 기준으로 국정을 운영하겠다는 데 있다. 그 기준은 헌법에 있다. 헌법 제34조는 모든 국민이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를 갖는다고 규정하고 있으며, 국가는 사회보장과 사회복지의 증진은 물론, 여성·노인·장애인 등 취약계층의 복지 증진과 재해 예방 의무를 진다고 명시하고 있다. 실용주의는 이러한 헌법적 원칙을 바탕으로 이념적 선입견이 아닌 국민 삶의 개선과 국가 발전에 실질적으로 기여하는 정책을 지향해야 한다. 그러나 실용주의 역시 명확한 원칙과 판단 기준 없이는 자칫 임기응변식 대응이나 인기영합주의로 흐를 우려가 있다.
시장에 대한 ‘믿음’ 기반한 적절한 개입이 열쇳말
실용주의가 진정한 의미를 갖기 위해서는 이분법적 사고를 넘어서는 유연성이 요구된다. 사회문제는 흑백논리로 단순화할 수 없으며, 다양한 정책 수단이 공존할 때 더 나은 해법이 도출된다. 정책 선택은 흔히 0과 1의 선택처럼 보이지만, 현실은 그 사이에 있는 무수한 선택지들—예컨대 0.3이나 0.7과 같은 지점—중 하나를 택해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가령, ‘원전이냐 재생에너지냐’라는 양자택일의 문제가 아니라, 경제 발전을 위한 지속가능하고 안정적인 에너지 공급이라는 목표 아래, 양자의 균형을 조화롭게 추구하는 에너지 믹스 전략이 실용적 정책일 것이다.
시장주의는 이미 우리 헌법 제119조에 뚜렷이 규정돼 있다. 제1항은 “대한민국의 경제 질서는 개인과 기업의 경제상의 자유와 창의를 존중함을 기본으로 한다”고 선언하며 자유시장경제의 원칙을 천명한다. 제2항은 “국가는 균형 있는 국민경제의 성장 및 안정과 적정한 소득의 분배를 유지하고, 시장의 지배와 경제력의 남용을 방지하며, 경제주체 간의 조화를 통한 경제의 민주화를 위하여 경제에 관한 규제와 조정을 할 수 있다”고 하여 국가 개입의 조건을 명시하고 있다. 헌법재판소 역시 이를 “자유시장경제를 기본으로 하되 그에 수반되는 문제점을 교정하기 위한 사회적 시장경제질서”라고 해석한 바 있다. 즉, 시장의 자율과 창의를 최대한 보장하면서 정부는 필요한 경우에만 개입하고, 그 개입도 시장 기능을 보완하는 수준에 머물러야 한다는 의미다. 정부가 시장의 가격 결정 등에 인위적으로 개입하지 않고, 민간 주도의 경제활동을 뒷받침하여야 자원이 효율적으로 배분되는 경제원리를 지키는 것을 의미한다.
이때 시장에 맡긴다는 것이 곧 ‘방임’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현실 경제는 정보의 비대칭, 외부효과, 독과점 등 다양한 형태의 시장 실패 현상이 빈번하게 발생한다. 예컨대 부동산 시장에서는 매도자는 높은 가격을, 매수자는 낮은 가격을 원한다. 이 서로 다른 욕망이 만나는 지점에서 가격이 형성되며, 이것이 시장 원리다. 그러나 한쪽이 결정적 정보를 갖지 못하거나 독점 구조가 존재할 경우, 가격 신호는 왜곡되고 자원 배분의 효율성이 저해된다. 이럴 때 정부의 규제나 조정은 오히려 시장경제 전체의 효율성을 회복하는 데 기여할 수 있다. 헌법 제119조 2항은 바로 이러한 보완적 개입의 근거를 제시한 것이다. 요컨대 시장주의 원칙은 “시장의 일은 시장이 가장 잘 안다”는 믿음에 기반하지만, 동시에 “시장도 실패할 때가 있으며 그때는 정부가 적절하게 개입해야 한다”는 것을 표현한 것이다.
단기 성과에 눈 돌리면 부작용 커질 수도
중요한 것은 정부의 개입이 시장의 기능을 보완하는 수준에서 그쳐야 한다는 점이다. 가격 자체에 인위적으로 개입하거나 조정하려 하면, 수요·공급의 자연스러운 신호체계가 훼손되어 예기치 못한 부작용이 나타난다. 대표적으로 부동산 시장에서 과도한 규제나 분양가 상한제가 도입될 경우, 규제를 피해 인근 지역으로 수요가 몰리는 풍선효과가 발생하거나, 공급 위축으로 인해 오히려 가격이 급등하는 결과를 낳는다. 전기요금을 생산원가 이하로 인위적으로 억누르면, 단기적으로는 소비자 부담이 줄어든 듯 보이지만 전력회사들의 적자가 누적되면서 설비 투자 여력이 줄고, 장기적으로는 전력공급 불안정이라는 더 큰 문제를 초래할 수 있다. 나아가 공공 가격을 억누른 결과 암시장이 형성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공식 시장에서 수요가 공급을 초과할 때, 소비자와 생산자가 만나는 비공식 시장(암시장)이 등장하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실용적 시장주의는 가격을 통제하거나 직접 결정하는 방식이 아니라, 정보 비대칭 해소, 공정한 경쟁 질서 확립, 시장 인프라 구축 등을 통해 시장 환경 자체를 개선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 예를 들어 독점 문제가 있다면 가격 통제보다는 경쟁 촉진을 위한 구조 개선이 먼저이고, 정보 비대칭 문제에 대해서는 기업 공시제도나 소비자 보호 장치 강화 같은 정책이 효과적이다. 이처럼 시장의 작동 기반을 다지고, 참여자 간의 규칙을 명확히 정립하는 것이 시장주의에 기반한 정부의 역할이다.
문제는 실용주의가 시장주의와 결합할 때 생기는 유혹이다. 미국 바이든 민주당이 물가를 잡지 못해 트럼프에게 패배한 것에서 알 수 있듯 서민 생활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물가에 대한 정치적 관심은 당연하지만, 그 대응이 라면값이나 전기요금처럼 특정 품목의 가격에 집중될 경우 관료조직은 단기 성과를 보이기 위해 일부 품목에 직접 개입하려 할 가능성이 크다. 농협을 통한 한시적 공급 확대나 보조금 지원이 대표적 사례다. 그러나 이는 가격 구조나 수급 체계를 개선하는 것이 아니라 시장 기능을 왜곡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기준금리가 하락해 예금금리는 낮아지고, 국채 발행 증가로 조달금리가 상승하면서 대출금리는 오히려 높아지는 경우가 발생할 수 있다. 이때 예대금리차를 언급하며 인위적으로 이를 줄이려 한다면, 이는 금리 결정 메커니즘을 왜곡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이는 금리결정의 구조에 대해 디테일하게 따져 제도 변화를 유도하는 것으로 해결되어야 하는 문제다. 구조와 제도개선보다 결과에만 관심을 가져 시장주의 왜곡으로 이어질 수 있는 것이다.
‘지속 가능한 사회’ 위한 비용 분담도 회피 말아야
부동산 역시 마찬가지다. 정책 목표가 특정 지역의 가격 억제로 귀결되어서는 안 된다. 헌법 제35조 제3항은 “국가는 주택개발정책 등을 통하여 모든 국민이 쾌적한 주거생활을 할 수 있도록 노력하여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특정 계층의 자산 보호가 아니라, 모든 국민이 기본적인 주거권을 누릴 수 있도록 보장하는 데 있어야 한다. 일종의 기본주택 공급인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공공임대나 기본주택 확보와 같은 구조적 접근이 필요하며, 그 재원 조달 방식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불가피하다. 강남의 고가 아파트는 소유자의 개인적 노력보다는 정부의 도로·전철·학교 등 인프라 투자의 결과이기도 하다.
이 문제는 결국 세금의 문제다. 누구도 부담하려고 하지 않을 것이지만 우리 사회가 지탱하기 위한 적절한 비용분담이 필수적이다. 국회의 역할이 중요하다. 국민 모두가 혜택만 보려 하고 그 비용은 누구도 부담하지 않으려는 사회가 지속가능한 사회일까? 일정 부분 비용 부담이 불가피하다. 공동체 유지에 필요한 비용을 구성원 모두가 어떻게 공정하게 분담할 것인지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이유다.
결국 실용적 시장주의는 헌법이 제시한 경제운영 원리를 요약한 지향점이다. 그러나 단기 성과에 집착하거나 가격에 직접 개입하는 유혹에 빠지면, 오히려 시장의 기능을 훼손하고 실용주의의 본래 취지를 저버릴 수 있다. 실용적 시장주의의 실천은 구조 개선과 비용 분담이라는 어려운 사회적 합의를 전제로 한다. 새 정부가 이 과제를 회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마주함으로써 진정한 실용주의의 길을 열어 주길 기대한다.
이용우 전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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